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집회, 그곳에서 도올선생은
2주 전 주말, 100만 명의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 있었다. 그곳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것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감 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광장에 100만이 넘는 사람 중 대부분은, 짜증과 분노 속에서도 우리가 여기 모여 이렇게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기꺼워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공감 능력’ 덕분이다. 너의 마음이 나와 같고, 너의 처지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힘. 그래서 너에게 하는 행동 역시 내가 당해도 괜찮을 수준 안에서 행하도록 만들어 주는 가이드라인.
하지만 내 주변에는 이런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이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위험한 편 가르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현상은 나이든 세대에게서 더 도드라져 보였다. 물론 현장에 계셨던 노년층 중엔 온화하게 즐겁게 시위 현장을 즐기고 적정한 수준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셨던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서 목격된 노년층의 절반 이상은 시위의 주된 정서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미 앉아있던 사람들을 밀치고 앞으로 끼어들었고, 제지하는 사람을 붙잡고 소리높여 욕설을 퍼부었다. 앞사람이 앉음새를 고치느라 조금이라도 뒤로 다가오면 정색하고 질책을 했고, 무대에서 화합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마당에도 뒤로 돌아앉아 마음에 들지 않는 주변인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리허설 도중 매끄럽지 않은 행사 진행에 당황해하는 60대의 노가수에게 쌍욕을 퍼부은 것도 그들이었다.
광장에서 다른 시민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나이든 세대의 모습을 보여준 또 한 명은 다름 아닌 도올선생이었다. 소년기에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 ‘여자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부터 도올선생의 팬이었다. 그가 내지르는 사자후는 시대의 울림이었던 적이 많고, 그가 제시하는 동서를 아우르는 통찰을 삶의 등불로 의지했던 적도 많다.
하지만 지난 주말 그분이 보여준 모습은 적잖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김제동 씨가 무대 위에 있을 때 갑자기 난입해 마이크를 요구하고, 자신이 준비해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꽤나 환호했다. 하지만 그 논리가 자리에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현학적이고도 방대하게 흐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인내를 잃기 시작했다. 뒤에 기다리고 있는 출연진들이 있음에도, 그래서 사회자가 짧게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설은 계속되었고, 청중들은 그만 내려오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때도 내 주변의 노년층들은 일단 육두문자부터 내지르고 봤다.)
결국 주변의 반응은 아랑곳않고, 도올선생은 자신이 조립한 논리의 완결까지를 프리젠테이션하고 나서야 마이크를 넘겼다. 이 무슨 노추인가. 100만이 넘는 시민이 모여 만들어낸 무대를,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우주적 소임’을 다하는 기회로만 여기는 오만함. 자신의 일갈이 사회자의 진행이나 시민들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공감 능력의 결여. 그리고 거기에 대고 거두절미 욕설부터 던지고 보는, 무대 위의 사람이 어떤 공포감과 모욕감을 느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점의 배려가 없는, – 다시 반복하지만 – 공감 능력의 결여.
도올선생의 발언이 연예인의 그것보다 못 했냐고, 일반인에게도 그 정도의 시간은 할애해 주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발언에 마이크를 허락해주는 시간은 본행사의 앞과 뒤에 있었다. 선생이 발언한 시간은 주최 측이 나름 고심해서 마련한 순서와 스케줄에 따라 돌아가던 때였다. 100만이 모인 행사다. 주최 측의 시간 배분과 연사 선정에 대한 고민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 무대에 난입한 선생은 결코 ‘일반인’으로 거기 오른 것이 아니다. 당시 표창원 의원이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다른 시민들과 함께, 맨바닥에 앉아, 모든 출연진의 발언과 공연을 주의 깊게 듣고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아무런 발언 요청도 무대 난입도 없이 자리를 떴다. ‘일반인’으로서.
도올선생 정도면, 그리고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는 발표를 할 요량이면 주최 측에 충분히 미리 발언에 대한 시간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전 협조요청 없이 무대에 난입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은, 너희들의 규칙이나 일정은 나의 발언의 중요성에 비하면 가볍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걱정된다. 나 도올 정도면 언제, 어느 장소이든 발언권을 요청하면 즉시 허락될 것이라 확신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우려된다. 어제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의는, 민주 질서의 회복과 정당한 규칙이 지켜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의에 공감한다면, 기꺼의 1/n이 되는 것을 감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올선생의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내려와’를 연호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 지점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때부터였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하여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경험이 쌓인다는 것이다. 그 경험은 젊은 세대가 흉내 내기 어려운 깊은 통찰의 근거가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한 인간의 삶의 지향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도록 만드는 부목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후자가 지나치게 강해지면 주변을 돌아보는 눈이 흐려진다. 자신이 쌓아온 것들에 대해 주변에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자신이 믿어온 가치가 부정당한다고 생각될 때 쉽게 분노하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 과정은 살아온 생애 속에서 거듭된 사생결단의 혈투에 대한 기억이 만든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결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 세대의 집단적 성격은 언제나, 그 세대가 뚫고 지나온 시대적 맥락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을 동료 시민으로 대접하는 것에 서툰 노년층을 선뜻 비난만 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와 함께 공동체를 구성하는 어른들이고, 어쩌면 우리가 나이든 후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경계해야 한다. 올바르게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이, 그저 하루하루 생물학적으로 낡아 가는 것을. 변화하는 세태와 젊은 세대의 진화에서 유리된 채, 자기가 만든 우리 안에서 먼지 쌓인 박제가 되어 가는 것을.
그러기 전에 미리미리 주변에 말하고 다닐 일이다. 혹시 내가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눈치가 보이면 경고해 달라고. 마음을 열고 듣겠다고. 그렇게 변하기 전에 돌이키겠다고. 더 늦기 전에.
덧붙여서, 어린 시절부터 도올의 사상에 정신적 성숙의 많은 부분을 기댔던 사람으로서, 아무쪼록 선생께서 이런 부분까지 두루 통찰하시는 성현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앙망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