누군가는 크레용 팝의 <빠빠빠>가 걸그룹 포화시대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의 풍경이라고 했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헬멧을 쓴 소녀들이 개다리 춤을 추는 게 안간힘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다. <빠빠빠>에는 정도를 벗어난, 아니 업계의 정도 따위는 모른다는 식의 태도가 있었다. 정도를 알았다면, 달샤벳의 <내 다리를 봐>처럼 춤추거나, 걸스데이의 <여자대통령> 같은 가사를 들이밀지 않았을까? 크레용 팝에 얽힌 논란과 별개로 이들을 만든 장본인이 궁금했다. 크레용 팝을 제작한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크레용 팝의 매니저를 통해 약속을 잡은 후, 크롬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로 향했다. 강남의 어느 언덕에 위치한 건물의 지하 사무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한 켠에 가지런히 놓인 헬멧들이었다. 스케쥴을 갈 때마다 멤버들이 차례대로 헬멧을 장착하는 풍경을 상상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직원에게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서 잠시 기다리고 했다.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크레용 팝의 멤버인 엘린이다. 수북히 쌓인 앨범에 싸인을 하던 그녀는 나를 보고 먼저 인사했다. 잠시 후에는 또 다른 멤버인 소율이 왔다. 역시 나를 보고는 인사부터 했다. 나도 인사했다. 어색한 침묵을 나누며 약 5분의 시간이 흘렀다. 황현창 대표가 그제서야 나타났다. 생각보다 젊었고, 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인터뷰는 지난 8월 13일에 진행된 것이고 패션지 <그라치아>의 기사로 먼저 실렸습니다. 지금의 논란이 불거지기 전에 진행된 인터뷰인 만큼, 논란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시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크레용 팝의 탄생과 이들을 기획했던 방향에 대한 태도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잡지에 싣지 못한 내용을 포함해 문답으로 정리했습니다. -에디터, =황현창 대표.)
– 지금 크레용 팝은 얼마나 바쁜가요?
= 30분 단위로 스케줄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경험해보지 않은 스케줄이어서 패닉 상태입니다. 방송 인터뷰, 행사, 미팅, 촬영… 음악방송을 해도 옆에 카메라가 따라붙으니까 정신이 없어요.
– 행사섭외가 특히 많을 것 같아요.
= 지금은 멤버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행사를 줄이고 있어요.
– 중국, 일본 쪽에서도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 다들 하는 말이, 국내에서 이렇게 올라오고 있는데, 왜 해외를 하냐고 그래요. 그런데 크레용 팝이 처음 결성했을 때부터 국내시장만 보고 한 게 아니었어요. 아무리 바빠도 해외활동은 움직이려고 해요.
– 외국에서는 주로 어떤 공연에 참가하나요?
= 미니 콘서트라고 봐야죠. 일본에서는 단독공연을 5번 정도 했어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신인 때부터 시작했던 걸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아직 일본 레코드사랑 계약이 안돼있는 데, 계약이 되는 데로 매스컴 프로모션을 해야죠. 중국에서는 얼마 전에 세계맥주축제 개막식 행사를 다녀왔어요. 연말쯤에는 북경, 상해에서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 크레용 팝의 <빠빠빠>를 알게 된 건, 한 페이스북 친구가 걸어준 동영상 링크였어요. 정신이 혼미해졌는데, 사실 멤버들 보다는 제작자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컨셉을 기획했을까 싶어서요. 일단은 대표님의 이력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크레용 팝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사진 스튜디오를 했어요. 광고 기획을 하면서 사진 촬영을 했죠. 잡지는 안하고, 의류와 전자제품의 광고사진을 주로 찍었어요.
– 평소 아이돌을 많이 좋아하셨나요?
= 아니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아이돌뿐만 아니라 대중가요 자체에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하나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클래식을 너무 좋아해서 운전할 때도 클래식만 듣고 다녔죠. 바이올린과 첼로를 정말 좋아해요. 공연을 보러 가도 클래식만 보고 그랬어요.
– 좋아하는 클래식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 장한나. 그때 공연에 본 모습을 아직도 있지 못해요. 그리고 해외 아티스트 중에는… 뻔하죠. 로스트로포비치를 좋아해요.
– 그런데 왜 갑자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든 겁니까?
= 어느 날 TV를 봤는데….
– TV에서 뭘 보셨길래….
= 티아라를 봤습니다. (웃음)
– 티아라가 어떤 노래를 부를 때였나요?
= <롤리폴리>였죠. 노래와 춤, 의상의 컨셉이 매치가 정말 잘 되는 그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관심을 둘 만한 아이돌이 없었는데, 티아라가 저에게는 충격이었던 거죠. 그때 사진 스튜디오 식구들이랑 같이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도 걸 그룹을 한번 기획해보면 어떨까.
다들 반대했어요. 매니저로 오래 활동한 사람들도 제작을 하다가 엎어지는 데, 당신이 아는 게 뭐가 있냐고. 지금 하는 일이나 잘 하라고. (웃음) 그때 오기가 생긴 거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사람들이 저를 일주일 넘게 따라다니며 말렸어요. 오기였죠.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어서 승부를 내보고 싶었어요.
– 그런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 만약 엔터테인먼트의 생리에 대해 잘 알았다면 시작을 안 했을지도 몰라요. 몇 번이고 이걸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주변에 엔터테인먼트 쪽 인맥이 있던 것도 아니었죠. 정보나 조언을 들을 사람이 없었어요. 그냥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 무모했네요.
= 저는 가수를 만들면요. 방송국에서 다 데려다가 방송해주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만들었던 건데, 방송을 못하니까 멘붕이 오는 거죠. 나름 머릿속에 그렸던 퍼즐이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1집을 말아먹었죠. 말아먹고 나니까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연예계가 이런 곳이구나.
그리고 크레용 팝을 제 3자의 눈으로 보게 됐어요. 정말 누가 보아도 뻔하고, 내가 대중이어도 관심을 안가질 것 같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그냥 던져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결국 ‘츄리닝’ 컨셉을 생각한 거죠.
– 다시 시간을 돌려볼게요. 회사를 차린 후에 오디션으로 멤버를 찾았을 텐데, 지금의 멤버들을 어떻게 발견했나요?
= 제 기준은 확고했어요. 어떤 색깔의 옷을 입혀도 다 흡수할만한 노멀한 친구들을 찾았어요.개성이 강한 친구는 안 된다는 주의였어요. 그래서 키가 165cm 이상 되는 친구들은 노래를 아무리 잘하고 예뻐도 다 잘랐어요. 황당해하면서 나가더라고요. 여기 뭐야? 이러면서…
그 친구들 대부분이 큰 기획사의 연습생 출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섹시한 애들은 섹시한 거 아니면 못하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귀여운 쪽으로 치우쳐도 안 되고. 여동생 같고 질리지 않고, 호감형이고, 딱 봐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친구들이었으면 했어요.
주위에서는 걱정했죠. 멤버들의 매력이 살아야 하는데, 밋밋하지 않겠냐고. 그런데 저한테는 멤버 개개인보다도 일단 그룹이 먼저 살아야 하는 거였어요. 사람들이 그룹을 먼저 좋아하다보면 나중에 누가 있는 지 찾아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제일 먼저 들어 온 멤버는 누구였나요?
= 소율이 먼저 들어왔어요. 그 다음이 초아였나? 웨이와 쌍둥이 자매 잖아요.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딸 둘을 모두 이런 도박판에 내모는 게 걱정스러우셨던 거죠. 게다가 멀쩡히 직업도 있었거든요. 웨이는 쇼핑몰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했어요. 둘 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건 아시죠? 초아는 검정고시를 보고 서울예대 들어갔다가 오디션을 보는 중이었죠. 부모님을 만나서 어렵게 설득했어요.
– 금미씨가 가장 연장자죠?
= 그 친구는 만나게 된 게 재밌어요. 스튜디오 할 때 고객님이, 아는 동생이 있대요. 제가 걸그룹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까 걔가 가수를 하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직장을 다니고 있댔죠. 모발클리닉에서 모낭분리사로 일을 했어요.
일단 보자고 했죠. 춤을 정말 잘 췄어요. 직장이 있는 친구가 짧은 시간에 마스터할 수 있는 춤 실력이 아니더라고요. 열정이 보였고, 무엇을 배우든 습득하는 능력이 빠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죠.
– 엘린의 경우는요?
= 지금은 회사에 없는 이사님이 안무를 담당했는 데, 그 분이 아는 동생이었죠. 일종의 낙하산?(웃음) 그런데 회사사람들이 다 반대했어요. 춤을 배운 적도 없고, 기초도 없고, 개인기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외모의 분위기가 크레용팝이랑 매치가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 다른 멤버에 비하면 기존 걸그룹에 어울릴만한 얼굴이죠.
= 그렇죠. 아무튼 저는 그 반대가 너무 싫었어요. 엘린이 어떠냐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주변에서 그렇게 반대를 하니까 그냥 싫은 거예요.
– 대표님의 성격이 주로 그런 스타일인가 봐요. 주변에서 반대하고 만류하면, 괜한 오기로 밀고 가는.
= 맞아요. 제가 좀 그래요. (웃음) 역시 반발이 생겼죠. 저는 상관없었어요. 엘린이를 불러놓고 말했죠. 내가 이렇게 온갖 핍박을 받고 있는데, 너가 열심히 안하면 내가 바보가 된다. 내 자존심이 걸려있으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하는 거예요.
제가 믿은 건 하나였던 것 같아요. 본인의 능력이 점점 올라오고 있는데, 그래서 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데, 그렇게 단칼에 자르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끝까지 데리고 온 케이스였죠.
– 어쨌든 1집 은 망했어요. 방송출연이 안되니까 게릴라 콘서트도 했고, 웹툰도 내놓고, 크레용팝 TV라는 것도 만들었는데, 그때 제작자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 그런 활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 회사의 성격이에요. 말하자면 자와 멤버들의 성격이죠. 지금도 저희는 이런 이야기를 해요. <빠빠빠> 다음에 새로운 곡을 내놓았는데, 망했어. 그러면 우리는 손 털고, 그동안 즐거웠다고 악수하고, 계약서 찢어버리면 되는 거야.
서로 각자의 길을 가면 되는 거지, 누구 원망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추억은 남는 거니까, 같이 있을때는 즐겁게 추억을 만들자.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그런 성격들이 지금 무대 위에서 나오는 거죠. 누가 뭐라고 하던, 우리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에요.
– 큰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걸까요?
= 그렇죠. 멤버들도 하고 싶은 걸해야 하고, 입고 싶은 걸입어야죠. 츄리닝도 다 멤버들 아이디어거든요. 그래야 무대 위에서 표정도 좋고, 즐길 수 있잖아요. 회사가 강압적으로 뭔가를 덧 씌웠는데, 그게 멤버한테 어색한 거면 그게 컨텐츠냐는 거죠. 저희는 곡이나 가사, 뮤직비디오 컨셉도 다 멤버들이랑 회의를 해요. 그래서 애들이 무엇을 해도 즐기면서 하는 거죠.
– 트레이닝 시스템도 많이 다를 거 같아요.
= 많이 다르죠. 대형기획사에서는 3년, 5년씩이나 연습생을 해야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터진다는 보장은 없어요. 다들 그러니까, 그런 방식이 공식화 된 것뿐이죠. 크레용 팝의 경우, 웨이는 합류한 다음 날 녹음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정도 만에 무대에 올라갔죠.
당연히 웨이는 무대에서 실수를 많이 했어요. 자기가 걱정하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해야하냐고. 저는 한마디만 했어요. 그냥 웃어. 웃고 즐겨. 너네가 해야하는 건 그거야. 그래야 크레용 팝을 보는 대중도 즐거워 할 테니까요.
– 춤의 정확성을 떠나서, 무대 위의 크레용 팝이 여유로워 보이기는 해요. 특히 <빙빙>을 불량소녀 컨셉으로 부를 때가 그랬어요.
= 그때 매니저한테 카톡으로 보낸 메시지가 지금 인터넷에 돌고 있어요. 매니저가 이번 무대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보냈길래, 저는 그냥 한 마디로 ‘껌 씹어’라고 했어요. 무엇을 해도 최소한 지금 보다는 낫다. 문제가 되면 내가 처리할거다. 대신 카메라 리허설 때는 씹지 말고, 생방송할 때 씹어라.(웃음)
그래서 정말 그렇게 했어요. 처음에는 PD들이 너무 싫어하더라고요. 카메라맨도 당황하고. 그런데 결국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니까, 나중에는 다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칭찬했어요.
– 그런 것도 회사 성격일까요?
= 멤버들 입장에서는 방송도 못하고 있었는데, 무대에 올라갈 기회가 주어진 거잖아요. 그 상황에서 우리의 컨셉을 알려야 하는데, 사실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가 없어요. 옷이랑 표정 정도? 멤버들이 어떤 아이디어를 내서하고 싶다고 하면 그게 위험하다고 해서 회사가 반대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멤버들이 하고 싶어 하면 제작자가 나서서 PD한테 사정을 해서라도 할 수 있게 해야죠. 그게 제작자의 역할이죠. 이것저것 가지치기를 해버리면 결국 색깔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수많은 제작자들이 이런 걸 모를까요? 아니에요. 다 알아요. 그런데 결국은 누군가에게 걸러지는 거예요. 말하자면 투자자겠죠.
그래서 저희는 일체 투자를 안 받았어요. 다 제 개인 돈이에요. 외부투자를 받았다면, 헬멧을 쓸 수 있었을까요? 내가 투자를 얼마나 했는데, 헬멧을 씌운다고? 장난해? 야, 애들 무조건 벗겨! 이러겠죠. 우리는 배고파서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주의였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온 거죠. 정말 힘들었습니다.(웃음)
– <댄싱퀸>을 준비하면서 기존의 스텝들을 정리한 것도 그런 차원이었나요?
= 그러니까 스타일리스트, 안무가 분들은 본인들이 그동안 봐온 것과 움직이던 패턴이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책임감이 있으니까, 그 테두리 안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수밖에 없던 거죠.
두 번째 이유는 크레용 팝에게는 롤 모델이 없다는 거예요. 스타일이나 곡도 모두 크레용 팝이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보니 기존의 걸 그룹을 위해서 쓰인 곡을 받아서는 안 되죠. 처음부터 모든 걸 주문 생산해야 했어요.
저는 작곡가에게 일일이 다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A파트는 어떻게 하고, 여기에는 중독성을 세게 넣어야 하고, 가사에는 의미를 두지 말라고. 일단 제가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음미하지 않아요. 가사에 심오한 뜻이 있어야 차트 1위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빠빠빠>도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빠빠빠’로 넣어버리려 했어요. 그걸 못한 게 지금도 좀 한이 되는데…(웃음) 멤버들도 자신의 외모가 특별하다거나, 노래를 정말 잘한다거나, 그런 생각을 안해요. 핸디캡을 잘 아니까, 컨셉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는 거죠.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니고, 1집을 끝내고 나서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걸그룹이기를 다 놓아버린 거죠.
– 걸 그룹이 아니고 그냥 재밌는 애들, 이런 건가요?
= 제가 광고일을 해와서 그런지, 아이덴티티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이에요. 다른 걸그룹은 아이덴티티가 곧 컨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는 컨셉은 조금씩 바뀌어 왔지만 아이덴티티는 변하지 않았어요.
– 그럼 크레용 팝의 아이덴티티는 뭔가요?
= 행복이죠. 행복마케팅은 절대 안 망해요. 솔직히 종교가 망하는 거 보셨어요? 종교는 절대 안 망해요.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결국 알아줄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거죠.
– <댄싱 퀸> 때부터 트레이닝 복과 발차기 안무가 들어갔습니다. 1집이 망했으니, 던진 승부수였는데, 나름 우려는 있었을 것 같아요.
= 발차기는 걸그룹이 쉽게 할 수 있는 안무가 아니에요. 그런데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죠. 방송국 PD들도 관심을 가질 것 같았어요. 그분들도 항상 똑같은 컨텐츠만 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저만해도 음악방송을 잘 안보거든요. 지금도 안 봐요. 비슷한 가수들만 나오니까요. <댄싱퀸>의 무대 리허설 때는,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카메라맨들, 다른 가수들, 매니저들이 모두 대박이라고, 쟤네들 누구냐고 그랬어요. 물론 약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죠. 무대가 장난이냐고. 어디 츄리닝을 입고 나와서 발차기를 하고 있냐고.
그때 우리가 흔들렸다면 다음 앨범은 정말 소녀스럽게 나왔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희는 처음 츄리닝을 입었을 때, 앞으로 5년 동안은 벗지 않겠다는 각오가 있었어요. 그래서 귀 닫고 앞만 보고 달린 거예요.
– 그런데 그렇게 호평을 받았어도, 방송출연은 쉽지 않았어요. 왜 그랬던 건가요?
= 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몇 시간이 걸릴텐데요. (그때가 일베 논란이 있었던 때였나요?) 아니요. 그때는 아니었어요. 일단 신인그룹과 컴백팀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 제가 PD라도 굳이 크레용 팝을 부르지 않았을 거예요.
한 주에 20팀 정도가 나왔는 데, 그중에는 유명기획사 그룹도 있었고요. 크레용 팝을 선택하기에는 선택지가 너무 많았던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크레용팝 TV를 시작했어요. 한탄만 하고 있으면 뭐하겠나 싶어서. 이것도 하다보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한 거죠.
– 게릴라 콘서트도 그때부터 시작했던 건가요?
= 게릴라 콘서트도 이슈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순하게 놀면 뭐하냐. 밖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지, 란 생각이었어요. 지하철 – 명동, 신림역 다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했어요.
그때 생긴 삼촌 팬들이 지금의 ‘팝저씨’에요. 정예멤버들이죠. 어린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고생하는 게 딱해보였던 거예요.그런 한편, 저애들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 데 나는 뭘까, 이런 생각도 하셨던 거구요.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신 건데, 지금까지 함께 온 거죠.
지금도 저희는 모든 스케쥴이 끝나면 항상 악수회를 해요. 다음 스케줄이 바빠도 꼭 해요. 우리 철칙이에요. 크레용팝 TV는 계속 간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가 되도 악수회도 계속 한다. 게릴라도 계속 한다. 그게 크레용팝의 아이덴티티니까.
– 이제 <빠빠빠>에 대해서 여쭤볼게요. 이 곡의 컨셉를 떠올린 계기가 있었나요?
= 김유민 작곡가의 성격이니까, 저를 커버했을 거예요. 수정요구가 엄청났어요. 녹음이 다 끝났는데도 다시 엎었으니까. 원래는 남자그룹을 위한 노래였어요. 작곡가가 친구들이랑 기타치면서 놀다가 받아놓은 거였는 , 제가 우연히 듣고는 달라고 했죠.
역시 사람들이 다 반대했어요. 그게 또 자극이 된 거죠. 내 귀에 좋으면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원곡을 뜯어고쳤는데, 처음에 주문한 건, 3분을 넘기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게 전략이 뭐냐, 듣는 사람들을 아쉽게 만드는 거였어요.
그런데 3분을 넘지 않으면 곡의 구성이 엉망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좋다. 3분 넘지 말고 엔딩까지 쳐달라고 했죠. 두 번째는 가사. 단어를 많이 쓰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사비, 브릿지,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반복적이고, 중독적으로 해달라고 했죠. ‘점핑!’이 정말 많이 들어가잖아요.
– 멤버들 반응은 어땠나요?
= 너무 아니라고 했죠. (웃음) 녹음해놓고 곡을 들어봤는데, 중독성은 있지만 뭔가 부족한 거예요. 그런데 이미 출시일은 던져놨고, 음원유통사와도 계약이 끝난 상태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공개 쇼케이스를 열자고 했어요. 노래만 들었을 때는 듣다가 꺼버릴 거 같았거든요. 어떻게든 비디오가 함께 가야겠다 싶었던 거죠.
쇼케이스 한다고 하니까, 음원유통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아니, 출시도 안한 노래를 공개장소에서 트는 게 말이 되냐고. 그때는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음원이랑은 조금 다르다고요.(웃음) 나중에는 다 솔직히 말했죠. 어쨌든 그날 찍힌 ‘직캠’이 여기저기서 화제가 됐어요. 노래만 먼저 나갔으면 지금의 <빠빠빠>는 없을 거예요.
– <빠빠빠>에 대한 반응이 터졌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요?
= 음원차트 역주행이죠. 정말 얼떨떨할 정도로 치고 올라오더라고요. 원래 저는 혼자서 생각한 멜론 1위 프로젝트가 있었거든요. 일종의 로드맵이라고 할까? 지금도 컴퓨터에 문서로 있어요. 그런데 그건 해보지도 못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반응이 터진 거죠.
-그 프로젝트는 어떤 거였어요?
= 선거유세 컨셉의 길바닥 투어라고 할까. 점심시간에 학교운동장에 가서 3분공연하고, 등하교 시간에 가서 공연하고. 전국을 돌면서 그런 공연을 하려 했어요. 그런데 장마가 와서 못하게 됐죠. 그런데 차트가 올라오기 시작한 거예요. 10위권 정도에 들어왔을 때, 멤버들이랑 이야기를 했어요.
웨이가 그러더라고요. “대표님 여기서 더 올라가면 안 될 거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정말 감당하지 못할 텐데. 애들이랑 함께 공포에 떨고 있던 거죠. 이러다 한방에 갈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다른 위치에 서버리는 걸 테니까요.
얼마 후, 5위에 올라갔을 때는 해외도피를 가야되나 싶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재밌자고 한 건데, 갑자기 뭔가 되어버린 거죠. 좀 잠재우고 싶어요.
– 더 대단한 스타가 되면, 이전처럼 재밌게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인가요?
= 얼마 전, 크레용팝 TV 3화를 올렸어요. 리플이 그렇게 달리더라고요. 지금 멤버들이 너무 많은 눈치를 보고 있는 거 같다. 대표님이 편집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제가 그때 정말 그랬거든요. 영상에 그게 다 보이나 봐요. 멘트도 예전보다 더 조심해졌고.
-일베논란도 있지요.
= 저는 일베에는 크게 의미를 둔 적이 없어요. 사과문을 썼을 때도, 엄청나게 뭇매를 맞았죠. 그런데 저는 좌파, 우파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제 주변에 대중의 기호를 알려주거나, 홍보를 할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걸 누구한테 물어보겠어요. 그러니까 온라인에서 정보를 얻고, 홍보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커뮤니티 중에서 걸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시판이 몇 개 없잖아요. 크레용 팝을 홍보해준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베충’이라고 하는 건, 제 입장에서는 이해를 못하는 문제였어요. 억울한 것도 있고, 그래서 법적으로 진행 중인 것도 있어요.
제 입장에서는 우리 멤버들을 키워보려고 여기저기에 홍보를 한 거예요. 목적성이 다르다는 거죠. 일베를 즐기는 사람들과 저는 다른 거죠. 나는 기획사 사장이고, 게다가 밑바닥이고, 홍보를 해야하는 데 가릴 게 어디 있어요. 아이들 인생이 걸려있는 데, 뭘 가리겠어요.
– <빠빠빠>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과연 크레용팝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워요. 아이돌의 주된 활동영역이 지금은 예능인데, 사실 멤버 개개인의 매력이 보이지는 않거든요.
= 제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크레용팝은 예능출연을 일절 안한다“고 폭탄발언을 해버렸어요.(웃음) 왜 그러냐면요. 우리가 거만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우리 애들이 예능을 할 능력이 안돼요. 대신 우리는 무대 위에서 예능을 하고 개그를 하는 거죠.
지금 대중은 저 애들이 예능에 나오면 빵 터지겠다는 기대가 너무 커요. 그런데 정말 나가면 못 터트려요. 오히려 마이너스에요. 일상이 예능인데 뭘 더 바라나요.(웃음) 그리고 죄송스러운 말인데, 그룹이면 그룹으로 띄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멤버 중 한 명이 나와서 그룹을 알리는 건, 자기들 컨텐츠가 모자라다는 걸 인증하는 거밖에 안 되잖아요. 크레용 팝은 우리의 컨텐츠로 무대 위에서 즐기는 게 다예요.
– 얼마 전 소니뮤직과도 계약을 했어요. 앞으로의 로드맵은 어떤 건가요?
= 잡지 나갈때 쯤이면 공표될 거니까 말씀드릴게요. 한국이든, 외국이든 앞으로 크레용 팝의 콘서트를 많이 할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콘서트 퀄리티는 정말 낮아요. 지난 번 콘서트는 못 보셨죠? 사실 다 틀렸어요.
그래도 팬들은 좋다고 난리에요. 음악성을 논하는 관객들은 사실 아예 안보는 게 나을 정도죠.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콘서트에서 돈을 안 받을 거예요. 도쿄돔 5만5천명 공연을 한다고 해도 안 받을 거예요.
– (경악)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 가능해요. 스폰서를 붙이고, 굳즈(상품)를 판매하는 거죠. 일본에서는 지금 반한류의 기류가 너무 심해요. 한국에서 조명되지 못한 그룹들이 넘어와서 돈만 빼먹고 돌아간다는 식의 시선인 거죠.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생각한 거예요.
한국에서는 싸이가 시청 앞에서 10만명의 관객을 불러놓고 무료공연을 하잖아요. 일본에서는 전혀 그런 게 없어요. 공짜라는 게 거의 없는 나라에요. 사람들은 일본에서 앨범 판매가 아직도 이뤄지고, 라이센스가 철저하다고 하는데 그게 꼭 문화라기보다는 레코드 제작업체가 만들어놓은 폐쇄적인 시스템이거든요. 그래도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 없으니까요.
– 아니 그래도 수익이 있어야 회사와 그룹을 운영할 수 있잖아요. 스폰서와 굳즈 판매만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 제가 원하는 건, 그렇게 무료로 오는 관객들의 DB에요. 무작정 무료로 공연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팬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한 사람들에게만 무료로 보여주는 거죠.
회원제도는 유료로 할 거예요. 만약 이 DB가 쌓이면, 새로운 앨범을 내도 사전홍보를 할 수 있죠. 초판을 내도 완판을 할 수 있고요. 콘서트 때 입는 의상으로 스폰서를 끌어오는 것도 쉬워요. 계산을 오래 해봤어요. 일단 오는 관객 수가 엄청나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 보는 거죠.
스폰서를 맡는 분들은 관객들이 유료냐, 무료냐는 신경쓰지 않아요. 얼마나 많이 왔냐가 중요한 거죠. 저는 그 코드 하나만 가지고 가는 거예요.
– 한국에서도 무료로 할 건가요?
= 말씀드렸지만, 솔직히 우리는 공연을 잘하는 팀이 아니에요. 그래서 돈을 받는 것도 좀 웃겨요. 그리고 행복이 정체성인데, 그걸 어떻게 돈 받고 팔겠어요. 말이 안되죠.
일본에서는 유료공연을 하고 한국에서만 무료 공연을 하는 것도 웃긴 거죠. 다른 회사들은 어떤 계약조건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어서 자유로워요. 수익이 안 나면 돈을 안 벌면 되는 거니까. 수익을 극대화 시켜야 하는 스트레도 없으니까요.
꼭 성공시킬 거예요. 이 인터뷰가 증거자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정리하자면 공연은 무료, 굳즈를 사는 건 자유죠. 교회가 그렇잖아요. 교회에 들어와서 치유를 받는 건 무료. 헌금하는 건 자유. 하지만 교회는 안 망해요.
– 혹시 종교 있으세요?
= 교회 다닙니다.(웃음)
– 크레용 팝이 신곡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빠빠빠> 같은 노래를 터트린 이상, 다음 곡은 또 어떤 엄청난 걸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해요.
= 우리는 <빠빠빠>가 이렇게 올라올 줄 몰랐어요. 신곡준비는 미리 다 해놓았어요. 신곡은 사실 <빠빠빠> 이후의 굳히기 개념으로 생각해서 사실 좀 일찍 나왔어요. 남들은 <빠빠빠>가 운빨이라고 할텐데, 저희는 신곡에 대해 정말 자신이 있어요. 저희 입장에서 <빠빠빠>는 전주곡이었어요. 원래 그 다음에 정말 큰 걸 준비하고 있었어요. 뭐 안 터질 수도 있지만. (웃음)
– 마지막 질문입니다. 도대체 크레용 팝이란 이름은 어떻게 나온 거예요?
= 원래는 허리케인 팝이었어요. (웃음) ‘팝’이 대중적인 문화를 의미한다면, 거기에 태풍을 일으켜보겠다는 뜻이었죠. 우리가 일본 활동을 초반에 시작했는데, 그때 일본에서 쓰나미가 터졌어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대체 이름을 찾다가 ‘크레용’을 발견한 거죠. 멤버들이 너무 오그라든다고 했어요.(웃음) 너무 귀여우려고 그러는 거 같다고. 제가 이름은 귀엽지만, 우리가 안귀여우면 되지 않냐고 설득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허리케인 팝’이란 이름에 진짜 애정이 많아요. 그래서 차기에 제작하는 그룹에는 꼭 붙여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