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희망과 큰 실망의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멘붕은 인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오늘까지만으로 충분하다. 내일부터는,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라 할지라도 여튼 이 사회를 망하게 만들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 당선자가 그간 공언한(클릭) 수준의 비정규직 차별해소, 검찰개혁, 복지강화의 약속이나마 지키도록 투표장을 넘어서는 일상적 정치 참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MBC사장 건으로 보듯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분은 결코 아니니 말이다(그가 속한 그 거대 정당이야 두 말할 나위도 없고).
일상적으로 정당을 후원하고(*주1), 참여예산이든(*주2) 주민투표든(*주3) 공청회든(*주4) 뭐든 제도적 참여기회에 관심을 할애하고, 사안이 생길 때 지역구 정치인에게 항의를 하며(*주5), 무엇보다 주변인들과 뻔한 ‘정치인 뒷담화’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들을 대화 소재로 삼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다. 그간 희망의 열정이 정치환멸으로 전환되지 않고, 꾸준한 군불로 바뀌도록 말이다.
왜 그런 피곤한 짓을 하자는 것인가. 어떤 특정한 세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팬클럽이 아니라 그를 매개로 한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함께 꿈꾸었다면, 김순자 김소연 투쟁본부가 아니라 그들을 매개로 진보의 유의미한 정치세력화에 한걸음 다가가고 싶었다면,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한들 멈출 이유가 없다 – 각종 공공서비스 공영제 유지든 인권보장이든 공정경제든 언론정상화든 노동차별해소든.
– 바른 소리를 하려 해서 정권의 힘에 잘려나간 MBC, YTN 기타 여러 동네의 언론인들이 제 자리를 찾는 싸움을 계속 할 수 있도록.(*주6)
– 철탑 위의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되돌려받아 내려올 수 있도록. 다시 다른 이들이 또 올라가지 않도록 진보적 노동 제도가 정착하도록. 그런 것이 가능하도록 노동이 유의미한 정치세력화되도록.(*주7)
– 표현을 조심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이뤄지지, 정치적 해코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닌 사회가 되도록.(*주8)
– 잘살아보세를 꿈꾸게 해줬다는 박정희 시절을 어떤 식으로든 변용하여 그리워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레 줄고 줄어 미미해지도록.
– 일상적 삶이 모든 이성적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미친 ‘자기계발’ 치킨레이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아갈 수 있도록.
선거는 정치의 결말이 아니다. 과정에 있는 어떤 분기점일 뿐.
“진보의 승리는 느리고 부족하며, 절로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뚜렷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위한 합리성이며 연대와 유머감각이다.” –capcold
주1 : 당비 후원, 당원 가입, 당원으로서의 의결 참여 등이 정당 정치 후원의 좋은 출발점이다. 투명진보신당연대회의는 여기, 학습능력저조민주당은 여기, 참여당2냐진보신당2냐모를정의당은 여기. S당은 안 알려줄테다.
주2: 주민참여예산제는 현행 지방재정법과 시행령에 의거하여 지난 수년간 슬금슬금 여러 지자체에서 하나씩 도입하고 있는데, 조례 제정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참여예산위원회 및 지역회의를 세워서 그냥 체면치레가 아닌 실제 참여에 의한 의결이 가능한 지자체는 아직 꽤 적은 편이다. 이런게 자기 사는 지역에 있는지 확인해보고, 없으면 도입시키는 것 자체부터가 정치참여 운동.
주3: 명목상으로는 전국구 말고 지자체 단위에서만큼은 소환투표제, 주민발안과 주민투표를 통한 조례 제정/개폐 청구 등이 이미 가능하다. 성립조건이 무척 힘들어 유명무실 취급을 받았으나, 서울시 무상급식건이든 최근 은평구 뉴타운 해제든 시민들이 이를 활용하는 것에 바람직하게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주4: 별로 주목받은 적 없지만, 무려 전자공청회라는 제도도 계속 굴러가고는 있다. 하지만 역시 오프라인 현장 공청회가 실제로 담당공무원들에게 목소리를 여하튼 들어보도록 강제할 수 있는 자리(그대로 말을 따른다는건 당연히 아니지만).
주5: 우리 지역 국회의원 연락처 검색은 국회 사이트에서, 지역의회 연락처는 각 지역의회 홈페이지에서(이것도 통합된 공식 공공포털이 있으면 좋겠지만, 몇몇 외부 프로젝트들로서만 생겼다가 없어지곤 한다).
주6: 전국언론노조에서 상황을 잘 기록해두고 있다(기록노동자들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여론화와 돈.
주7: 관련 논의는 국민승리21 준비과정부터 지금까지 십수년간 무척 많이 있지만, 현황에 대해서는 올해의 토론회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추천. (토론실황도 유투브에 있음)
주8: 표현의 자유는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경직성과 쉬운 원천봉쇄책 만들기 성향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약간의 기초 논의는 여기를(클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