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맞춤법’ 고민이 쇄도하는 이유
누구나 상대방에게 지적하기 민망한 것이 바로 맞춤법이다. 내가 무슨 맞춤법 경찰인 것도 아니고, 모든 맞춤법을 다 아는 국어 능력자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적하지 않으면 참기 힘든 맞춤법도 있다. 인터넷 창을 켜고 ‘남자친구 맞춤법’을 쳐서 검색해보도록 하자. 이 땅의 여성들이 남친의 맞춤법 때문에 겪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상세히 들여다보자. 대체 왜 인터넷에는 남친에 대한, 특히 남친의 맞춤법에 관한 고민이 쇄도하는 것일까.
- 매일 대화를 나누니 참기가 힘들어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카톡을 주고 받는 사람이 바로 남친이다. 많은 말을 하니 틀린 맞춤법에 노출된 확률도 높다.
- 상대방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왠지 ‘틀렸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남자친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히 그가 연상의 남친, 즉 ‘오빠’라면 더욱더 그렇다.
- 틀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가뜩이나 부드럽게 지적하기도 힘든데 이것저것 다 틀리면 어떻게 다 말해줘야 하나 진짜 멘붕이 되고 자괴감이 든다.
- 말해봤자 나아지는 게 없어서: 넌지시 사인을 줘도 고치질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화를 낸다. 이런 상황을 이전에 겪어봤다면 말도 꺼내기 전에 수심이 깊어진다.
위의 이유로 여자들은 맞춤법 틀리는 남자를 진짜, 정말, 진심으로 싫어한다. 그렇다면 역시 결론은 알아서 안 틀리는 수밖에 없다. 어려운 거 다 제대로 맞춰 쓰라는 얘기가 아니다. 글로 먹고사는 작가도 국어사전을 끼고 살고, 그 글을 다듬는 편집자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밥 먹듯이 드나들며, 한글 사용자의 궁금증을 풀어 준다는 국립국어원조차 오락가락할 때가 많다.
그러니 적어도 당신이 (남들과 마찬가지로)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최소한의 맞춤법만은 미리 알아두도록 하자.
1. 이거 모르면 그냥 죽는 게 나은 부분: 낫다와 낳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1.24명에 그친다고 한다. 이 말인즉슨, 대한민국 여자는 평생을 살면서 아이 한 명을 낳을까 말까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질병과 관련된 경우에는 낫다를, 출산과 관련된 경우에는 낳다를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정 헷갈린다면 그냥 낫다라고 쓰기를 조심스레 권해 본다. 여러분과 만나고 있는 여자가 무언가를 낳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며, 여러분이 무언가를 낳을 일도 없을 테니 어지간하면 상황에 맞을 것이다(….)
● 낫다[낟:따] 병이나 상처 따위가 고쳐져 본래대로 되다
–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 감기가 낫는 것 같더니 다시 심해졌다.
– 너를 만나고 상사병이 나았다.
● 낳다[나:타] 배 속의 아이, 새끼, 알을 몸 밖으로 내놓다
– 첫사랑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 신호 위반으로 쌍둥이를 낳다.
2. 이거 계속 틀리면 노답인 부분: 안과 않
“안과 않을 구분해서 쓰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안 어려운데 자꾸만 어렵다고 생각하고 대충 넘기려 하니 제대로 써지질 않을 것이다. 자꾸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고 넘어가면 앞으로는 틀리지 않게 쓸 수 있다.”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안은 ‘아니’가 줄어든 말이며, 않은 ‘아니하’가 줄어든 말이다. 안이 들어갈 자리에 아니를, 않이 들어갈 자리에 아니하를 넣어서 말이 된다면 제대로 쓴 것이다. 확인해 보자.
“안과 않을 구분해서 쓰지 아니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안 어려운데 자꾸만 어렵다고 생각하고 대충 넘기려 하니 제대로 써지질 아니할 것이다. 자꾸 아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고 넘어가면 앞으로는 틀리지 아니하게 쓸 수 있다.”
● 안: 부정이나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아니’의 준말
– 안 벌고 안 쓰며 살 거야
– 비가 안 온다.
– 이제 다시는 그 사람을 안 만날 거야.
● 않(다)[안(타)] ① 어떤 행동을 안 하다 ②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
– 그는 말도 않고 떠났다.
– 연애는 않고 무얼 하느냐?
– 그는 이유도 묻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다.
– 사는 게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3. 이거 안 틀리면 중간은 가는 부분: 오랫만과 오랜만
이번에는 새벽 두 시에 문자 보내는 구남친 떡밥이다. 오래간만에 안부를 묻는 옛 연인이 싫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랫만’ 한 마디에 정이 뚝 떨어진다(이거 아직도 안 고쳤냐….). 그러니 이것은 외우자. 오랜만은 오래간만이 줄어든 말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그냥 오랜만이라고 쓰면 된다. 다시 말한다. ‘오랫만’이 아니라 ‘오랜만’으로 쓰자. 사이시옷을 쓰는 경우는 ‘오랫동안’이다. ‘오랫동안’을 ‘오랜동안’으로 쓰면 망하는 것이다(…)
● 오랜만: ‘오래간만(어떤 일이 있은 때로부터 긴 시간이 지난 뒤)’의 준말
–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 너랑 술 마시는 거 참 오랜만이다.
● 오랫동안[오래똥안/오랟똥안] 시간상으로 썩 긴 동안
–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결심한 거야.
– 그녀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이 대리를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다.
4. 이거 잘 쓰면 왠지 호감이 가는 부분: 봬요와 뵈요
다음 만남을 기약할 때마다 해야 하는 말인데 번번이 틀리면 그것만큼 창피스러운 일도 없다. 자세한 설명은 머리가 복잡하니 요령만 알아두기로 하자. 봬요가 맞는지 뵈요가 맞는지 헷갈릴 때에는 봬 자리에 해를, 뵈 자리에 하를 넣어보자.
그럼 금요일 저녁에 봬요. → 그럼 금요일 저녁에 해요. (O)
그럼 금요일 저녁에 뵈요. → 그럼 금요일 저녁에 하요. (X)
봴게요와 뵐게요를 구별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핼게요? 이상하다. 할게요? 자연스럽다. 그러니 뵐게요가 바른 말이 되겠다. 참고로 돼와 되도 마찬가지다. 돼 자리에 해를, 되 자리에 하를 넣어보면 된다.
됐어 → 했어 (O)
됬어 → 핬어 (X)
5. 이거 알면 우리말 겨루기 나가야 하는 부분: ㅁ과 ㄻ
우리는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주로 명사형 종결 어미를 쓴다. 간단명료한 느낌이 들어서 좋기 때문이다. 누구한테 뭘 물어볼 때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문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의할 게 하나 있다. 알다, 놀다, 들다처럼 ㄹ받침이 들어가는 말은 ㄹ이 아닌 ㄻ으로 마무리 지어 줘야 한다. 그러니까 암, 놈, 듬이 아니라 앎, 놂, 듦이라고 써야 한다는 말이다. (잘 모르겠으면 ‘삶’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삶을 삼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아래 사례를 보자.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앎. 이런 문법 자체가 낯섦. 외울 것이 늘어날수록 머리가 돎. 나이 먹고 맞춤법 공부하려니 너무 힘듦. 그래도 여러분 잘 되라고 누군가가 개고생해 가며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만듦. 여기서 창 끄면 나 욺.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닮. 이 책에 나온 맞춤법만 제대로 알아도 섹시한 사람 된다는 데 내 이름을 걺!
※본 글은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의 내용을 옮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