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무성의 족쇄, 대선 불출마 약속
반기문이 나가떨어졌다. 반기문의 낙마는 지난달 13일에 이 블로그에 써 올렸던 ‘반기문은 대선 본선 완주 가능할까?’에서 밝힌 대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실이었다. 반기문의 준비 정도와 드러난 자질에 비춰볼 때 결론이 빤히 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기문은 나가떨어진 뒤에조차 ‘남 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를 대선을 중도에 그만두는 원인으로 꼽았다. 옹졸하고 늘푼수 없는 반기문이라 하겠다.
어쨌거나 이로써 가장 타격을 입은 인물은 내가 볼 때 김무성이지 싶다. 김무성은 반기문을 앞장세워 대선을 치름으로써 자기가 최대주주로 있는 바른정당 의석도 늘리면서 당내 주도권을 굳히고 키우려 했다. 하지만 반기문이 도중에 주저앉았으니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바른정당 2인자 격인 유승민은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유승민은 남경필을 당내 경선에서 누르고 본선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김무성으로서는 자신의 ‘대선 불출마 약속’을 뒤집고 스스로 나서지 않는 이상 이런 마뜩잖은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유승민한테 주도권을 상당 부분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김무성에게는 불행이지만 한국 정치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김무성은 (무조건 기득권을 지키고 보자는) 수구이지만 유승민은 (그래도 말은 통하는) 합리적 보수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수구가 쪼그라들고 합리적 보수가 성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한국 정치의 발전이다.
2. 황교안의 그릇은 국회의원 한 자리 정도
친박 새누리당은 어쩌면 홀가분할 수도 있다. 반기문은 새누리당으로 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반기문 행보에 따라 나경원 수도권 정진석 충청권 같은 국회의원이 탈당하면서 더 쫄아들리라 예상되던 새누리당이었다.
아울러 반기문이 갖고 있던 (수구와 보수를 아우르는) 보수의 상징성 또는 대표성이 반기문과 더불어 사라지면서 독자 생존을 위한 운신의 여지가 넓어졌다. 친박 새누리당이 황교안을 대선 후보로 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까닭이다.
황교안은 반기문과 달리 나이가 많지 않다. 국무총리도 곧 그만두어야 한다. 앞날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황교안은 국회의원 자리와 그럴듯한 당직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인물이다. 친박 새누리당 또한 당장 망하지는 않는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삼아 길게 보면 10년 남짓 연명할 것이다.
이번에 그럴듯한 후보를 내지 못하면 시한부 생명조차 줄게 되는 줄을 잘 아는 친박 새누리당으로서는 그런 정도 약속-보장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황교안은 이렇게만 되면 반기문과 달리 당선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충분히 나설 사람이다. 황교안은 여태 양지바른 마른자리만 골라 다닌 여린 사람이다.
3. 다섯 후보는 죽으나 사나 완주
그러면 손학규는 어떻게 될까. 내가 볼 때 손학규는 ‘욕심’이라 쓰고 ‘희망’이라 읽는 사람이다. 손학규의 제3지대-빅텐트는 자기한테는 ‘희망’이지만 민심이 볼 때는 ‘욕심’이다. 손학규는 지지세력과 함께 국민의당에 흡수되면서 국민의당 대선판을 키우는 불쏘시개 노릇도 하기 어려우리라고 나는 본다. 이런 정도에서 대충 정리가 된다.
물론 김무성이 대선 불출마 약속을 뒤집으면 바른정당에서 소란은 조금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바른정당 대선 본선 후보는 유승민으로 정리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와 촛불로 상징되는 ‘민심의 바다’는 바른정당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김종인-홍석현-정운찬-허경영 등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내가 보기에 이렇다.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 친박 새누리당 황교안,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이들 다섯은 죽으나 사나 완주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선 대선과 달리 이른바 합종연횡이 아무 변수도 되지 못하니까.
4. 정권교체 민심과 안철수
이런 경우는 등수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이 등수는 대선 이후 한국 정치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또는 퇴보)할까를 가늠해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본다. 문재인이 1등, 유승민이 2등, 안철수가 3등, 황교안이 4등, 심상정이 5등.
문재인과 안철수는 야권이다. 야권 후보가 나란히 1등과 2등을 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안철수든 문재인이든 1등 아니면 3등 또는 그 아래다. 지금 앞서고 있는 문재인을 안철수가 따라잡기는 적어도 내가 볼 때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지금 민심은 정권교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은 두 사람한테 표를 나누어주는 식이 아니라 한 사람한테 몰아주는 식이 되기 마련이다. 문재인은 원래 자기 몫보다 많이 얻을 것이고 안철수는 반대가 될 것이다.
5. 나름 감동이 있었던 유승민
(범) 여권은 어떨까? 황교안은 약점이 많지는 않아도 하나하나가 모두 크다. (그래서 지금 나타나는 10% 웃도는 지지율은 허수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선이 시작되면 우습게 날아갈 것이다) 먼저 대선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선수로 나서는 우스꽝스러움 자체가 커다란 약점이다.
그리고 병역 기피 문제. 황교안처럼 두드러기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 병역 문제는 군대에서 젊은 한 때를 보낸 이들의 심정을 뒤집어버리는 폭발력이 있다. 이는 공정함과도 관련된다. 공정한 기회와는 무관한 많은 사람들한테 그야말로 두드러기를 일으킬 것이다.
치명적인 약점은 황교안의 인생 그 자체다. 스토리도 반전도 희생도 없다. 마음을 끌 만한 건덕지가 없는 데다 박근혜처럼 후광(後光)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선 후보로서 감동이 조금은 있어 주어야 하는데 황교안은 이기적인 모범생 인생이 전부다.
(공안) 검사로서도 성적표가 좋지 않았다는 과거 평가까지 있다. 정권의 말을 잘 듣는 충견 노릇을 열심히 했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황교안은 ‘박사모’로 대표되는 수구의 표만 끌어안을 가능성이 높다.
유승민은 다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박근혜를 치받은 전력이 있다. 박근혜한테 쫓겨날 때도 대차게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 ‘민주와 공화(共和)의 가치’를 내세웠다. 이는 많은 이들한테 대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남 탓’도 별로 하지 않는다.
천박한 친박이라면 모르지만 스스로를 ‘품격이 있는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는 황교안이 아니라 유승민이 대안이다. 품격 있는 보수들은 대부분 이번 박근혜-최순실게이트를 겪으면서 자기가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이 이런 정도밖에 안 된다는 데 대해 자괴감을 품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야권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정권교체를 막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은 후보에게 기울 것이다. 누구일까? 황교안일까? 유승민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유승민은 올라갈 것이고 황교안은 내려올 것이다.
대선 본선 결과는 정권교체를 가장 잘할 것 같은 순서와 정권교체를 제대로 막을 것 같은 순서가 뒤섞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문재인이 1등, 유승민이 2등, 안철수가 3등, 황교안이 4등, 심상정이 5등이다. 득표율은 거칠게 말하면 각각 50%약, 20%강, 15%약, 10%약, 5%강이 될 것 같다.
어쩌면 황교안과 심상정의 등수는 바뀔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 작지 않은 축복이다. 나름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이들(정의당 심상정)이 수구 기득권 집단(친박 새누리당 황교안)보다 그 정치적 기반이 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 지역에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