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출간되었을 때는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이루고 있는 ‘제국(帝國)’이라는 낱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것이 국민 개개인이 가치의 근원체라고 믿는 천황에 대한 자기 동일시를 기반으로 하는 절대주의 천황제와 가족주의 국가관을 특징으로 하는 파시즘으로서의 ‘제국주의’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이면 ‘제국’의 위안부일까
왜 저자 박유하는 책의 제목으로 ‘일본(일본군)’이라는 가치 중립적인 명칭 대신에 ‘제국’이라는 어휘를 선택했을까. 저자는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인 위안부와 일본군과의 관계에서 동일한 위치”에 있으며, “전쟁 수행에 협력하는 ‘애국’적 존재로,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고 스스로도 ‘동지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저자가 선택한 ‘제국’은 그러한 주장과 긴밀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은 곧 <제국의 위안부>가 교묘한 논리의 전개를 통해 저자가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일본 국가 책임의 극소화’와 연관된다고 나는 의심한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전개됨을 분명히 해 두기로 한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독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정독하면서 저자 정영환이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는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점과 배경을 살펴보았다. 피소 이후 박유하가 무료 배포한 <제국의 위안부> 공개본(제2판 34곳 삭제판)을 대조하면서 나는 정영환의 논리가 단편·국부적인 데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국의 위안부>가 출간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이는 저간의 사정을 일별하면서 나는 심한 욕지기를 느꼈다. 이 책이 몰고 온 논란의 핵심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그것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뿐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문제의 진실을 찾기 위해 싸워온 시민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나는 자신도 모욕당한 느낌이었는데 그것은 박유하의 주장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분노라는 내 인식과 정면으로 부딪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제가 자행한 전쟁범죄 가운데 이른바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는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내 평균적 감각이었다.
학문의 자유? 내 두 번째 욕지기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를 기소한 검찰 결정을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학계와 시민사회에 맡기라고 촉구하는 지식인들의 성명 소식을 듣고 나는 두 번째 욕지기를 느꼈다. 문면상으로 보면 이들의 주장에 흠은 없다. 그러나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진실과 무관하게 ‘사상·학문의 자유’ 운운하는 이들의 성명은 한갓진 고담준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또 다른 지식인 성명이 이어졌을 때 나는 내 두 번째 욕지기의 원인을 가늠할 수 있었던 듯하다. 이나영, 양현아 교수 등 70여 명은 성명에서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으로만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접근하는 태도를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던 것이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는 재일 조선인 3세인 정영환 일본 메이지카쿠인대학 교수의 역저다. 부제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논란의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비판서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한국어판 출판을 기념해 기념강연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조선적을 보유한 ‘국가안보 위협자’라는 이유로 입국을 불허당한 저자는 엄격한 실증적 방식으로 <제국의 위안부>의 오류에 기초한 반역사성을 파헤친다.
실증적으로 파헤친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의 실증적 분석은 <제국의 위안부> 곳곳에서 발견되는 박유하의 교묘한 사실 해석과 ‘정치적 논리’에 대한 답답함과 저항감을 일거에 해소해 준다. 그의 방식은 국부적인 사실에 렌즈를 들이대는 게 아니라 제시된 전거를 하나하나 검증하는 객관적인 ‘학문적 논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자료의 왜곡을 통하여 ‘위안부’ 피해자들을 일본군의 ‘동지’이자 ‘애국자’로 뒤바꾸는 박유하의 논리를 상세하게 규명한다. 그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론이 ‘논증해야 할 가설’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증명된 명제인 양 사용하면서 개개 사례를 연역적으로 해석’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여성들과 일본인 병사 사이에 ‘동지적 관계’가 있었다면서 여성의 내면에도 ‘동지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것은, <제국의 위안부>가 이러한 ‘기억’을 여성들 스스로가 해방 후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억압하고 은폐했다고 일반화하여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105쪽
박유하는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갈등의 중심에 있는 것은 ‘위안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일본군에 강제 연행된 순진무구한 조선인 소녀들’이라는 ‘위안부’ 이미지는 지원단체 등에 의해 왜곡된 것이지, 있는 그대로의 기억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왜곡된 이미지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제국의 위안부’론이다. 박유하는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인 ‘위안부’와 다르지 않은, 전쟁 수행에 협력하는 ‘애국’적 존재로 그려 ‘대일본제국의 위안부’ 또는 ‘제국 신민인 위안부’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는 정녕 ‘동지적 관계’였나
전쟁터의 위안소에서 일본군 병사의 성욕을 해소해 주는 도구로서 ‘성 노예(sexual slavery)’로 살아가야 했던 ‘위안부’들을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고 스스로도 ‘동지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주장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욱이 이들이 해방 후에 ‘식민지의 후유증’ 때문에 스스로 ‘제국의 위안부’였던 기억을 은폐했다고 하는 것은 또 어떤가.
박유하는 소녀상을 두고 일면적인 ‘위안부’ 이미지만 표상한다며 비판한다. 소녀상이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침묵 당한 ‘기억’을 제시하는 것이라 강변하는 박유하의 논리에는 참혹한 능욕의 기억 속에 살아야 했던 ‘위안부’도, 그들의 고통의 트라우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녀상이 저항하는 모습만 표현하는 이상, 일본 옷을 입었던 일본이름의 ‘조선인 위안부’의 기억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그들의 또 다른 생활과 기억,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는 그곳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도 물론 없다.
소녀상에는 ‘평화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러나 용서의 기억을 소거한 눈은 원한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는 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적대’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일본보다 조선이 더 밉다’는 위안부들 역시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곳에는 ‘조선인 위안부는 없다’.
-<제국의 위안부> 205~206쪽
정영환은 대체로 박유하의 주장이 사료의 오독, 증언의 자의적 해석과 취사선택, 연구 성과에 대한 잘못된 이해 등에 의해 도출된 억측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실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기왕의 연구와 ‘위안부’들의 ‘증언’을 기대어 자신의 논리를 세워가고 있는바, 정영환은 주관적 독해로 말미암아 그 연결점이 객관적 근거가 되지 못함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의 증언 해석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자신의 도식에 맞추는 연역적 수법의 오류가 녹아 있다. 더욱이 그 해석은 상당히 무모하다. 예를 들면 ‘위안소’에서 사용된 아편에 대해 박유하는 “아편은 하루하루의 고통을 잊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증언에 의하면 대부분은 ‘주인’이나 상인들을 통한 직접사용이었다.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한국어판, 130쪽)고 지적한다.
–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107쪽
박유하는 ‘제3의 목소리’ 등으로 명명하며 ‘위안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정영환은 그가 1980년대 이전에 구축되었던 ‘병사들의 목소리’를 복권시킨 것이라고 논박한다. 피해자들의 목소리 대신에 병사들이 운운했던 ‘사랑’, ‘위안’, ‘운명’, ‘애국’, ‘동지’ 등의 열쇠 말을 동원하여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는 것처럼 포장했다는 것이다.
박유하는 또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기존의 시각을 재해석하는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정작 ‘위안부’ 문제의 책임부정론을 ‘자발적인 매춘부론’에 한정하여 비판한다. 정영환은 결과적으로 박유하의 논리가 일각의 ‘일본군 무죄론’과도 이해를 같이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작 한국에선 논란의 대상으로 기소되기까지 이르렀지만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책임론을 부정하는 데 급급해 온 일본사회의 ‘화해론’과 맥을 잇는다. 가해자들이 충분히 사죄와 보상을 했으니 피해자들이나 지원 단체에서 양보하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자는 낯익은 논리 말이다.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논리로 재해석한 ‘위안부’ 문제
<제국의 위안부>가 시도한 것은 바로 대일본제국 논리의 범위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인 ‘위안부’와의 ‘애국’적 동기의 공통성, 병사와의 ‘동지적 관계’를 강조하고, 미성년자 징집으로 대표되는 ‘위안부’ 제도의 식민지주의적 성격을 억지로 부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론은 양자의 접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식민지 지배의 문제’는 조선 침략의 죄와 책임이나 전쟁범죄, 식민지 범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위안부’의 역사를 ‘일본인의 역사’로 다시 서술하고자 한 것이다.
–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155쪽
정영환의 결론이 파격적인가. 그러나 그것은 매우 정교한 학문적 논리에 따른 분석과 전후 맥락을 충분히 감안한 객관적 해석의 필연적 귀결점이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면서 ‘화해’를 되뇌는 끝없는 악순환의 여정이 ‘위안부’ 문제의 현실이다. 저자가 책의 맺음말을 “망각을 위한 ’화해‘에 저항하며”로 쓴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지난달 25일, 서울동부지법은 “학문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견해에 대한 판단은 학문의 장이나 사회의 장에서 전문가와 시민들이 교환하고 상호 검증하면서 논박하는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일 뿐,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박유하가 개진한 논리와 해석의 바탕이 된 사실(fact)에 대한 진실 여부를 가린 것은 아니다. ‘화해’는 한일 간 현안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이긴 하지만 그것은 진실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이를 일이지 ‘망각’을 통해서 이루어져서는 결코 아니 되리라는 당위를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