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일, 미국 <포브스>는 ‘슬픈 소식’이라며 기사 하나를 실었다. 유명인사가 죽은 것도, 전쟁이 난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애플이었고,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애플이 미국판 삼성이 되어가고 있다’
내용은 새로 발표한 제품들에서 하나같이 파괴적 혁신이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 애플은 아이폰이나 맥북처럼 혁신적이고 독보적인 기기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생태계의 모든 부분을 만족시키려고 하면서 갈피를 못 잡는 기기군으로 전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애플은 정말 ‘미국판 삼성’이 되어가고 있나?
사실 2016년 3월에 공개된 새 제품들은 애플만의 반짝이는 창의력이 보이지 않는 따분한 제품들이었다. iPhone SE는 새로운 칩을 장착한 iPhone 5s에 불과했고, 9.7인치 iPad 프로는 9.7인치 iPad에 삼성 갤럭시의 터치펜과 유사한 애플펜슬을 추가한 것이며, 애플워치는 스와치의 전략을 따라가고 있는 듯 보였다. 애플은 그간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을 통해 기존 업계를 붕괴시키고 새롭게 재정립한 파괴적 혁신자였다. 아이팟, 아이폰, 맥북 에어 등의 제품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혁신의 결정체였고, 애플 팬들은 마치 광신도처럼 애플의 신제품을 추종했다.
하지만 혁신이 사라지자 광팬들의 열정도 사라졌고, 애플이 방황하는 동안 애플의 팬들 역시 방황하고 있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가 사라지자 애플은 기존의 제품을 개량하는 데 그치는 존속적 혁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해 보이는 ‘싱글 히어로’ 전략을 고수하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고객의 이상을 고집스럽게 제품에 담아냈다.
팀 쿡이 이끄는 애플 경영진이 잡스의 싱글 히어로 전략을 계속 구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고객의 행동에 확실하게 집중하는 것이 초래할지 모르는 외견상의 위험 때문이다. 큰 화면을 지양하고 가격을 고수하며 기능상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은 애플 팬들의 욕구와 행동을 반영한 것이지만, 애플 팬처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가 한창 자웅을 겨루던 무렵, 한 레스토랑에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웨이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갤럭시 핸드폰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성향으로 보아 나는 그가 당연히 아이폰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갤럭시를 쓰는 이유를 물었다.
즐기는 게 아니잖아요. 일할 문자 확인하고 전화번호 조회해서 전화 걸고 하는 거는 갤럭시가 훨씬 편해요. 떨어뜨려도 되고.
스티브 잡스가 소비자들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소비자를 자신의 고객으로 가진 기업은 지구 역사상 출현한 적이 없다. 나의 제품을 쓰는 소비자의 행동을 정확하게 알고 움직이는 기업은 가질 수 없는 고객에 안달하지 않는다.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시장에는 등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특정한 고객의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 심미적인 것보다는 업무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튼튼하고 범용적인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는 애플의 시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전의 애플은 이 시장을 포기함으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고객들의 행동에 정확히 집중할 수 있었고 신제품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플은 놀라운 혁신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리드하여 ‘열성팬’들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되도록 많은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더 많은 ‘일반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 하고 있다. <포브스>의 ‘슬픔’은 애플이 삼성이나 다른 경쟁자들과 같아지는 순간 찾아올 위기에 대한 경고다.
워크맨이 걸음을 멈춘 후 소니도 멈추었다
싱글 히어로 전략을 취한 기업은 애플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일본의 전자기업 소니였고, 싱글 히어로는 워크맨이었다. 소니는 워크맨 단 하나로 휴대용 오디오 디바이스라는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워크맨 돌풍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소니의 CEO였던 모리타 아키오가 미국을 상징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을 정도였다.
소니의 역사는 전자제품의 극적인 변화를 집약한 ‘혁신 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5년 최초로 포켓용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만들었고, 1959년에는 휴대용 흑백 TV를 만들었다. 또 휴대용 비디오 레코더를 만들어내더니 이윽고 1979년 워크맨으로 전 세계를 강타했다. 1981년에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소니의 혁신은 왜 멈추었고, 왜 이렇게 추락하게 되었을까?
이 모든 제품들이 모리타와 5명의 공동 경영자들이 개인적으로 결정을 내리던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혁신 전문가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의 분석이다.
그들은 고객들이 진정으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파괴적 혁신의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모리타를 비롯한 경영진들은 기기 작동이 서툴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어요.
실제 소니가 만든 흑백 TV는 성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지만 휴대할 수 있는 TV는 소니의 것이 유일했다. 소비자가 진정 필요로 했던 것은 더 화질이 좋은 TV가 아니라 휴대할 수 있는 작고 간편한 TV였기에 품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워크맨에 대한 시장조사를 실시했을 때 모리타 아키오의 안목이 진가를 발휘했다. 시장조사 결과는 최악이었다. 직원들조차 이 제품이 팔릴 리 없다고 결사반대했다. 워크맨 출시를 밀어붙이면서 했던 모리타 아키오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고객들은 무엇이 가능한지 모른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내놓기 전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소비자들은 아마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말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모리타 아키오는 소비자가 알지 못하는 욕구의 근원을 보았던 것이다.
혁신을 거듭하며 전 세계 전자제품 마니아들을 즐겁게 만들었던 소니의 질주는 의외의 곳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1980년대 초반 모리타 아키오 회장이 정계 진출을 위해 소니의 경영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소니는 대안으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MBA를 거친 A급 인재들로 경영진을 꾸렸다. 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그들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기존의 제품을 더욱 발전시키는 존속적 혁신에 집중했다. 소니는 여전히 부지런하게 움직였고 여전히 혁신적이었지만, 그것은 사실 혁신이 아니라 ‘혁신처럼 보인 개선’에 지나지 않았다.
※ 필자에게 직접 듣는, 저성장시대 ‘독점공간’ 개척의 비밀!
※ 해당 강연의 수강자 전원에게는 강사의 신작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홀로 파는 사람, 모노폴리언>을 증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