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과 IT 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책은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이었다. 피터 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독점이란 말이 주는 도덕적 뉘앙스를 잊어라. 어떻게 포장해도 성공한 기업은 독점의 결과다. 어떤 시장, 지역, 고객을 대상으로 하느냐이지 독점력이 없는 기업은 큰 성공이 어렵다. 심지어 공룡기업들의 대결도 미래독점을 위한 치열한 참호전일 뿐이다. (via inuit.co.kr)
이것은 비단 피터 틸의 생각만은 아니다. 워렌 버핏 역시 기업 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를 꼽았다. 해자란 바로 자신들’만’의 엣지를 지킬 수 있는 ‘독점의 공간’이다.
차이가 있다면 ‘페이팔 마피아’로 알려진 피터 틸은 워낙 거물인 만큼, 주로 IT 영역을 대상으로 설명한다. 또 팻 도시의 <경제적 해자>는 투자 측면에서 이야기한다. 반면 이동철이 쓴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는 그 영역을 모든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한다. 심지어 싸움에서도 그렇다. 이순신의 한산대첩은 물론이고, 최배달조차 방 안 전등의 위치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는 것이다.
<타임>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역사상 가장 큰 부자의 순위를 발표한 바 있다. 1위는 14세기 말리의 왕으로 20년 동안 재위했던 만사무사이다. 당시 지구에서 생산되는 금의 50%를 독점했다. 2위 록펠러는 20세기에 석유를 독점했으며, 9위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로 21세기 전 지구의 PC 운영체제를 독점했다. 지구상 존재했던 가장 큰 부자들은 바로 독점이라는 사업구조를 통해 탄생했던 것이다.
–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까? : 홀로 파는 사람, 모노폴리언>
왜 독점을 추구해야‘만’ 하는가?
흔히들 독점을 대자본만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독점이라는 단어를 ‘길목’으로 치환해 보자. 영화 <300>과 <명량>을 보면 둘 다 좁은 길목을 활용해, 대군과의 싸움을 승리로 끌어냄을 알 수 있다.
좀 더 쉽게 생각해 보자. 사무실이 가득한데,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식당은 작은 곳이지만 이미 ‘독점의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물론 이런 ‘독점의 공간’은 영원하지 않다. 애초에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무실이 많은데 왜 식당이 하나밖에 없겠는가? 그렇다면 ‘파스타 집’이 하나밖에 없다면? 이 역시 하나의 ‘독점의 공간’이 되게 마련이다.
위의 간단한 예는 ‘독점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애초에 그 어떤 독점도 영원할 수 없다. 독점 기업은 그 수익률이 매우 탄탄한 만큼, 역으로 경쟁자들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독점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경제학자 타일러 코헨은 ‘가젤과 기린’으로 이 딜레마를 설명한다. 기후가 좋을 때는 가젤도 충분히 잘 살지만, 가뭄이 들자 높은 나무의 잎을 먹을 수 있는 기린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결국은 그렇다. 좋든 싫든 독점은 추구해야만 하는 길이다. 참여정부 때 호황기는 모든 기업이 잘 될 것이라는 인상을 줬다. 하지만 2008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살아남을 수 있던 기업은 결국 자신만의 해자를 확보한 독점 기업이었다. 그저 시장에 얹혀 가는 이익은, 그만큼 위기에서 쉽게 소멸하기 마련이다.
시장은 여전히 독점을 원한다
최근 한국의 투자업계 심리가 점점 얼어붙고 있다. 그러면서 따라붙는 꼬리표는 “매출 얼마야?”, “BEP(손익분기점) 넘어?”라는 말이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캐싱(돈의 순환)을 묻고 있지만,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밑바닥에는 ‘독점’을 꾀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모바일 산업이 성숙했다는 환경적 변화가 있다.
많은 기업이 이미 백억 대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띵동 등은 배달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다. 당시는 그런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방은 부동산 시장에서, 레진코믹스는 웹툰 시장에서,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숙박 시장에서의 ‘독점’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한 지금은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독점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여전히 투자자는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만의 독점 시장을 열 수 있다면 ‘시장 점유율과 경쟁 우위’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점 시장은 경쟁이 없거나, 적어도 자신만의 우위로 싸울 수 있는 공성전이다.
성숙 시장에서도 독점이 가능한 이유
시장이 성숙했음에도 ‘독점’이라는 공간이 완벽히 닫힌 것은 아니다. ‘빅 사이즈’를 공략한 ‘레인 브라이언트’는 그 사례다. 그들은 미국 여성의 42%가 대형 사이즈를 입는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자사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이유로 무시한 시장을 공략했다. 그들은 모델은 날씬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뚱뚱한 여성 역시 존중받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마케팅을 펼쳐 새로운 독점 시장을 열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새로운 독점 공간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 새로운 고객의 요구 등장
- 기존 기업의 무관심
- 새로운 요구를 충족하는 역량의 획득
이 중 핵심은 두 번째 ‘기존 기업의 무관심’이다. ‘시계 전쟁’에서 살아남은 스와치 역시 이와 유사하게 일어선 기업이다. 당시 스위스 시계 업체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일본 업체들에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스위스 시계 업체의 70%가 도산하기도 했다.
이때 스와치가 내놓은 전략은 이미 시계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세컨드 워치(두 번째 시계)’이다. 스위스 시계를 가진 사람은 비싼 가격에 여러 시계를 가질 수 없어 고루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 시계를 가진 사람은 저렴하지만 디자인에 불만이 있었다. 이에 스와치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젊은 패션을 무기로 시장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독점 시장을 형성한다.
정말 어려운 것은 독점의 창출이 아닌 수성이다
지금은 이름을 듣기도 힘든 노키아는 피처폰 시절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였다. 그들이 내세우는 독점은 휴대폰의 철저한 모듈화를 통한 다양한 모델을 빠르게 조립하는 생산 공정이었다. 그런데 아이폰이 등장하고 안드로이드가 연이어 등장하며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이런 사례는 찾아보면 무척이나 많다. 실컷 독점 시장을 창출하고도, 그것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켈로그와 포스트의 ‘시리얼 전쟁’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포스트는 시장 선도자의 지위를 무기 삼아 아침식사 대용 시장 독점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후 그들이 독점 시장에 안주하며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는 사이에, 켈로그는 ‘토니’로 대표되는 캐릭터에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며 시장 잠식에 성공한다. 그리고 켈로그 박사를 내세우며 ‘건강’이라는 진정성을 내세우며, 선두 자리를 빼앗는다.
위에서 사례로 든 스와치는 독점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스와치는 프리미엄 시계를 내세우며, 가성비와 패션으로 창출한 고객을 더 높은 단계로 이끄는 데 성공한다. 시작은 로우 마켓이었으나, 이를 하이엔드 마켓으로 확장하며 더욱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이다.
독점의 핵심은 가격이 아닌 경험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부분은 ‘가격’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스와치는 저가 시장에서 시작했지만,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닌 고객 경험이었다. 물론 가격이 중요한 분야도 있다. 엄청난 대자본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아마존과 이마트는 그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저가로 대표되는 사업 역시 구조를 뜯어보면 자신만의 독점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마트 역시 그 힘은 가격에 앞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통력’이라는 독점 공간에서 창출된다. 아마존은 회원에게 가장 적절한 상품을 추천하고 제때 배송하는 ‘누적 데이터와 분석력’이라는 독점 공간을 가지고 있다.
가격은 대자본으로부터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가격 경쟁에서의 출혈이 너무 크다. 독점의 공간이 하이엔드라도, 로우엔드라도, 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파괴적 혁신이어도 좋다. 중요한 건 고객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안하고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비전 하에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독점 전략이 성공을 보장하지만은 못한다. 하지만 독점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언젠가 위기에 부딪히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메시지 하나만을 건지는 것만으로 이 책의 책값을 하고도 남는다. 톰 피터스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제보다 조금 더 낫게’ 만들려고 애쓴 자들은? 미안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죽음 뿐이다. ‘땜장이’가 성공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너무도 빨리 일어나고 있다.”
※ 저자에게 직접 듣는, 저성장시대 ‘독점공간’ 개척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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