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탄핵이 최대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현 상황을 정리해본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탄핵 의결을 위해 새누리당 의원에게 협력을 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필요 없다. 현실적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의 동조 없이 의결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1. 탄핵이 우리의 목표인가?
아니다. 탄핵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지 중 하나다. 우리의 목표는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 그리고 박근혜를 대통령이 되는데 기여한 자들, 박근혜 정권 동안 부역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 무너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박근혜 당선의 1등 공신이다. 그리고 아직도 당 차원에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에 대해 반성한 적이 없다. 이제 와서 태세를 전환해 박근혜 탄핵에 나서는 자들도 있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 의결을 위해 반성도 하지 않은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진정한 목표 달성에 방해물이다.
2. 협력을 구하지 않고 의결에 돌입할 경우 탄핵은 실패할까?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협력을 구한다고 해서 성공할 확률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와 등 돌리는 이유는 박근혜가 옳지 않은 짓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가 가지고 있던 흥행성이 박살 났기 때문이고, 이대로 가다간 박근혜와 함께 자신이 침몰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의나 정의 따위와는 아무 관계 없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성 혹은 반대를 할 것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저들은 주저 없이 찬성에 투표하겠지만,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반대할 거다. 저들에게 협력을 구할 필요 없이 탄핵에 찬성하는 게 이익이 된다는 것만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면, 혹은 탄핵에 반대하면 낙동강 오리알 될 거라는 점만 확실히 보여주면 주저 없이 탄핵에 찬성할 거다.
굳이 협력을 구할 필요 없다. 그리고 탄핵에 반대하면 망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은 국민들이 촛불을 그들의 눈앞에 들이대고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3. 탄핵이 실패할 경우 정치적 부담은 누구에게 가장 크게 돌아가는가?
한 가지만 분명히 하면 된다. 탄핵에 돌입하기 전에 탄핵 의결이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음을 분명히 하면 된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박근혜에게 부역한 것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눈감은 것도, 정유라를 국회에서 적극 옹호한 것도, 증인 채택에 반대해 진상규명을 어렵게 한 것도 모두 새누리당이 한 짓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에 반대표를 던져 의결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는 의원들이 져야 한다.
이 점을 새누리당 의원 그리고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리기만 한다면 탄핵 실패의 책임과 부담은 전부 새누리당이 떠안게 된다.
4. 탄핵과 개헌을 엮으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참패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한 나머지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킨다. 새누리당이 소수당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과반수를 차지한다. 자신들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만든 국회 선진화법이 오히려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만든 법이 위헌이라는 둥 이상한 법이라는 둥 깎아내리기에 이른다.
새누리당이 되게 유능해서 장기적인 비전 같은 거 있는 줄 아는데, 그런 거 아니다. 당장 자기한테 유리한 것만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지금 의원내각제로 개헌하려고 하는 건 당장 대선 하면 박살 날 거 같으니 하는 거다.
새누리당이 유능해서 선거를 잘 치르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다. 첫째로 선거만 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칙도 서슴없이 하면서 이기려고 해서, 둘째로 일정 수의 국민이 묻지마 지지를 해주기 때문이다. 유능 그런 거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다. 대통령제가 문제인 것처럼 만들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고 탄핵과 개헌은 맞바꾸거나 흥정할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면 된다. 개헌 논의를 하려는 사람을 박근혜 심판과 탄핵에 물타기 하려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면 된다.
5. 탄핵은 실효성이 있는가?
탄핵 의결이 성공한다 해도 헌재의 심판까지 마치면 사실상 박근혜는 임기를 거의 다 마치게 된다. 의결될 경우 박근혜가 직무정지가 되기는 하지만, 원래부터 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직무정지에 큰 의미는 없으며, 국무총리를 새로 뽑을 가능성이 없는 이상, 황교안이 직무대행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딱히 박근혜가 할 때보다 나아질 것이 별로 없다. 박근혜 탄핵은 헌재 판결까지 성공한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실효성이 적다.
단,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시 효과로 이후의 우리나라가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이것은 퇴임이나 하야하도록 만들어도 마찬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탄핵만이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줘야 한다면 이 전시효과조차 극적으로 감소한다. 탄핵에 실패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6. 탄핵절차를 좀 더 쉽게 만들어야 하는가?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절차가 너무 어렵고 복잡해 실효성이 없으니 이 기회에 개선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절차가 간단했다면 2004년에 노무현은 탄핵당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상징적인 장치이다. 상징이 책에서 걸어 나와 실제로 마구 사용될 수 있다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을 것이다.
7. 탄핵이 실패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탄핵이 실패할 경우 국민감정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다. 광화문 3백만도 농담이 아닐 것이다. 탄핵이 의결되는 것보다 실패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내 전망은 이것 때문이다.
탄핵이 실패할 경우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그대로 용인한 정당이 되어 버린다. 이럴 경우 새누리당은 처참하게 박살 날 것이다. 그리고 비박이라 불리는 자들 또한 국민의당과도 손잡고 장사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특히 기명투표가 아니라 무기명투표로 진행될 경우, 새누리당 전체가 부담을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 펼쳐질 거다. 기명일 경우 반대에 투표한 자들만 책임을 지게 되겠지만, 무기명이면 새누리당 전체가 반대했다는 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8. 지금 상황에서 탄핵 의결은 실패할까?
그냥 놔둬도 탄핵 의결이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위에 얘기한 점들만 명확히 밝혀둔다면 탄핵 의결은 99% 성공한다.
정리하면 탄핵 의결을 위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협력을 구하는 행위는 불필요하며 나아가 어리석은 짓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박근혜 정권 동안 저지른 짓을 반성하고 돌아오는 새누리당 의원만 받아들이면 된다. 나머지는 전부 심판 대상이다.
원문 : 이승훈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