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말리는 진짜 이유들
한국은 인터넷 열풍 이후로 다시 10년 만에 찾아온 창업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정부의 수많은 지원, 다양한 행사와 수많은 투자사들 등 수많은 성공담 기사가 하루가 멀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백 수천억을 벌었던 창업자 이야기는 이제는 너무나도 흔해졌다. 그래서일까?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창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긍정적인 사회현상이고 더 많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직장 생활만 하다가 창업을 시작한 나에게 창업의 바로 뒤에서 입을 벌리고 있을 현실의 지옥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것은 창업 후 내가 겪었던, 그리고 겪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1. 돈
각오는 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잔인하게 다가왔다. 돈이 들어가는 모든 것들을 줄여야만 했다. 10년 차 대기업 선임연구원으로 꽤 괜찮은 연봉과 대우를 받았었다. 그나마 직장 생활 동안 모아 놓았던 돈(정확히 말해서는 장가가려고 모았던 돈)이 있었기에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창업을 시작하며 쏟아부었고, 이것도 모자라 투자를 받기도 했다. 2억이라는 돈을 처음 투자받았고 서비스를 확장했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은 넘기지 못했다.
더 아껴야만 했다. 투자금은 사업의 성장을 위해 쓰이는 자금이지 개인의 돈이 절대 아니다. 대표의 급여 또한 회사에서 지출해야만 하는 비용이라 내 급여 역시 줄여야 했고 어떨 때는 급여를 못 받기도 했다.
돈은 못 버는데 일은 더 바빠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 숙식하기 시작했고, 힘든 직장 생활에서 유일한 휴식이었던 취미 스노보드도 접었고, 차도 팔았다. 이러면 어느 정도 해결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돈 들어갈 곳은 더 빠르게 늘어갔다. 가입해 놨던 모든 보험을 해지하고 마이너스 통장 생활과 말로만 들었던 카드 돌려막기라는 것도 처음 해보게 된다.
당연히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 또한 줄어 들어갔다. “우와! 이제 대표님이네. 부럽다.” “나도 회사 관두고 너처럼 대표하고 싶은데. 부럽다 짜샤!” 기사 보니 투자도 받았던데 오늘은 한턱 쏘라며 속도 모르고 무심코 던지는 이야기들은 안 그래도 타들어 가는 까만 속을 더 뒤집어 놓았다. 경조사 참석 역시 줄였고, 정말 힘든 시기에는 결혼을 하는 친구 녀석의 축의금조차 보내지 못했다.
여자친구와 만날 때면 쓰던 데이트 비용에서 내 몫은 점점 줄어갔고 바빠서 챙겨줄 시간까지 없어졌다. 결혼 적령기의 여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나는 더 이상 대기업 직원이 아닌 노점상이었다. 여자친구는 항상 괜찮다고 했지만 힘들고 스트레스받은 내 입에서는 헤어지자는 소리가 점점 자주 나왔다. 그렇게 나 때문에 서로가 지쳐갔다. 그 친구를 떠나보내 주기로 작정하고 못되게 굴었고,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까지 잘 만났어도 내 현실상 결혼은 못 했을 것이다. 그 뒤로 그 친구는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착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니 어찌 보면 그때의 선택이 옳은 것이다.
“대표님 왜 결혼 안 하세요?” 아직도 사석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모아놓은 돈은 이미 수년 전에 다 썼고 상황이 조금은 나아진 지금 역시도 그리 넉넉한 급여를 받지 못한다. 창업 후의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이해해주는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30대 후반의 남자가 결혼한다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치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보다도 훨씬 높다. 낮은 기준치에 속하는 서울 변두리 작은 전셋집을 구할 돈조차도 아직도 없다. 그렇다고 집이 부자도 아니고, 심지어 지금은 창업 이후 생긴 큰 액수의 빚까지 있다. 대강의 사정을 아는 팀원들은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해야 회사가 잘 되고 그래야 대표님 장가보내 드릴 수 있다’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창업하기 전까지는 이런 일들을 겪게 될지 몰랐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담담해졌고 현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창업자마다 경우가 틀리고 회사의 성장세마다 틀리지만 창업을 하게 되면 돈은 처음 다가오는 문제이자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며 계속 따라다니는 문제다.
2. 경력
보통은 학교를 졸업하고 창업을 하는 경우 직장 생활을 하다가 창업을 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난 후자의 경우 중에서도 좀 늦은 나이인 36세에 창업을 시작했다. 2005년 입사한 첫 회사인 비에네스소프트라는 곳에서 개발자 실무를 시작해 코딩 실력 늘려 가며 업무 프로세스를 배웠고, 두 번째 회사인 아이스테이션에서 MP3 이후 한국 IT의 혁신을 이끌어 가던 PMP의 주요 모델 개발에 참여하면서 좋은 경력을 쌓았다. 제품의 기획, 개발, 판매, 마케팅, AS까지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좋은 기회도 가졌다. 마지막으로 근무한 LG전자에서는 말로만 듣던 글로벌 프로젝트, 즉 해외를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스마트폰 프로젝트에 일원으로 참여해 수백 명의 개발자와 협업했고,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방식과 조직 및 외부업체 관리같이 개발 외적으로도 많은 것을 경험했다.
흔히 우리는 회사가 전쟁터라고 비유한다. 맞다. 회사는 시장에서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직장에 다니는 한 회사가 주는 급여에 맞는 실적을 내야 한다. 구성원들은 총칼이 아닌 본인의 업무라는 스킬을 무기로 성과를 내야만 한다. 회사라는 전쟁터는 그래도 함께 싸울 전우들과 총 한 자루는 쥐여 주지 않는가?
전쟁터에서 동료들과 함께 싸워 승리하고 이루어 낸 것들은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평생 따라다닐 경력이 되었다. 힘들지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노력했고, 그렇게 버티고 살아남아 객관적으로 볼 때 꽤 좋은 경력을 가진 10년 차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몸값도 많이 올랐고 LG전자보다 더 좋은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지냈다.
하지만 이건 내가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개발자의 신분일 때의 이야기이다. 마치 군대의 중대, 연대, 사단, 군단의 크기와 규모가 다르듯 회사 규모와 크기에 맞게 함께 싸울 수 있는 많은 전우가 있었고, 그 병력에 일원으로 속해 있던 나에게는 그 병력의 규모에 맞는 많은 인적, 물적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퇴사하는 순간부터는 이런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정말이지 맨몸으로 사지에 홀로 던져진 순간부터 회사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그때 그 돈을 받고 왜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들었다. 팀장님이나 대표님들의 고민과 업무 스트레스가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창업 후 이전 경력이 도움되지 않느냐 반문하겠지만 그건 창업 초기 어디 가서 발표할 때나 투자사들을 만날 때 ‘창업자가 어떤 사람이구나’ 정도의 판단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지금도 서비스를 만들어 가면서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업무를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서 적용될 뿐 진짜 상상도 못 할 수많은 문제가 펼쳐진다.
가끔 현실에 대한 문제로 창업 전 본인의 직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직군에 종사했던 창업자들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 트렌드와 그로 인해 새로운 기술들을 접하고 배워야 하는 개발자의 특성상 실무를 떠난 나는 이제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니다. 이제 개발자라는 직업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3. 대인관계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창업의 현실은 바닥부터 다시 모든 것을 시작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바닥부터 시작했고 아직도 열심히 바닥을 올라가려 노력하고 있다. 바닥을 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가족, 친구, 연인, 직장 동료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고 소홀해졌다.
여기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창업 전에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험담이 다른 사람을 통해 내 귀로 들어오기도 하고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 눈빛이나 말투를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모진 말을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던지며 가슴에 큰 상처를 안겨준 사람도 있었다.
난 그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었기에 내 상황과 조건이 바뀌었을 뿐 계속 내 편이고 내 사람이라 생각했다. 정말 빠르게 진짜라고 믿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가짜로 드러나고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천 송이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수십 수백 번을 울었던 것 같다. 아직도 머릿속에, 가슴속에 생생하게 그 상처들이 남아 있어 꼭 성공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할 거 다 하고, 놀 거 다 놀고, 재미로? 경력으로? 창업을 선택한 사람들과 돌아갈 뒤가 있는 사람을 보면 크게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런 팀으로 인해서 스타트업 바닥에서 정말 고생하고 노력하는 팀들이 함께 평가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서로를 바로 알아보고 공감한다. 다른 스타트업들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그런 팀들에게 우리가 도울 게 있을 때면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스타트업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많은 사람이 창업을 하거나 창업팀에 들어가는 선택을 한 이후로 바닥을 치게 되고 수많은 것을 견뎌야 하는 지옥을 맛보게 된다. 현실이라는 그 지옥의 고통 차이는 대표나 구성원에게 이르기까지 크기의 차이일 뿐이다. 심지어는 나나 우리 팀원들보다 더한 고생을 하는 스타트업도 많이 봤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규모로 정말 큰 시련들이 닥쳐오고 그걸 이겨내는 과정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에 여전히 창업을 절대 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다닌다. 그래도 정말 이 길 나의 길이라고 선택했다면, 입에 칼을 물고 죽을 각오로 살아남아야 한다.
원문: 요다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