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방향은 단순한 부정축재나 인사 전횡만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6년이 끝나가는 10월 무렵 폭로되기 시작한 대통령과 비선실세 간의 관계는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들과 진실, 그리고 의혹을 양산하면서 국내의 수 없이 많은 문제들과 이슈들을 거대한 블랙홀로 빨아들이고 있다.
그중 가장 최근에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문화계와 체육계 전반에 걸친 정치 검열의 의혹인 ‘블랙 리스트 파문‘이다.
블랙 리스트의 기원
블랙 리스트의 기원은 영국의 찰스 2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기 이전, 자신의 아버지인 찰스 1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58명의 판사들과 법원 관리들의 명단을 작성해 둔 것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의 아버지를 시해한 이들을 사형시키거나 무기징역에 처했고, 이후 그의 리스트는 ‘블랙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블랙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정치적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대표적으로 각 기업에 문제를 일으키는 ‘블랙 컨슈머 리스트’나 도박장에서 상습적인 문제를 일으켜 출입이 금지되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있다. 혹은 비정상적인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별도의 블랙 리스트로 작성하여 관리하는 것 또한 잘 알려져 있다.
문화계의 블랙 리스트는 왜 문제가 될까?
그렇다면 문화계 블랙 리스트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미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블랙 리스트라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않나?” 얼핏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어찌 보면 문화계의 인사들 또한 정부나 관공서에서 보기에는 사회에 지속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관리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블랙 리스트 작성 파문’의 근원은 이처럼 단순한 정부 차원의 관리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서 문제가 있고, 또 문화 예술에 대한 검열의 문제는 헌법상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22조는 이렇게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이러한 예술의 자유는 기본적으로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 나누어진다. 창작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로 인정되는 반면, 표현의 자유는 상대적인 권리로 인정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식의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번 블랙 리스트를 통해 정부가 검열하려고 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냐? 이것은 불법적인 일이 아니지 않느냐?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창작된 예술품의 실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유럽의 국가들이 인종차별 언행을 형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나 미국 등의 국가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민사적 피해 보상을 부여하는 것 등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블랙 리스트의 문제는 궤를 달리한다. 이는 단순히 의견을 발표하는 것이나 인사의 개인적 정치 성향, 지지 후보가 누구인가 하는 광범위한 문제에 기반한다. 이 문제들은 표현의 자유의 규제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는 ‘창작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정부의 슬로건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었다.
이 정권 들어 뉴스에서는 외국에서 한류가 얼마나 많은 각광을 받는지 경쟁적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실제 정부에서는 문화 융성과 창조 경제가 진정한 창조와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이념과 정치적 성향이 맞는 지지자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이 블랙 리스트 사건이 알려준 것이다.
진정한 문화융성은 헌법에 보장된 절대적 권리인 창작의 자유에 기반한다. 그렇게 창작된 작품이나 예술품이 관객을 통해, 또는 시민들과 시장을 통해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자유 시장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시장 경제를 통한 양화의 구축 아닌가? 자유로운 경쟁이 시장을 강화할 것이라 주장한다면 검열이나 규제는 필요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이 정부에서 또 말했던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규제의 철폐’였다. 그런데 오히려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이지 않는 규제’를 예술계에 가한다? 규제를 철폐해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주창하던 사람들이, 문화와 창작 산업을 규제해서 융성을 끌어낸다는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문화와 예술은 절대 규제와 검열 아래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익 쪽 인사들과 박근혜 정부의 지지자들은 ‘블랙 리스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종북 좌파의 이념과 문화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문화 안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좌파적인 문화와 예술은 사회 분열과 분란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용남 청주대학교 영화학과 겸임교수 같은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문화안보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종북 좌파의 이념과 문화에 대항해 대한민국의 이념과 문화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큰 맹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결코 사전 검열이나 표현의 자유를 국가적인 관점에서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획일화된 국민의 사상과 단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끝없는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의 가치를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사회 분열과 분란에 대한 공포감의 조성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나 일본 군국주의자, 그리고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이를 함께 들먹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솔직히 어불성설에 가깝다.
역사 속의 문화 억압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예술이 가장 융성하였던 시절은 언제일까? 대표적인 문화융성기로 유럽의 르네상스 시절을 꼽을 수 있겠다.
르네상스는 교황의 권위가 서서히 몰락하면서 기독교에 의한 사상의 억압이 줄어들던 시기였고, 동시에 무역을 통해 자체적인 재력을 쌓은 독립된 권력자들이 등장하던 것이 맞물리며 발전의 씨앗이 피어났다. 종교적 사상적 탄압에서 벗어나 약간의 자유가 주어지는 순간 그 화려한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미국의 영화는 언제 가장 융성하였을까? 놀랍게도 1930년대 이후부터이다. 당시 미국의 영화계는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의 감독 제작자들과 촬영 감독들이 미국 영화계에 화려한 창작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이후 대공황을 비롯한 경제 위기 상황을 거치면서 대규모 스튜디오들이 자본을 활용하여 독립 스튜디오를 몰살시켰고, 이 시기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그리고 매카시즘의 광풍이 지나간 1960년대 역시, 미국의 젊은 창작자들이 드라이브인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 아래 검열과 규제가 없는 환경을 타고 자유로운 창작의 시대를 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영화제작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은 모택동의 ‘문화 혁명’ 시절 문화의 암흑기를 겪었다. 그러다 모택동이 사망하고 문화 혁명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상황이다.
마무리하며
문화는 정치적인 색채로 보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게 된다. 문화를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홍보의 수단으로, 그리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바라보며 그 목적에 맞추길 요구하는 순간 모든 창작의 씨앗이 무너지는 것이다. 앞서 문화를 정치적으로 검열하고 단속하였던 국가들의 사례와 이들이 맞이한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로 내려질 것이다.
진정으로 문화와 창작이 발전하길 원한다면, 그래서 문화와 예술 창작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파이를 키우고자 한다면 어떤 정치적 세력의 규제도 억압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그리고 이 나라도 이번 사태를 통해 그런 교훈을 얻었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원문 : 로빈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