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양손을 앞으로 내지르며 “에네르기파!”를 외치거나 근두운을 부르거나 했다. 손짚고 옆돌기 후에 양팔을 펼치며 기합을 넣어 에스퍼맨으로 변신하기를 원했으나, 누군가 훔쳐보는 통에 실패했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그런 적 없다고? 이런 위선자 같으니… 어쨌든 -_-;
어릴 적 만화와 게임에서 본 많은 능력을 동경했고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능력을 사용하는 주인공에 이입해 모험을 즐겼다. 예전 만화의 주인공들은 장풍을 쏘거나 하늘을 나는 등 다소 인간적인(?) 능력을 사용했지만, 점차 사람이나 사물의 기억을 읽어낸다거나 분신을 소환해 조종하는 등 화려하고 개성 있는 능력들을 발휘했다. 그 이야기에 빠진 나도 그러한 능력을 갖추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내게 초능력이 주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시간이 지나 머리가 조금 굵었다. 순수하게 강함을 원하던 유년기를 보낸 나는 현실의 세파에 시달리는 중2 마인드에 몸만 큰 오덕이 되었다. 사회에서 육체의 강함이란 그닥 쓸모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유용하고 안전하며 뭣보다 사용자가 행복한 능력이란 육체의 힘과 거리가 멀다.
이제 적당히 썩은 시선으로 만화를 본다. 그리고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그리고 유용한 능력이란 무엇일지 반추하며 10가지를 추려 보았다. (능력을 고른 기준은 몹시 주관적이므로 항의하면 본인만 피곤하십니다.)
1. 생활력: 고길동(아기공룡 둘리)
어릴 적엔 그저 둘리 괴롭히는 성질 나쁜 아저씨인 줄 알았던 고길동 아저씨.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본 길동 아저씨는 생불에 능력 있는 가장, 진정한 생활 능력자였다. 둘리 일당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대출로 쌍문동에 1억 원가량의 주택(애니메이션 방영기준 1993년)을 지고 어떻게든 가게를 꾸린 상황은 얼마나 힘겨웠을까. 길동 아저씨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자.
2. 뻐꾹력: 시마 코사쿠(시마 시리즈)
고고한 척하지만 실상은 카사노바. 점찍은 여성은 모두 쓰러뜨릴(…) 수 있으며 그 여성은 반드시 전개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만약 호스트였다면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을 남자.
3. 순간 이동: 손오공(드래곤볼)
아무리 싸움 잘해봐야 현실은 백수. 유일하게 쓸만한 능력은 순간 이동이다.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체력이나 기의 소모 없이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사기. 실생활에서 유용하기는 베스트급이다.
4. 전투력: 당근토끼(드래곤볼)
나이 먹은 어른이 싸워봐야 합의금만 나갈 뿐이지만… 일단은 싸움 잘하면 좋긴 하다. 드래곤볼에서 최강이면 우주에서 가장 강하다는 통념에 따라 드래곤볼 최강 캐릭터의 기술을 배워보자.
드래곤볼 초반에 등장하는 토끼단의 두목. 만진 사람을 당근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투력의 고저와 상관없이 원샷원킬이라는 점에서 드래곤볼 사상 최강의 캐릭터라고 생각해 꼽아보았다.
또 다른 최강자로는 악한 마음을 증폭시켜 폭발시키는 아크맨의 아크메이트 광선이 있지만 착하거나 아무 생각 없는 캐릭터에겐 통하지 않을 것 같아 제외. 무조건 승리라는 점에선 최강의 능력이라 칭할 수 있겠다. 당근으로 변한 부르마를 다시 사람으로 돌리는 걸 보니 힘의 제어도 간단한 듯.
5. 만화력: 코믹 마스터 J(코믹 마스터 J)
전설의 슈퍼 어시스턴트. 스케치 없이 바로 터치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어떤 악조건하에서도 놀라운 능력으로 원고를 완성하는 능력자. 만화가라면 바라마지 않을 능력이지만 자신의 작품을 할 때는 몹시 괴로워한다는 단점도 있다.
6. 만화력 2: 키시베 로한(죠죠의 기묘한 모험)
마감을 어겨 본 적이 없으며 어시도 없이 일주일 치 분량을 4일 만에 그린다는 만화가로서는 믿기지 않는 능력의 소유자. ‘손 빠르기가 스탠드의 스피드 A급’이라는 공식설정이 있다. 코믹 마스터 J보다 속도는 떨어져 보이지만 자기 작품 생산력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더 나을 수도 있겠다.
7. 시간 정지: 김영탁(타이밍)
시전자를 제외한 모든 물체의 시간을 동결하는 능력은 흔하지만, 김영탁의 시간 정지 기술은 제한이 적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죠죠 시리즈의 디오조차 5초, 진화하여 9초에 그치지만 김영탁은 1년 정도를 정지할 수 있다. 손가락을 튕기는 ‘딱!’ 소리와 함께 능력이 발현된다는 점도 간지 폭발.
8. 다이어트: 오오하라 만타로(먹짱)
“음식을 소중히 한다”는 테마를 표방하는 주제에 정작 주인공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맛이고 나발이고 위장에 처넣기를 겨루는 이상한 만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점보다 ‘저렇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이나 부럽다.
9. 잠: 잠 안 자는 꼬마(엑스맨)
엑스멘을 통틀어 가장 부러운 능력. 걸맞잖은 능력으로 괴리감을 느끼며 책임감을 가질 바에야 소시민의 삶을 온건히 누릴 수 있는 잠 안 자는 능력이 제일 가지고 싶었다. 게다가 리모컨 없이 채널을 바꾸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여 잉여의 귀감이라 할 수 있겠다.
10. 행운: 럭키맨(럭키맨)
데스노트 원작자의 숨은 걸작 럭키맨. 변신 전에는 지독한 불운으로 고생하지만 변신 후에는 온갖 행운으로 승리하는 영웅이다. 변신상태가 풀리지만 않으면 진정 행복뿐인 인생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것이라도 꿈꾸라
아무리 이능력을 상상해도 현실의 우리는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텔레포트로 지각없이 출근하고 눈짓 한 번에 ‘당신한텐 뭔가 특별한 게 느껴져요’라며 여자가 넘어오는 일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어떤 직공이 매일 밤 열두 시간 동안 왕이 된 꿈을 꾸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는 매일 밤 열두 시간 동안 직공이 된 꿈을 꾸는 왕만큼이나 행복하리라’고 말했다는 걸 생각하면 삶은 약간 덜 불안정한 꿈일 뿐이다.
어차피 당신은 리얼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불가능한 것이라도 꿈꾸며 즐거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