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의 러커(Lurker)와 기자의 러킹(Lurking) 취재
기성용 선수의 비공개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기 선수의 발언을 김현회 기자가 포털사의 스포츠면 고정 코너에서 ‘신상털기’를 하듯이 기사로 공개한 것이 언론 윤리 및 개인의 정보 인권과 관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관련 기사: 해외파선수들 기강이 ‘기성용 신상털기’로 잡힐까? -미디어스 2013.07.05 –
스포츠선수를 위한 소셜미디어·SNS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기자를 위한 소셜미디어·SNS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면서 ‘소셜미디어 리터러시(소셜미디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저그 종족의 러커(lurker) 유닛은 땅 밑에 숨어서 적을 공격한다. 디텍터가 러커를 탐지해내기 전까지는 상대방은 러커를 공격할 수도 없고 러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언론 전문용어로서, 러커 유닛과 같은 방식으로 취재하는 것을 ‘러킹 (lurking)’이라고 한다. 즉, 러킹은 취재 대상의 사적 영역에 잠입하여 기사에 들어갈 내용을 빼 와서 취재대상의 허락 없이 기사로 내는 행위다.
러킹은 정당한가: 푸드라이온 사건
러킹과 관해 유명한 사건이 미국의 푸드라이온 사건(Food Lion vs ABC, 1992)이다. 언론사의 잠입 취재, 즉 러킹에 제동을 걸고 그것이 법적·윤리적으로 정당한지에 관해 고민을 이끌어 낸 세계적인 사건이다. ABC 기자가 식품회사인 푸드라이온 회사의 비위생적 식품 제조 실태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회사를 속여 회사 내에 잠입해서 회사의 비위생적인 식품 제조 실태를 고발했다. 보도내용은 사실이었지만 러킹이 문제 됐다.
많은 논란 끝에 1997년, 배심원단은 ABC에게 550만 달러의 배상금을 판결했지만 1999년 연방항소법원에서는 ABC의 기만행위 부분에 315,000달러, 무단침입 행위 부분에 상징적으로 1달러의 배상금을 결정했다. 각국의 법 현실에 따라 러킹 행위는 조금씩 다른 취급을 받지만 어찌 됐건 이 사건 이후로 세계 각국은 예전처럼 언론행위에 따르던 무분별한 몰래 카메라, 러킹 행위를 자제하고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사의 언론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과의 충돌에 관해 명확한 법 규정은 없으나 언론사가 사적 영역에 잠입하여 러킹으로 취재하는 경우는 언론사는 책임을 물게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취재 대상이 사인(私人), 즉 일반인인 경우는 사적 영역, 즉 비공개공간의 러킹은 금지된다. 그러나 공인인 경우는 사적인 비공개공간의 러킹은 허용된다. 다만 그 경우에도 사적 사항의 러킹은 금지된다.
한 줄 요약 : 공인의 공적인 사항에 있어서만 러킹이 허가됨
온라인 공간에서의 러킹
그럼, 온라인 공간에서의 러킹은 어떨까?’디지털 딜레마 : 온라인 (소셜) 미디어 전문가들이 안고 있는 윤리상의 문제 (Digital dilemmas : Ethical issues for Online Media Professionals. 2003)’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특정인만 읽을 수 있는 비공개 SNS계정, 그룹이나 사적인 대화방에 허락 없이 잠입해 정보를 캐내고 취재하는 것은 허용될까? 오프라인일 때는 금지되나 온라인에서는 괜찮다는 견해도 있기에 논란 중에 위 책이 나온 것이다. 저자는 비공개 계정, 그룹이나 대화방에 러킹하여 허락 없이 기사를 취재, 생산하는 경우는 오프라인에서 사적영역에 몰래 잠입해서 취재하는 것과 같다고 보아 언론윤리에 반한다고 설명한다. 옳은 견해다.
이상에서와같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공개되지 않은 사적 영역에 기자가 몰래 숨어들어 허락없이 기사를 생산하는 행위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책임을 진다고 보는 것이 1990년대 이후의 경향이다.
반대로 이에 비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서의 행위는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플레인뷰(Plain view)에서의 묵시적 승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이브 거리의 풍경을 소개하기 위해서 기자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할 때 행인의 얼굴이 공개돼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만, 이 정도는 승인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대로상이나 사이버 게시판에서라면 취재도 묵시적으로 승인됐다고 보는 것인데,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곳에서는 당사자들 스스로 처신과 행동을 주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한편, 프라이버시 침해 여부는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위에 설명한 원칙에 따라 판단을 하면 되겠지만, 구체적 상황에 따라 언론의 자유를 더 보장하기도 하고 취재대상의 기본권을 더 보장하기도 한다.
한 줄 요약 : 온라인에서도 사적 영역을 함부로 팔 수 없으나,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달리 판별
기성용 비공개 SNS 계정 취재 사건은?
이번에 문제 된 기성용 선수 비공개 SNS 계정 취재 사건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운동선수는 공인이 아니나 저명한 스타나 국가대표인 경우는 공인에 준해서 취급되기도 한다. 기성용 선수의 경우는 공인에 준해서 취급된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번 사건을 소셜미디어 리터러시의 측면에서 정리하자면, 공인의 사적 영역에서의 러킹이며 사적 사항의 러킹이 아닌 공적 사항(국가대표팀 명령 체계)에 관한 러킹이다. 김현회 기자는 면책된다.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 기자가 면책된다는 결론에 대해 이에 대해 나올 수 있는 반론과 함께 부연한다. 80여 명 정도가 볼 수 있는 비밀 계정이라면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 가라는 반론이 있었다. 애매하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는 그 정도라도 ‘사적인 영역’이라고 본다. 그 반론은 명예훼손에서의 공연성을 염두에 두고 나올 수 있다. 명예훼손 법리에서 공인을 취재하여 사실이며 공익에 부합하면 위법성이 조각된다.
러킹 역시 공인을 러킹하고 그 결과로 나온 기사가 사실이며 공익에 부합하면 위법성이 조각되거나 면책된다. 언론의 명예훼손 사안에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한 조건에서,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한 줄 요약 : 러킹이라도 상대가 공인이고, 사안이 공익에 부합하면 위법이 아님.
전파가능성설과 사적 영역에서의 러킹 문제
명예훼손에 관한 우리 대법원 판례는 ‘공연히…명예를 훼손’이라는 조문에서 ‘공연’을 해석할 때 전파가능성설을 따른다. 명예훼손 발언을 한 사람에게 했더라도 그 말이 퍼질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파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80명이 같이 보는 공간은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 80명 중에 기 선수의 말을 외부에 퍼뜨릴 사람이 한 두 사람은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번 문제는 명예훼손 사안과는 좀 다른 내용이다. 주거침입의 사안과도 관련성이 있다. 즉 김현회 기자의 기사 내용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김 기자의 취재 과정까지도 타당한지를 다루는 러킹의 사안이다. 기성용 선수가 자신의 비밀 SNS계정 공간에서 평온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데 김현회 기자가 기 선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들어가서 취재하고 기사로 내면서 기 선수가 누리던 SNS계정 공간에서의 평온을 깨뜨린 것이다.
그 SNS공간은 애초 목적이 기성용 선수의 지인들만 보기 위해서, 즉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목적에서 ‘사적’인 목적이 인정되며, 활동, 즉 커뮤니케이션 내용도 사적인 일상사라고 할 수 있다. 회원이 1000명 정도 넘어가면 평온성이 인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적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겠지만 80명 정도면 충분히 평온성이 인정될 수 있다. 실제로 김현회 기자가 기사를 내기 전까지 평온하게 유지돼 왔다.
듀나의 영화게시판 같은 경우에는 초기에는 사적 영역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공적 영역으로 봐야 한다. 기성용 선수의 비밀 SNS계정은 사적 목적의 개설, 사적인 활동 내용, 및 평온성이 인정되는 사적 영역이다.
한 줄 요약 : 기성용 선수의 SNS는 사적 영역
포털 네이트를 언론으로 보아야 할까
한편, 김현회 기자가 글을 송고한 곳이 포털사 네이트의 김현회 칼럼 코너인데 포털사에서 제공하는 칼럼이나 자체 제작 뉴스가 법적으로 언론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우리나라 언론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그것을 사실상의 언론이라고 본다. 신문법상의 적용만 받지 않을 뿐, 법이 정한 외의 문제에서 포털사 자체 서비스 뉴스가 언론이냐 아니냐를 정해야 하는 사건에서는 언론이라고 정하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처럼 언론의 러킹 취재의 위법성 여부를 다루는 문제의 경우에 김현회 기자의 기사 활동은 언론활동으로 본다. 김 기자의 활동이 언론 활동으로 되면 그에 따른 특별한 의무도 생기지만 권리도 많이 보장된다.
한 줄 요약 : 네이트는 언론, 김현회는 기자로 봐야 함.
김현회 기자의 기사는 공익성에 부합하는가
또 다른 중요한 반론은, 김현회 기자의 기사 내용이 공익적인가, 그 기사에서의 신상공개가 적합성과 필요성, 상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반론이다. 공익성과 적·필·상 원칙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관련 기사: ‘기성용 논란’에 부치는 매체비평지 기자의 제언 -미디어스 2013.07.10-
문제가 되고 있는 김현회 기자의 글을 전체적으로 보면, “어디 새파랗게 어린놈이 하늘 같은 선배에게 감히”라는 투로 “스승 알기를 무슨 개떡으로 알면서 태극마크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라는 논지로 글을 썼다. 분풀이나 악감정으로 썼을 뿐, 공익적 의도가 없다는 반론인데, 김현회 기자는 보수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대표팀의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대표팀 감독의 업무상 지휘 체계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글의 성격을 가지고 김현회 기자의 공익적 의도를 부정하는 것은 무리다. 기사에서 권위주의적 색채가 없지는 않지만 김 기자는 대표팀 감독의 지휘체계 붕괴, 해외파와 국내파의 파벌 등을 우려하는 글을 썼다. 권위주의와 자유주의(리버럴 포함)라는 세계관의 차이는 어느 정도 용인을 하고 서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김현회 기자는 공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러킹을 했으며 또 공익을 도모하기 위한 글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적필상 원칙의 고려, 즉 1) 필요성 : 다른 더 나은 방법이나 기사 서술은 없었는지? 2) 상당성 : 신상털기 식의 기사는 너무한 것 아닌지? 등을 고려하면서 더 나은 해결 방향과 더 나은 기사 내용을 모색하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기대에 김현회 기자가 못 미쳤다고 해서 김 기자의 러킹 행위가 면책될 수 없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 “좀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그렇게밖에 못써?”라는 식의 다그침인데, 그것은 주제넘은 간섭이다.
기자가 언론윤리 차원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 가이드라인을 지켰는지를 따지고 언론의 취재 가이드라인과 법질서를 지켜서 면책(내지 위법성조각)이 되면 충분한 것이다. 그 이상은 김현회 기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한 줄 요약 : 김현회 기자의 글은 공익을 도모할 목적의 글이고, 언론윤리와 가이드라인을 지켰음
덧붙이는 말
이상의 글은 필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재교육과정에서 언론사 중견기자들에게 ‘언론윤리와 법’에 관해 강의한 내용의 일부이며 다른 매체에 올렸던 글인데, 기성용 선수에 대한 러킹 취재 사례를 가지고 다시 썼다. 미디어교육학이 가르치는 내용인 (소셜)미디어 리터러시는 (소셜)미디어의 올바른 이해와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이해와 활용은 실용적이어서 상업적으로 방문자 수나 주목도를 높이는 법도 포함한다.
소셜미디어·SNS의 올바른 이해와 활용을 위해서는 규범적으로, 소셜미디어·SNS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구체적으로는’소셜미디어·SNS 가이드라인’으로 압축적으로 나타난다. 기성용 선수 사건을 계기로 한국프로축구연맹(@kleague)은 K리그 클래식(1부리그, 14개팀)과, K리그 챌린지(2부리그, 8개팀)의 선수들에게 SNS를 사용할 때 주의를 당부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지난 4일 공개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소셜미디어·SNS 가이드라인 제작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명확히 이해시키고 오남용 시의 문제점 등을 알리는 ‘소셜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까지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 줄 요약 : 일이 터졌으면 교육이라도 똑바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