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요약 먼저 한다.
- ‘새누리와도 연정 가능하다’는 오류다.
- 새누리와 연정 안 하고도 개혁을 추진하려면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를 포함한 대연정밖에 길이 없다.
-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른정당, 국민의당 이제 그만 까야 한다. 안 까도 정권 교체된다. 앞으로 더 까봐야 다음 정부의 정치부담만 커진다.
1.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 발언이 남긴 긍정적 측면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대선 후보 지지율을 합치면 민주당이 전체 후보 지지율의 60% 가까이 점유하고 있지만, 국회의석수에선 4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준 것이다.
2.
최순실 사건이 터지고 탄핵 국회가결이 이뤄지면서 이번 대선은 이미 끝났다고 판단했다. (어떤 당이 집권하고 누가 대통령이 될 거라 판단하는지는 굳이 쓸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탄핵과 동시에 소규모의 정계개편이 이뤄졌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러운 점이 있었다. 탄핵정족수가 개헌정족수와 같다는 점이 그것이다. 바른정당이 탈당을 했고, 이제 새누리를 제외하고도 핵심 개혁과제에 국회의석수 2/3를 모을 가능성이 생겼다.
그 시점부터 나는 범야당들에 대해 일체 비난을 자제했다. 또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는 글을 종종 올리기도 했다. 그 범야당에는 국민의당 뿐 아니라 바른정당도 포함된다.
- “박근혜 퇴진 때까지는 차기대선 같은 거 생각 안 하려고 했지만” (12.01)
- “최순실 사태 이후 민주당 지지율과 JTBC 시청률이 동반 상승했다” (12.16)
- “예전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친일파의 정의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01.08)
- “오늘 많은 분이 보고 분노하신 기사 2개” (01.06)
3.
이유는 간단하다. 신정부의 전반기는 지금의 국회 구성으로 가게 된다. 현재 의석구성은 더불어민주당 121, 새누리당 95, 국민의당 38, 바른정당 32, 정의당 6, 무소속 8이다.
초반의 핵심적 개혁과제가 달성되지 못하면 민주당은 다음 총선에서 진다. 핵심적 개혁과제가 성공하려면 국회의석수 2/3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 조합은 2가지밖에 없다.
A. 민주당 + 새누리당 = 216석
B. 민주당 + 국민의당 + 바른정당 + 정의당 = 205석
현재 제1당인 민주당내에서도 야권공동정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B케이스에서도 의석 2/3(200석)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
만약 새누리에 대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취해야 할 전략적 방안은 모든 연정가능성을 열어두고 권력 떡밥으로 타 당 간에 경쟁을 붙이는 것이고, 굳이 사전선택을 해야 한다면 케이스 A를 선택하는 것이다. 케이스 B와 같이 설득해야 할 이질적 구성원이 많을수록 일은 더디게 진행되고 가다가 엎어지거나 잘못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전략적으로만 본다면 안희정 지사의 “새누리와도 연정 가능하다”라는 발언은 현명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에서 역사적 맥락과 감정선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실체이며, 정치가 서 있는 주요기반이란 사실이다. 마치 법인이 자연적 실체가 없음에도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듯이(삼성전자는 자연적 실체가 없지만 인격이 있다).
마찬가지로 정당 역시 ‘법인의 일종’이며, 인격이란 측면에서는 가장 그 성격이 농후한 비자연적 인격체이기 떄문에 새누리당과의 연정은 지지기반을 부정하는 발언이 되어 버린다. 안희정 지사의 발언은 전자의 문제에 천착하여 후자의 문제를 간과한 데서 오는 오류다.
5.
이번 안희정 지사의 발언 사건을 통해 정권교체를 바라고 사회의 개혁을 바라는 분들, 특히 민주당 지지자분들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그리고 해당 정당의 후보들을 까대는 재미 또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셔야 한다. 현재 그 행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몇 배로 커져서 신정부의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세상사 모두 그러하듯 남이 하는 일에 후추 뿌리는 건 쉽지만, 스스로 무얼 하려면 많은 사람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지금은 울트라 슈퍼파워 같은 원내 1당 121석은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뀌는 순간 무능의 숫자로 바뀐다. 의석수 1/3밖에 안 되는 여당과 그 여당의 대통령을 기다리는 건 흔들리는 나무꼭대기에서 버티는 공포체험뿐이다.
그때 가서 또 대통령 만들어줬는데 왜 아무것도 못하냐고 욕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그렇게 욕해놓고 민주당의 정책 방향에 찬성을 안 해주는 바른정당, 국민의당을 욕할 것인가? 전자는 철이 없는 것이고 후자는 뻔뻔한 것이다.
6.
나는 어차피 정치인도 아닌데? 메롱ㅎ
하고 싶으신 분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정당들이 SNS 레포트를 분석업체로부터 받는다. 그 레포트에는 자당을 옹호하고 비판한 트윗이나 포스팅의 숫자뿐 아니라 해당 포스팅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명단과 성향까지 들어있다. 즉, 우리 당 후보 또는 우리 당을 습관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이러한데 그 사람들의 80%는 민주당 당원이다(문재인 지지자다) 이런 식으로 레포트가 나온다.
재미있는 건 자당 지지자들이 타당을 비난하는 것은 리포팅도 잘 안 하고, 한다 하더라도 지지자들의 자발적 행동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타 당 지지자들이 자당이나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당에서 시켰다고(문재인이 시켰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비슷한 논조로 하는 비판은 문재인이 시켜서 한 것처럼 화를 내는 것이다.
7.
그게 그 사람들의 판단오류지 내 잘못이냐?
이렇게 물어보실 수도 있다. 그 오류는… 원래 인간의 사고 구조에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이다. 그 프로그래밍을 신이 했건 진화가 했건 말이다. 오히려 자신만이 그 프로그램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를 떠나 사회생활에도 꼭 필요한 인식이기 때문에.
원문: 장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