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미 대통령 선거는 저 같은 경제분석가들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자의 경제정책 관련 공약을 살펴보면, 그의 정책이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예를 들어 감세정책이 대표적입니다. 금리가 역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고, 더 나아가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감세를 단행한다?
감세가 경기에 모든 면에 부정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2001년 부시 행정부에 의해 시행된 감세정책 당시 저축률이 급등했던 것처럼, 소비를 부양하는 데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감세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기업이나 부유층은 좋아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후보는 중부와 남부지역 백인들의 압도적 지지.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남성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죠. 왜 중부와 남부의 백인 남성들은 힐러리 대신 트럼프를 선택한 것일까요?
오늘 소개하는 책 《남자의 종말》은 미국 백인 남성들의 투표 행위를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줍니다. 물론, 말투가 다소 공격적인 것. 특히 사례가 매우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별점을 ‘반 개’ 깎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만, 내용이 워낙 좋아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소개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왜 그들은 트럼프를 찍었을까?
왜 미국 중부와 남부의 백인들은 트럼프 후보를 찍었을까요?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바로 ‘남녀 성 역할의 역전’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저자 해나 로진의 주장입니다(118p).
지난 10여 년간, 미국의 허리를 지탱하던 광범위한 중산층이, 급격한 혼인율 감소와 급격한 이혼 증가 등으로 심하게 위축되었다. 주 부양자로 역할하던 남성들이 방향을 잃는 바람에 섹스, 결혼, 정치, 종교 등의 규칙이 갑작스레 전복되었다.
아래의 ‘그림’이 지난 10년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죠.
중국 등과의 교역이 확대되는 가운데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혹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미국 남부와 중부의 근로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피해의 대부분은 ‘가장’ 역할을 하던 남성들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이 해나 로진의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중년 백인남성들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고 합니다(120~121p).
(알라바마주에 자리 잡은 스포츠 용품업체의 부장으로 일하다 직장을 잃어버린) 찰스가 나에게 말했다.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그게 남자들에겐 여자들보다 훨씬 힘들어요. 여자들이 가진 기술이 훨씬, 뭐랄까, 이전이 용이하다고 할까요?”
제분소에서 일하던 여자들이 동네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 또는 소매점에 취직하거나, 간호사나 교사가 되기 위해 다시 대학에 입학했다. (중략) 남편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아내들은 앞으로 나아갔지만, 새로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남성들은 가정에서의 역학관계를 보면 어느 정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전통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미국 남부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역경에 더욱 강하고 또 유연하죠(122~123p).
2000년부터 지금까지 제조업 분야에서 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젊은 인력은 거의 고용되지 않았다. (중략) 한편, 같은 기간 건강과 교육분야에서는 거의 같은 숫자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 분야들은 지속적으로 여자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건설이나 운수 공공시설 등 이른바 사양산업에 집중적으로 매달린다.
지난 10여 년간, 알라바마 주 동부 전역에서 양말, 타이어, 펄프 공장 및 가금류 사육장 등 전통 산업이 하나둘씩 망하면서 그 지역 경기를 수렁에 빠뜨렸다. (중략) 오번 대학교에서 경제 및 공동체 개발 연구원을 개발하는 조 섬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년 전만 해도 가방끈도 짧고 기술도 부족한 남자들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죠.” (중략) “하지만 지금 그런 일터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일하려면 반드시 재교육을 받아야 하니,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죠.”
나이 들어 자신의 권위가 실추되고, 더 나아가 젊은 사람들(특히 여성들)과 함께 재교육을 받는 것은 전통적인 도덕률을 가진 미국 남부 백인 남자들에게는 무척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 여성들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죠. 그것은 다름이 아닌, 교육에 대한 투자였습니다(130~131p).
지금은 사상 처음으로 30~45세 사이의 미국인들 중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아졌다. (중략) 1970년대 여성은 이혼하면 자신의 수입이 최소한 1/4 정도 감소하리라고 예상한 반면, 이혼 남성은 수입 감소를 거의 경험하지 않았다. (중략) 요즘에는 이혼할 때 수입의 1/4 정도 감소하리라 생각하는 남녀 비율이 엇비슷하다. 수입이 실질적으로 증가하리라 생각되는 이혼 여성의 수는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중략)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시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알라바마주는,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기혼부부 가정의 비율이 1990년 57%에서 현재 48%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혼율은 상위권에 속한다. 오클라호마, 켄터키, 알라바마는 이혼율 상위권의 주인 반면 캘리포니아와 매사추체츠 주는 최하위다.
복음주의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 왜 이혼율이 높을까요?
그 이유는 다 짐작하듯, 여성들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교육도 잘 받고 또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니, 남자들보다 소득이 많은 여성이 늘어나고.. 당연하게 전통적인 가치에 반하는 행동. 즉 이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겁니다. 그리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힐러리는 ‘똑똑한 여성’의 대표주자죠.
미국 남부의 백인 남성입장에서 힐러리는 어떻게 해도 좋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직장을 잃어버려, 가장으로서의 위신을 상실한 반면 아내가 집의 주된 소득자로 부상된 상황이라면? 아마 그에게 힐러리는 증오의 대상일 것입니다.
암튼 경제학적인 논리의 문제로는 해석할 수 없는, 정치적인 지형의 변화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성 역할의 변화’가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원문 :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