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울린 감동 실화
아내: 울었나요?
남편: 네, 울었습니다. 펑펑까진 아니라도 훌쩍훌쩍 눈물 찔끔 했습니다.
아내: 결혼식 때도, 첫째 둘째 태어날 때도 안 울더니 웬일인가요.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군요.
남편: 너도 울었잖아요.
아내: 부부는 일심동체니까요. 아마 저희 말고도 『아이큐 50 내 동생, 조반니』(이하 ‘내 동생, 조반니’)를 읽으면서 우는 독자는 꽤 많을 것 같아요. 감동적이거든요.
남편: 그렇죠. 감동적입니다. 슬퍼서, 화나서 우는 게 아니라 저도 감동받아서 살짝 울었습니다. 다소 뻔한 말이긴 한데, 감동이라는 게 진솔함에서 나오잖아요. 최근에 읽은 글 중에서 이렇게 솔직한 에세이가 싶었나 싶을 정도인 책이었습니다. 과연 이탈리아 아마존 종합 1위에 오를 만한 작품이에요.
아내: 사실 에세이가 대부분 솔직하긴 하죠. 정치인이 쓴 책을 빼고는요. 저도 이 책이 진솔하다는 데는 동의하고요. 진솔함도 진솔함이지만, 그보다는 이 책이 감동적인 데는 관계에 있다고 봐요.
남편: 관계요?
아내: 네, 저자인 자코모와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조반니는 형제잖아요. 자코모가 형이고, 조반니는 6살 터울 남동생입니다. 조코모 위로 누나와 여동생이 있고요. 자매 사이에서 홀로 남자였던 저자는 남동생이 생긴다는 소식에 기뻐합니다. 그리고 그 동생이 ‘특별하다’는 엄마의 말에 잔뜩 기대를 하죠.
남편: ‘특별’하다는 건, 동생 조반니가 다운 증후군이라는 의미였죠. 그러니까 이 책은 다운 증후군 남동생과 함께 한 기록인데, 형과 남동생이라는 관계가 어떻다는 거죠?
부모가 아니라 형제가 써서 더 공감 가는 이야기
아내: 가족 중에 특별한 누군가가 있고, 그 특별함으로 일상 생활이 어려울 때,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은 많습니다. 보통은 서술하는 사람이 엄마이거나 아빠죠. 우리가 첫째를 막 낳았을 때, 읽고 감동했다며 추천해준 『문어별 아이 료마의 시간』도 그렇잖아요?
남편: 자폐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쓴 책이었죠.
아내: 어땠나요.
남편: 역시 감동적이고 진솔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내: 저 역시 그 책을 감동하며 읽긴 했지만, 『내 동생, 조반니』에는 진솔함 이상의 뭔가가 있었습니다. ‘공감’이라는 건데요. 자코모의 언행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만약에 화자가 엄마나 아빠였다면 달랐을 거예요.
남편: 구체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아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지는데요. 1장은 자코모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이전까지, 2장은 중학교 시절, 3장은 고등학교 시절을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대개 비슷하더라고요.
이탈리아에서도 중학생은 질풍노도의 시기죠. 외모에 민감하고, 또래 친구 평판에 신경 쓰고, 성적도 챙겨야 하고, 이성 친구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요. 그러다 보니 조반니와 잘 지내던 자코모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남동생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해요. 2장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에피소드인데요.
남편: 저도 그 대목 기억나요. 기분이 짠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벌어진 이야기죠. 혼자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조반니를 소년 세 명이 둘러싸고는 놀리는 장면.
아내: 그렇죠. 그 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자코모 친구의 동생이었어요. 동네 노는 형들이라면 사정이 다르지만,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이란 말이죠. 자코모가 가서 말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헤드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땅만 바라봐요. 특별한 남동생의 존재가 부끄러워서 동생이 아닌 척 한 거죠.
형이 아니라 엄마였다면 어땠을까요. 괴롭히는 상대가 누구든 달려가서 조반니를 구했을 거예요. 엄마나 아빠는 그런 존재니까요. 그래서 이 책에서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 거예요. 보통 엄마나 아빠가 쓴 책은 독자가 ‘과연 내가 저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용감한, 강한, 위대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강해야 하고 강할 수밖에 없는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조금은 약해도 되는 형이 썼어요.
성장, 약함을 알고 덜 약해지려는 노력
남편: 약함을 알고 덜 약해지도록 노력하는 게 성장이라 한다면, 이 책은 성장이라는 키워드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인데요. 특별한 가족을 둔 엄마나 아빠가 쓴 책에도 나름의 성장 코드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비중은 아니거든요. 특별함에 적대적인 사회에서 엄마나 아빠는 이미 성장해 있어야 할 존재니까요.
그에 비해 형제는 그렇진 않잖아요. 부모라는 존재보다는 좀 더 성장이라는 부분이 많이 들어갈 여지가 있죠. 저는 메탈키드로서의 자코모 부분도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아내: 학교에서 발표하는 장면이죠?
남편: 네. 자코모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이모 영향으로 헤비메탈을 어릴 때부터 듣습니다.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21세기 헤비메탈은 비주류 장르죠. 그는 메탈을 들으면서 메탈 이외의 음악은 인정하지 않아요.
하루는 학교에서 스스로에 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저마다 자신의 꿈, 취미를 이야기하죠. 자코모는 좋아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머릿속에는 거친 음악을 하는 인디밴드가 자리 잡고 있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단어는 대중적인 팝 가수였습니다. 친구들 평판이 두려웠던 거죠.
아내: 특별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미겠죠. 저는 저 장면을 읽으면서 평균을 벗어난 삶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곳에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한국은 다양성이 없는 사회라고요. 저 에피소드를 보면, 이탈리아도 크게 다르진 않더라고요.
남편: 그렇죠. 특별함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건 어느 사회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통령도 특별함을 미워하잖아요.
아내: 모든 사람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꺼려 한다, 그래서 약하다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에요. 자코모는 어쨌든 그 약함을 극복하잖아요. 동생을 향한 부끄러움이 사랑으로 바뀝니다. 자코모만이 아니에요. 3장은 조반니의 특별함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자코모의 친구, 자코모 가족과는 전혀 상관 없는 독일 사람들까지도 조반니의 언행에 경탄하고 그를 사랑합니다.
남편: 이런 이야기 구성을 본다면 크게는 정-반-합 구조네요. 처음에는 그저 동생이 좋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동생의 특별함 때문에 조반니가 싫어집니다. 하지만 일련의 위기를 겪고는 다시 조반니를 사랑으로 대하게 되죠. 동생을 사랑한다는 점만 본다면 1장과 3장은 같지만, 부끄러워 했던 동생의 특별함까지 사랑하기에 그 사랑의 농도는 더 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내: 헤겔을 이야기하니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 생각나네요. 저자가 199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인데요. 쓰는 문장이 굉장히 수려합니다. 서른 넘은 우리들보다 훨씬 잘 써요.
남편: 그러니 책을 쓸 수 있었겠죠. 엄마 책장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헤세, 마르케스, 우웰 등등. 자코모가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는 배경에는 문학을 즐겨 읽는 엄마의 존재도 무시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밑줄 좍, 기억에 남는 구절
아내: 이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하나만 꼽는다면?
남편: 177쪽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요.
조반니는 춤을 췄다.
조반니는 춤을 춘다.
문제는 조의 음악이 조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것이다.
들어 보았는가?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자들에겐 춤을 추는 자들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아내: 니체의 말과 엄마가 했던 말이 통하네요. 275쪽에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우선 우리의 기대와 바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반니의 삶을 볼 필요가 있어. 이건 관점의 문제야.”라고요. 유튜브 인터뷰에서도 나오는 문구죠. 관점의 문제라는 문장요. 유튜브 보셨나요?
남편: 네, 봤어요. 저는 책을 먼저 읽고,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요. 인터넷 서점 책소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한번 보시면 좋겠네요. 활자가 영상화되면서 오는 감동은 또 다릅니다. 여하튼 저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질문 드릴게요. 『내 동생, 조반니』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을 이야기해주세요.
아내: 저는 243쪽이요. 자코모가 좋아하는 이성 친구인 아리안나가 한 말이죠. “과거에 네가 했던 일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앞으로 하게 될 일,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한 거야.” 저자도 인정하듯, 세상에서 가장 빤한 말이지만,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 한 말이기에 자코모는 그 말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런 거 같아요. 세상에 좋은 말은 많죠. 누구에게 듣느냐가 내용만큼이나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남편: 그런 면에서 저희 부부도 앞으로 이런 시간을 종종 가졌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책 이야기를 하는 거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서로 읽은 책을 소재로 대화 나누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아내: 노력해봐야죠.
남편: 끝으로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겠어요?
아내: 저희 부부도 그랬지만, 우선은 엄마나 아빠가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제 기억이 옳다면, 다운 증후군은 고등학교 때 지식으로 배웠던 듯해요. 시험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요. 그냥 외웠죠. 시험 끝나고는 잊었고요. 그런데 엄마가 되고 『조반니』를 읽으니까 뭐랄까, 제 감정이 이입되어요.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자식은 없잖아요. 그 특별함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관점의 문제이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아이를 키웠는지 스스로 반추하는 시간이었어요. 이 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가끔 등장하는 자코모의 엄마와 아빠는 훌륭한 분 같아요. 아이의 특별함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아빠도 마찬가지고요.
남편: 네.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굳이 엄마나 아빠가 아니더라도 책을 뜻 깊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조반니를 빼고 설명할 순 없지만, 여하튼 조반니를 뺀다면 자코모의 성장 이야기라고 볼 수 있잖아요. 자신의 약함을 부정하다가, 그것을 인정하고, 더 성장해가는 이야기요. 누구나 성장해야 하잖아요. 747 성장, 이런 게 아니라 인간적인 성장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아무나 읽어도 충분히 감동 받을 책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워낙 드라마틱하잖아요. 덕분에 2017년에 영화로도 개봉 예정이라고 하고요. 내년에는 첫째가 네 살인데, 영화관에서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아내: 무리입니다. 집에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