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은 정치의 공백을 만든다. 이들 뉴스들은 세상사를 개인적 이야기나 스캔들의 수준으로 환원시켜 탈정치화를 이끌어낸다. 국내 뉴스나 국제 뉴스 모두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특히 연예인이나 왕족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는 정치적 결과는 배제하고 사건 그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을 주기”위해, 혹은 “사회적 문제”란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 극화되어(dramatized) 전달된다.”
– P. Bourdieu(1996), On Television, translated by Priscilla Parkhurst Ferguson(1998). New York: The New Press, p.51
보여줘야 할 국정원은 무시하고, 연예인의 비도덕을 비난하는 텔레비전
SBS 심층 시사 프로그램 <현장 21>의 연예 사병 관련 뉴스를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위에서 인용한 부르디외의 텔레비전에 대한 통찰이다. 이하에서는 그의 통찰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도록 하자. 큰따옴표는 위 저서의 인용과 개념 사용이다.
부르디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연예인은 “정치적 결과” 없는 “교훈 주기”의 가장 손쉬운 대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만큼 착하고, 공손하며, 무해하길 바라는 대상이 또 어디 있는가? 헐리우드 스타의 기행과 일탈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유독 국내 연예인의 일탈과 기행에 대해서는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그 잣대가 지나치게 엄격해 마치 연예인은 우리 모두가 악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알리바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르디외에 따른다면 연예인은 “어떠한 중요성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모두가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부르디외가 텔레비전에 대해 느꼈던 공포 중의 하나는 보여주며 감추기(show and hide)였다. 그는 말한다. “텔레비전은 정작 보여 주어야 할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보여 주어야 할 것을 보여주지 않거나, 또는 그것을 덜 중요하게 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혹은 텔레비전은 현실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의미를 주는 방식으로 다른 것을 구성한다.”
연예 사병 관련 아이템을 전한 <현장 21>이 방송되기 이틀 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는 ‘국정원에 무슨 일이’ 코너가 사전 예고도 없이 결방되었다. MBC 기자들은 회사 간부의 검열로 기사가 통편집됐으며, 제작 과정에서도 회사 간부로부터 편향된 보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SBS는 25일 <현장 21>은 ‘연예 병사들의 ‘화려한 외출’ 편을 방송한다.
“스캔들과 스펙터클에 대한 추구”는 “정작 보여주어야 할 것”은 보여주지 않고 “다른 것”을 보여주며 우리가 논의해야 할 아젠다를 바꾼다.
그 결과는 진짜 “정치의 공백”이다.
너무나 정치적인,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공중파
이와 같은 현상이 최근의 것만은 아니다. 기실 “인간적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의 전성기는 80년대였다. 검열과 탄압으로 정치 기사를 쓸 수 없으니 사회만 열심히 팠다. 정의의 이름으로 나쁜 놈을 단죄하며 진짜 나쁜 놈은 건드리지 않았다.
2010년대는 연예고발기사의 전성기다. 정의의 이름으로 연예인을 단죄한다. 텔레비전은 나쁜 연예인의 일탈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정의의 편에 위치시키며, 그 결과 “중산층 도덕률의 대표자”로 군림하게 된다.
이 와중에 우리는 “진실로 거짓(truly false) 혹은 거짓이 된 진실(falsely true)”을 이야기할 뿐이다. 일부 연예인의 일탈은 그것이 비록 거짓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진짜 사회적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측면에서 “거짓이 된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사실일지라도, 이 사건은 “진실로 거짓”이며 사이비 사건(pseudo-event)일 뿐이다.
물론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이 2년의 의무적 군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일부 연예인들의 특권적 군 생활은 분노를 자아낼만한 일이다. 그러나 패스트푸드 같은 즉각적 공분, “신속한 사유”는 보다 구조적인 이슈들을 우리의 시야에서 놓치게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 그들의 군 생활이 일반인들과 형평성을 맞추는 일이 과연 우리의 일상과 얼마만큼 커다란 관련을 맺을까?
현재의 텔레비전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고 있다. 연예 병사의 비리를 취재할 미디어는 차고 넘친다. 모든 미디어가 <디스패치>가 될 필요는 없다. 이를 <현장 21>이 2주 연속이나 다루었다는 사실은 “다른 것을 말할 수 있었던 그 시간, 그러나 그렇지 않도록 시간을 이용하기”일 뿐이며 “시민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가져야 할 적절한 정보들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로 <현장 21>의 연예 사병 보도는 오늘날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검열”의 구조적 일례이다. 지상파 텔레비전의 기자가 수개월 동안 연예 병사들의 행사 뒤를 쫒으며 연예 병사의 특권적 군 생활을 고발할 것이 특종이 되는 현실은 부끄러운 우리 텔레비전의 현주소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