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꼬맹이 때부터 게임을 했다. 부모님 몰래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패미컴을 사고 기뻐했지만 그것도 잠시, 패미컴으로 게임을 하려면 ‘롬팩’이라는 게 있어야 함을 깨닫고 좌절했었다. 아직 롬팩까지 살 돈은 모으지 못한데다가 어설퍼 보이는 중딩에게 롬팩을 보너스로 안겨줄 정도로 용산 아저씨들이 호락호락한 분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 전에 IQ1000 이라던가 X-II 등을 가지고 세운상가를 기웃거리며 여러 가지를 해보긴 했었지만, 게임이라면 역시 게임 전용기 아니겠는가?
게임을 잊지 못한 애 아빠의 이야기
이런 얘기로 채우기엔 이건 ‘요즘 세대’ 에겐 너무 흔한 얘기다. 아마 당신들도 나처럼 중딩시절을 거쳐 고딩 초입까지도 게임을 열심히 한 사람이 많을 테다. 그러다 고3이 되면서 ‘인간구실 하려면 대학 나와야 한다더라.’ 소리 듣고 공부 좀 하다가, 대학에서 술과 연애를 알게 되어 게임 따위 내팽개치고 살고. 그러다 취업하면서 ‘값싸지만 흥미로운’ 취미를 찾아 게임으로 회귀하는 뭐 그런 케이스를 밟았겠지. 아니면 나와는 달리 게임에서 파생된 각종 애니며 만화 등에 심취해서 덕후의 길을 걷던가. 어느 쪽이든 흔한 얘기이긴 마찬가지다.
근데 그 이후부터는 좀 신선한 얘기일 수도 있다. 왜냐면 우린 진지하게 게임을 해왔으면서도 결혼해서 자녀를 둔 세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컴퓨터 게임이 소개된 역사가 비교적 짧기에, ‘세대’ 단위로 벌어지는 일들로는 최초가 아닌가 싶다. 아 물론 선배들도 있고 후배들도 있긴 하겠으나 얼추 어림잡자면 그렇다는 거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난 그런 ‘평범한’ 세대에 속한다고 자부하기엔 약간 자격 미달이기도 하다. 왜냐면 나 자신이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활인으로서의 게이머와, 직업인으로서의 게임 개발자의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은 해볼 테지만 자신은 없으니 적당히 가려서 읽어주시면 좋겠다. 아울러 애 딸린 집이라고는 해도 집집마다 애들마다 특성은 다 다르기 마련이라서, 이 글은 ‘보편적인 애 아빠 게이머의 이야기’와 같은 객관적인 관점보다는 ‘어느 애 아빠 게이머의 이야기’와 같은 일종의 주관적 경험담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아래 이야기를 읽으며 참고하시라는 뜻에서 간략하게 우리 가족상황을 간추려보자면 나는 조만간 나이 40을 바라보는 남성이고 내 아내는 지금은 전업주부이다. 우리는 두 아이를 가지고 있으며 첫째는 조만간 세 돌이 되고 둘째는 아직 아직 돌이 안됐다.
와우로 결혼한 부부의 출신 성분 차이
앞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서도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하드코어 게이머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MMORPG의 흐름도 기획자로 일한 긴 경험이 있기에 쓸 수 있었다. 앞서 짤막하게 언급한 대로 어릴 적부터 게임을 접해왔으며, 게임회사에 취직하고 싶었고, 취직해서 이미 십수 년이 되도록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다. 아울러 게임을 알게 된 이래 지금껏 내 취미에서 ‘게임’이 빠졌던 적은 없다. 어딜 봐도 게이머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아내는, 한때 하드코어한 와우저였다. 게이머가 아닌 와우저라고 적어놨음에 주목하자. 그녀가 평생 가장 열심히 했던 게임이자 우리가 만난 게임이기도 한 ‘와우’에 한해 그녀는 몹시 열심히 게임을 했었지만, 와우 이후에도 다른 게임을 찾아서 하지는 않았다. 종종 내가 추천하는 게임들을 시도해보긴 했지만, 최근 들어 퍼즐 앤 드래곤에 빠지기 전까지는 이전의 와우만큼 열심히 하는 게임은 없었다. 육아다 뭐다 해서 그럴 여유가 없기도 했고.
내 관점에서 아내는 물론 비(非)게이머는 아니다. 게임을 ‘깊이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게이머도 아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게임은 잠깐 스쳐 지나간 무엇에 가깝지, 완전히 자리잡고 삶 속에 굳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편 때문에 게임과의 컨택포인트가 풍부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깊이 즐긴 게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게이머와 비(非) 게이머의 중간 어딘가에 자리한다고 본다.
결혼한 게이머의 신혼과 임신
결혼하면서 아내와 같이 살게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본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대학시절 가까운 집 놔두고 자유롭게 살겠다며 나와서 살 때 학과 친구와 잠깐 같이 살았던 것을 빼면 취업 이후 줄곧 혼자 살았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 사람이 집에서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퇴근하면 식사 때 잠깐 아내와 얘기를 나누는 것 이외에는 대체로 게임을 했다. 아내에게 특별히 화젯거리가 없을 때 내가 먼저 말을 걸어주는 그런 배려 따위 없었다. 그럼에도 내 아내는 다정했다. 내가 퇴근하고 게임’만’ 쳐 하는데도 과일을 깎아다 주거나 커피를 타주는 등 게임하는 나를 배려해줬다. 내 생활은 혼자 살던 시절과 전혀 다를 게 없었고, 무려 여기에 아내의 배려가 추가되는 형세였다. 나에겐 물론 이런 천국이 따로 없는 지경. 그러나 아내는…
아내는 심지어 당시 임신 중이었다. 배는 점점 불러오고 거동은 조금씩 힘들어지며 밤중에 팔다리가 저리다 못해 쥐가 나는 지경인데도, 남편은 퇴근하면 밥 쳐먹고 게임만 처하다가 잠든다. 결국, 그녀는 나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것도 대단한 토로도 아닌 스쳐 지나가는 말 몇 마디에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그런 온유하고 부드러운 토로였다.
그러나 죽어있던 나의 남편이라는 낯선 역할에 가해진 심폐소생술로는 그 정도면 족했다. 나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눈치를 잘 못 채는 둔탱이이긴 해도, 일단 뭔가를 깨닫게 되면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노력한다. 게다가 당시 상황의 전후를 따져보면 나는 점차 못된 남편놈에 다가가는 중 (어쩌면 이미 못된 남편놈) 이었음에도 아내는 나에게 그에 합당한 대접은커녕 최소한의 섭섭함만을 표했을 뿐이니 잽싸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도리였다.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남편과 못된 남편의 갈림길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남편의 길을 택한다고 알고 있다. 마느님이 싸인을 주면 잽싸게 캐치하고 인터넷에 널려있는 매뉴얼에 따라 타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편집자 주 : 필자분은 8살 어린 미인과 가정을 꾸리고 계신다. 당연히 마느님이라 부를 만하다)
그날부터 나의 퇴근 후 스케줄이 좀 바뀌었다. 아직도 뭐 대단히 확 바뀐 건 아니었다. 마느님이 불편하신 데는 없는지 적당한 주기로 살피고, 식사 후 30분에서 1시간여의 산책이 정규 스케줄에 포함됐다. 또 게임을 하기 전 그녀의 심기를 곁눈질하는 정도의, 말하자면 ‘최소한의’ 배려들이 시작됐다. 그러나 그녀는 앞서 말한바 ‘몹시 관대한’ 분이셨던지라, 추가된 정규코스 – 다시 언급하지만 ‘최소한의 배려’ – 에 상당히 흡족해했으며 이 코스가 충족된다면 나의 게임 라이프에 대해서도 전혀 눈치를 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의 게임 라이프는 결혼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앞서 언급한 약간의 조치들에 필요한 시간이 게이밍 라이프에서 제외되었지만, 이 시간은 적어도 ‘정규적’이었으므로 큰 지장을 주지 않았다. 다들 알겠지만, 온라인 게임을 주로 하는 게이머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게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건 꽤 중요한 일이다.
아이가 둘 딸린 코어 게이머의 육아일기와 게임라이프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