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보다 게임이 먼저였던 코어 게이머의 신혼생활에서 이어집니다.
아이가 하나 딸린 게이머의 결혼생활
우리는 과속결혼이었고, 곧 아이가 나왔다. (편집자 주 : 약 10살의 나이 차가 있는 만큼 노렸을 것으로 사료된다) 예정일 직전, 나는 관대하신 마느님 덕에 결혼 직후에 몇 달 동안 게이머로서의 ‘마지막 게임 라이프’를 불태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그녀의 배우자로서의 삶에 내 인생을 바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산 직후엔 물론 정신없었다. 수시로 그녀의 안부를 살피고 아이를 챙기는 삶을 살았다. 아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는.
그렇다. 아이가 백일 정도 되니까 이제 아내와 나는 부모로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얼추 감을 잡아가는 것 같았다. ‘부모로서의 삶’에 어느 정도 요령이 생긴 것이다. 요령이 생기자 약간이나마 여유도 생겼다. 그 여유를 게이머는 물론 게임에 활용한다.
나의 삶에서 게임의 비중이 전과 같지 않다는 건 사실이었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이의 생활패턴이었다. 갓난아이들은 하루에 20시간씩 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게 규칙적이지가 않다. 20시간을 내리 자고 4시간 동안 활동하는 ‘패턴’ 같은 건 없다.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깼다가 자다가를 반복한다. 그리고 생후 시간이 지날수록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안 그래도 없던 패턴은 더 없어진다.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임의 종류에는 큰 제약이 생긴다. 파티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은 어려워진다. 언제 아이가 울어서 달려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나마도 이 와중에조차 마느님은 강한 배려의 혼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내가 심지어 LOL(!!!)까지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앉아서 일하는 나에 비해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아내의 체력은 훨씬 더 빠르게 고갈되곤 했다. 육아를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거다. 아이를 돌보는 건 회사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것보다 체력적으로 월등히 힘들고 고된 일이다. 그녀는 매일 밤 일찍 곯아떨어졌고, 다음 날 아침 그녀가 일어나기까지 깨어있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건 나의 책임이었다.
한편으로 아이를 돌보는 게 이렇게 ‘고달프기만 한’ 일이냐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내 속에 내장된 ‘유전자를 전파하고자 하는 회로의 동작’으로 인해, 내 아이는 무척 귀엽고 이 놈을 바라보는 건 확실히 재미있다.
날이 갈수록 ‘할 수 있는 짓’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게 보이니까 더 그렇다. 조금씩 커가는 아이는 어느 날인가부터는 뒤집기를 시도하고, 배밀이를 하는 척하더니 느닷없이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기어 다니면서 여기저기 머리를 박더니 뭔가를 부여잡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가 첫걸음을 뗀 것은 생후 10개월 정도였다. 돌잔치에서는 이미 뛰어다녔다.
게임과 비교해보자면 글쎄, 게임에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어딘가 ‘내 속에 내장된 회로의 기능’들 중 하나 때문이 아닌가? 육아의 재미와 게임의 재미를 완전히 같은 급으로 놓는 건 적절하지 않기에 언급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있는 건 분명한 듯하다.
달리 말하자면,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줄어든 건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덜 행복해졌느냐면 그건 아니다. 전혀 다른 재미와 즐거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가 둘 딸린 게이머의 결혼생활
첫째가 얼추 말도 하고 부모들과 조금씩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할 무렵 둘째가 생겼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둘째도 잽싸게 나왔다. 우리는 첫째보다는 조금 더 능숙해졌지만, 또 어떤 부분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까먹은 채로 둘째를 맞이했다.
내 게임 라이프는 전에 비해서 조금 더 줄어들었다. 일단은 첫째가 성장하면서 ‘놀아달라’고 청하는 일이 많아졌고, 다음으로는 물론 둘째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에는 첫째’만’ 잠들면 온전히 게임 라이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둘째’까지’ 잠들어야 게임을 조금 할 수 있다.
시간으로 보자면 결혼 전과 결혼 후 아이가 없을 때, 하루에 6시간 이상 게임을 했었다. 첫째가 생기면서 하루에 3~4시간 정도로 줄었다. 둘째가 생긴 지금은 2~3시간 정도가 보통이다. 그마저도 관대하신 마느님의 은혜로 확보되는 시간이 많다. 할 수 있는 게임의 종류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전에는 MMOG 같은 무거운 게임을 하면서 레이드에도 참여하는 건 당연했다. 지금은 캐주얼하게 할 수 있는 게임, 그중에서도 ‘언제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무방한 게임’으로 종류가 한정된다.
한편 나는 첫째를 키우면서 육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둘째가 나에게 줄 기쁨은 첫째만큼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었다. 둘째는 첫째와는 전혀 다른 아이이고, 전혀 다른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다. 아울러 첫째를 키우는 즐거움도 끝난 게 아니다.
게임 라이프의 폭도 넓어졌다. 전에는 ‘데스크탑 컴퓨터 또는 콘솔+TV 앞에 앉아서 플레이하는 것’만을 게임 라이프로 여겼다. 지금은 종종 e스포츠 관련 방송을 찾아보거나 게임에 관련된 글을 읽는 것도 게임 라이프에 속하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육아 라이프와 겹쳐서 대중화된 스마트폰 또한 감사하기 그지없다. 퍼즐 앤 드래곤 같은 게임은 하드코어 게이머인 나를 만족하게 하면서도 육아와 병행하기에 크게 지장 없는 멋진 게임이다.
게임 라이프의 폭이 넓어진 게 아니라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수 없는 게이머의 서글픈 자기위안 아니냐고? 그보다는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즐기고 있었을 새로운 게임 라이프라고 보는 건 어떨까? 결혼하지 않은 당신은 e스포츠도 안 보고 모바일 게임도 전혀 안 하는가 하면 그건 아니잖은가? e스포츠도 모바일도 전혀 안 한다면 해보길 추천한다. 보기보다 재미있다.
코어 게이머의 결혼생활 중간 결산
당연하게도 나의 게이머 라이프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의 육아 또한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남은 평생 둘 다 계속 병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망해야만 결산을 하는 게 아니고 분기별 결산이나 뭐 이딴 것도 꾸준히 해야 하는 법이니까. 나도 비슷한 걸 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이 결산의 성과에 대해 나는 ‘몹시 기대 이상’ 등급을 매기겠다. 결혼 전에 생각한 ‘결혼 생활’이란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결정’이었다. 결혼으로 인해 내가 잃게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게임을 전처럼 할 수 없는 건 물론일 테고, 여러 가지 생활 속의 결정에서도 내 의견을 100% 고집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에 비해 결혼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것들’은 불명확해 보였다. 육아의 어려움에 대한 글은 찾아보지 않아도 눈에 들어온다. 결혼한 남자가 ‘감히 버르장머리 없이 아내에게 대드는’ 케이스에 대한 사례들 또한,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풍부한 우스개의 소재이다. 겪어보지 않은 종류의 어려움이기에 위협이 더 크게 다가오는 건 당연하다. 총체적으로 판단할 때 잃는 것(-)은 분명하고 얻는 것(+)은 모호한 이 결정이 맞는 건가?
…까지 생각할 정도로 내가 사려 깊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아내가 굉장히 예쁜 데다가, 상당히 예쁘고, 엄청나게 예뻤다. 여기에 약간의 감 – 20년 가까이 다양한 사람들과 연애를 해봤는데 평생 같이 살아도 괜찮겠다 싶은 건 이 사람이 처음이라는 감 – 만 믿고 결혼했다.
내가 결혼 전에 ‘잃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의 상당 부분은 잃지 않았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든 건 맞지만 ‘게임 라이프’의 외연이 넓어지면서 보충되는 부분이 많다. 결혼해서, 애가 생겨서 못할 거라 여겼던 특정한 게임들(주로 긴 플레이타임을 소요하는 종류들)은 아직 애도 없고 결혼하지 않은 주위 사람들도 나이 먹으니 자연스레 조금씩 안 하는 게 보이더라.
결국, 내가 잃었다고 생각한 게임 라이프의 어떤 부분은,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누리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결혼과 함께 잃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의 상당 부분은 잃지 않았다고 본다. 물론 여기에 아내의 배려로 인해 잃는 것이 최소화된 부분도 크다는 점은 자명하다.
‘얻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은 예상보다 컸다. 인간의 손실회피 성향 때문인지, 육아에 관련된 모든 에피소드들은 육아를 경험해보기 전에는 너무나도 힘들고 고달프고 어렵고 피곤한 일’이기만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해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다.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물론 -_-) 게다가 아이의 스킬업을 하루하루 바라보는 등 나름 쏠쏠한 재미들도 많다. 여기에 아이들이 커서 함께 루미큐브를 한다는 둥, 아이와 고전게임을 했는데 자기가 졌다는 둥 나보다 몇 년 앞선 게이머+육아 선배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장차 기대되는 부분마저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 지 모르는 ‘내 아내’가 지금도 내 옆에 있다는 거다. 와우를 열심히 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녀는 나의 어지간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다 이해하고 기억한다. 최근에는 와우 이후 최초로 퍼즐 앤 드래곤에 ‘와우만큼’ 몰입하면서 화젯거리는 더 풍부해졌다. 그녀는 나의 게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다.
게다가 예쁘다. 굉장히 예쁜데다가, 상당히 예쁘고, 엄청나게 예쁘다. 이렇게 예쁜 파티원과 ‘평생’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어지간한 손실 따위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양과가 한쪽 팔을 잃었지만 소용녀만 있으면 ㅇㅋ였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