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터넷에서는 포경수술이 성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글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포피를 잘라내 일부를 노출시키는 수술인 만큼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때도 당연히 성감이 줄어들 것 같고, 일단 대다수의 남성들이 어머니의 사기와 기만에 낚여서(…) 강제로 수술을 받았을 테니 이 수술에 대한 감정도 좋지 않을 수밖에.
그렇다면 정말 포경수술이 성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대다수의 의학자들은 이에 반대 의견을 표한다. 물론 포경수술 반대론자들은 의사들이 포경수술으로 얻는 수익 때문에 눈과 귀를 가리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건 사실 시력교정수술을 둘러싼 음모론이나 심하면 백신 음모론(…) 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니 그리 귀담아듣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의사들이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의학적으로 해를 끼치는 게 명백한 수술을 권장하진 않는다. (물론 의학적으로 별 근거가 없는 시술을 권장하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분이 받은 시술이라든가… 읍읍!)
논문들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바로 논문부터 봐도 될 것 같다. 2013년 출간된 아래의 계통적 문헌분석 논문, 「남성의 포경수술이 성적 기능, 민감도, 만족도에 영향을 끼치는가?」 는 원본 데이터를 포함하여 저자들의 기준을 만족시킨 36개의 논문을 분석하였다.
이 중 2개는 높은 품질의 무작위 통제 시험이 이루어졌고, 34개는 대조군 연구 또는 코호트 연구로 이루어졌다. 포경수술을 받지 않은 19,542명과 포경수술을 받은 20,931명 등 모두 40,473명의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연구 방법상 결함이 발견된 논문을 제외하고 모든 논문에서 민감도, 발기 기능, 성감, 조루 및 지루, 성적 만족도, 쾌감 등에 있어 포경수술이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다.
마찬가지로 계통적 문헌분석을 실행한 2010년 논문 「비치료적 남성 포경수술의 안전성과 효과」도 같은 결론을 내고 있다. 성인의 포경수술이 성적인 만족감이나 기능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하는 논문들도 있습니다만
물론 포경수술이 성적인 만족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논문도 있다. 2007년 논문 「성생활에 있어 남성의 포경수술이 끼치는 영향」은 개중 대표적인 논문으로 나무위키에서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저자의 전공이 의학도 생물학도 아닌 물리천문학인 건 둘째치고(…) 애당초 공인되지 않은 설문지로 조사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한편 2002년 논문 「성인 포경수술 결과 연구: 발기 기능, 음경의 민감도, 성활동과 만족감에 끼치는 영향」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 논문이다. 논문은 성인 때 포경수술을 받은 123명의 남성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는 긍정적인 영향을, 38%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신뢰도 높은 연구일수록 아니라고 말합니다
계통적 문헌분석 연구들이 말하듯, 연구가 잘 설계되어 신뢰도가 높을수록 포경수술과 성감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일부 관계가 있다는 논문도 있긴 있지만 연구방법 설계에 결함이 있는 경우가 대다수.
미국 소아과학회는 과거 포경수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의학적 이유가 없다면 권하지 않음)이었는데, 2012년 입장을 바꾸었다. 학회는 2012년 소아과학 저널에 낸 논문을 통해, 포경수술의 위험이나 부작용은 드물고 적은 반면 이점이 크다고 발표하였다.
포경수술은 특히 질병 예방 차원에서 이점이 크다. 특히 에이즈를 발병시키는 HIV 감염에 대해서는 사실상 예방 효과가 공인된 상태. 그 외에도 성기 포진이나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 등에서 예방 효과가 관찰되었다. (다만 HIV 감염 외에 성 매개 질환 감염의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는 듯.)
사실 포경수술이 성감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은 의학적인 근거가 있다기보다, “신체 일부를 잘라낸다” “포피를 잘라내어 민감한 부분을 노출시킨다”는 점이 직관적으로 왠지 성감을 악화시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지지받는 경향이 강하다. 수많은, 신뢰도 높은 연구들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고 있고 말이다.
그러니 괜히 죄 없는 포경수술에 칼을 돌리지 말자. 내 성병 예감을 위해 사기와 기만을 동원하신 어머니에게도 원망의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내 성감이 떨어진 건 포경수술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냥 나 때문인 것이다.
뭔가 더 비관적인 결론이지만 과학적으로 결론이 그렇다니 받아들일 수밖에.
원문: 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