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 이 글은 모처의 글을 허락 하에 ㅍㅍㅅㅅ 운영팀이 편집한 글입니다.
오늘 항공사고의 책임에 대해 한국의 수직적 조직문화를 언급하는 외신을 봤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떠오른 책이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였다. 이 책의 7장 ‘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에는 기사와 유사한 논리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가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착륙전 비행기의 결함을 시사하는 ‘기내방송’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 언론은 ‘권위주의적 문화’를 거론하는가? 더 나아가 아시아나 항공은 기장의 인적 구성이 매우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지금도 약 20~30%가 외국인 기장으로, 외국인 비율이 굉장히 높다. 구성상 권위주의 개입의 여지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내가 말콤 글래드웰을 싫어하는 이유
일단 이 작가가 왜 싫으냐 하면,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티핑 포인트>나 <아웃라이어> 등을 읽어보면, 글을 아주 실감나게, 정말 ‘진짜’인것처럼 쓴다. 그러나 내용 중 진실이 아닌 부분도 상당수 섞여 있다.
대표적인 것인 1만 시간의 법칙이다. 1만 시간 죽어라 노력하면 한 분야의 일가가 된다는 매우 훈훈한 이야기를 책에서 엄청 강조하지만, 실증분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간단하게 말해, 어떤 이는 1만 시간은커녕 1천시간 전후의 노력으로도 전문가가 되는 반면, 안 그런 사람도 많다. 연구에 따르면 아무 분야나 1만 시간 한다고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적성에 맞춰 노력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또 <처음엔 누구나 걷지 못했다>라는 책을 보면 <아웃라이어>에서 그렇게 강조한 ‘월령효과’도 거짓임이 드러난다. 분명히 7월(=캐나다 초등학교 입학 기준 시점)에 태어난 아이들이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후속 연구 결과, 위대한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의 출생일에서는 월령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정녕 위한 선수는 이런 월령 효과를 극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탄생한다.
세계적인 학자 스티븐 핑커 역시 말콤 글래드웰을 비판한 적 있다. 아거님의 요약에 따르면 ‘노가리텔링으로 보면 문제가 없으나, 예외적 일화들을 가지고 과장된 일반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개념을 부정확하게 쓰는 문제마저 가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저자의 오리엔탈리즘, 우리가 왜 받아들여야 하나?
아시아나 항공의 사고에서 미국 전문가들이 ‘한국 항공사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사고의 원인으로 일제히 지목하고 있다. <아웃라이어>에서 괌 공항의 KAL기 사고 원인으로 ‘권위주의적 문화’를 지목하는 것을 보면서 참 불길했는데, 글래드웰이 정말 동양에 대한 이상한 인식을 낳게 했다는 생각이다. 이준구 교수 역시 4년 전 댓글을 통해 이를 비판한 적 있다.
“나는 그 Gladwell 이 어떤 친구인지 잘 모르네. 내가 그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대해 분개하는 이유는 책 중반으로 가면서 완전히 딴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점이네. 예컨대 대한항공의 괌 추락사건이 ‘아웃라이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 책의 주제는 몇 명의 천재가 사회를 이끄는데 자신의 천재성 말고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점 아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추락사건은 왜 나왔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데. 그 뒤로는 계속 중언부언.”
결국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서 한번 ‘한국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난도질 당한 다음에, 이제 모든 한국에 발생하는 사고는 다 이걸로 치환되고 있다. 이게 정말 정당한가? 근거도 별로 없는 ‘라이어(liar)’ 저자가 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사실로 믿어버리는 것. 더 나아가 이런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이 불쾌하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