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에 무슨 혁명이 있었다던데
1968년에 프랑스에서 무슨 혁명이 있었다는데, 사실 평소에 별로 신경 안 쓴다. 이 혁명의 성격이 무엇이고 도대체 무엇을 이루었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애매하기 때문이다. 나는 1968년에 어떤 의미로도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68혁명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길 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이게 ‘혁명’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때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이 화가 나있었고 대단히 많은 어떤, 뭐, 무슨 저항을 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68혁명은 전세계에 자유주의적 가치를 전파하는 계기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당시를 상상해보자면,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어떤 풍요와 억압과 불안이 동시에 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불행에 그럴만한 객관적 이유가 있는 경우 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전후의 사정이란 보통 그렇지 않다. 거대한 불행은 마침내 끝났으므로 이제 번영이 찾아올 차례이며, 실제 경제적 삶은 나아져 가고 있으나 여러 사회적 조건은 여전히 전쟁 이전의 것에 머물러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의 욕망은 점점 더 반항적인 기질을 갖춰 간다. 지금 이대로는 어쨌든 안 되는 것이다.
1968년 5월의 혁명은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항의한 대학생들이 행동에 나섰다가 체포되고, 또 다른 대학생들이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억눌렸던 욕망을 저항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런 유행은 곧 전사회적 차원으로 확산됐다.
68혁명의 ‘운동권들’은 누구였나
모두가 길거리에 쏟아져 나올 때 신이 나는 것은 이른바 운동권들이다. 운동권들이 흔히 거대한 저항을 앞에 두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자기가 믿는 이념을 전파하고 대중을 조직해 ‘동지’의 숫자를 늘리는 거다. 이 사람들에게 1968년 5월 이전까지의 불안한 정국은 거대한 장이 선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이들이 갖고 있는 관념은 저항을 함께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논쟁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당시 광장에 나타난 운동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소련 추종자들이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 격하운동을 주도한 니키타 흐루쇼프가 1인자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후 단지 몇 년이 지났을 시점이다. 소련 추종자들 역시 사상의 혼란을 겪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과거엔 코뮌테른의 지침을 수행하기만 하면 장땡인 처지였는데, 이젠 나름의 무슨 생각을 해야 한다.
이 혼란의 도가니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스탈린으로부터 쫓겨나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트로츠키의 추종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는 무정부주의자들이나 철학적 옹알이를 좋아하는 일군의 구조주의 및 실존주의자들, 프랑스 공산당에 몸을 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탈-스탈린주의자들, 현대적 사회민주주의 지지자들 등등 역시 이 거대한 장에 참여해 나름의 백가쟁명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먹고 사는 일에 쓰기 바쁜 사람들의 입장에선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결국 이 ‘백가쟁명’이란 대학생들의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일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이런 종류의 논쟁에서는 현실에 일단 안주하자는 쪽보다는 이상과 관념을 논하는 쪽이 더 각광을 받는다. 이들이 중국에서 젊은이들이 기득권에 저항하며 들고 일어나 과거의 사상적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을 복권시킨 ‘문화대혁명’에 매력을 느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의 젊은이들처럼 들고 일어나자!’
‘비참한 대학생활’: 자본주의적 일상에 대한 비판
이런 무리 중에 다소 나이가 많았던 사람으로 스탈린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적 성격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공산당에서 쫓겨난 앙리 르페브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1965년까지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파리 대학에 몸을 담았다. 이 사람의 장기는 마르크스주의의 소외 개념과 물신화를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었다.
르페브르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는 기 드보르라는 자도 있었다(이 둘은 운동권답게 시덥잖은 이유로 나중에 결별한다). 1994년에 총기를 이용해 자살을 했다. 이 사람의 관심거리는 오늘날의 말로 하자면 전위예술과 정치적 급진성을 결합하는 것이었는데,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던 일군의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1957년 먼저 결성한 조직이 바로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왜 이름이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인지 설명하려면 너무 골치가 아프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이었다. 이들은 몇 차례의 행사장 난입과 자기들끼리의 관념적 다툼을 벌인 끝에 1960년대에 이르러 나름의 이론적 완결성을 갖추게 된다.
운동권이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이론적 차별화를 해야 한다. 이것은 보통 남의 조직을 비난하는 팜플렛을 만들어 뿌리는 방법으로 실천을 한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경우는 1966년에 무스타파 카야티라는 활동가를 파견해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난동을 일으키는 걸로 이 임무를 완수한다. 이때 뿌려진 팜플렛이 오늘 내가 독자들에게 어떻게든 팔아야만 하는 <비참한 대학생활>이다.
남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팜플렛이라고 하면 편견을 갖고 대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남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비판을 하되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 팜플렛에 담긴 남의 조직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일리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일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 주장했던 자본주의적 일상에 대한 문제의식은 꽤 날카로운 종류의 것이었으며 심지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측면이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다시, 저항은 반복되고
우리는 또 다시 반복된 저항의 시대를 살고 있다. 노동개혁이니, ‘최순실 게이트’니, 여러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니 하는 것들이 그렇다. 촛불집회에 100만 명의 시민이 뛰쳐나오는 광경은 프랑스의 1968년을 연상케 할 정도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문제는 – 물론 저항 그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안’이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대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두 가지 상반된 태도 사이를 왕복한다.
하나는 대안 같은 게 원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으나 일단 자신의 저항 의지를 어찌됐든 표현하겠다는 태도다. 집회에 나와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성혐오적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걸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냥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고 현 집권세력이 아닌 아무 세력이나 정권을 인수하면 된다. 그래서 이 사람들 입장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을 파괴했다’는 것과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것은 사실상 똑같은 얘기다. 그것들은 그저 물러나야 할 이유들에 불과하며,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이런 관념은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저항의 과정에서, 사실 아무런 대안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지금 당장 못살겠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여러 과격한 행위들을 해온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저항은 실패하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결말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른바 러스트 벨트에 거주하는 백인 저학력 남성들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시대의 기인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나 영국이 의도치 않게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해 전세계적 걱정거리가 돼버린 것도 사실 이런 경우다.
‘두 가지 상반된 태도’의 또 다른 하나는 과거 대안으로 여겨졌던 전형을 다시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에 집착하는 태도이다. 경찰과의 극한 충돌과 청와대로의 돌진이 집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과, 대중의 저항을 당이 지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안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저항도 시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기성 정치가 그어놓은 선 바깥으로 나가는 극단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똑같다. 이들은 결국 ‘성공한 저항’이라는 전형을 재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대안의 총체성과 우리의 소비주의
<비참한 대학생활>엔 이 두 가지 태도에 대한 비판의식이 나타나 있다. 위의 사례와 상황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을 연결하자면 ‘총체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진정한 문제는 대안이 있다거나 또는 없다거나 저항이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또는 개량적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원래 세상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실패가 미래의 성공을 눈곱만큼도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의 저항이 세계에 대한 총체성을 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시 소외, 물신화, 소비주의 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정치적 대안을 만드는 행위란 어느 순간부터 여러 상품 중 하나를 구매하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소비자로서의 우리는 상품의 생산에 관여하지 않으며, 오로지 ‘구매’라는 심판의 권능만을 가진다. 상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오직 중요한 것은 상품의 생산과정이나 그것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가치에 대한 문제를 따져보는 게 아니라 결국 내가 그 상품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나는 상품에 대해 잘 몰라도 돈만 있으면 어느 때나 그것을 구매할 수 있다.
사람들이 기왕이면 이기는 후보에 투표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잘 팔리는 상품을 구매한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념적 지향이 없으면서도 굳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주장의 배경에는 남들과는 다른 ‘유니크’한 상품을 소유하겠다는 욕망이 작용한다. 실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정치인들의 행동과 선거를 둘러싼 문제들을 마케팅 전략의 용어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익숙해졌다.
일부 네티즌들이 메갈리아-히틀러-친일파-일베를 하나로 묶고 무차별적 비난을 가하는 것은 이들이 ‘비정상’의 표상으로서 ‘불매’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일부 네티즌들이 ‘한남’을 비난하며 ‘갓양남’을 이상화하는 범주화를 시도하는 것도 결국은 비정상적 상품을 폐기하고 정상적 상품을 구매하겠다는, 일종의 상품논리다. 특히 인터넷에는 이런 식의 인식이 만연해있다. 아마 이 글 역시 ‘동의’ 또는 ‘지지’의 탈을 쓴 구매 또는 불매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그러나 대안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표현에 대한 금지나 허용, 어떤 세력에 대한 지지나 반대, 어떤 상품에 대한 구매나 불매로는 부족하다. 물론 우리의 인식은 체제에 속하므로 소외, 물신화, 소비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세계의 총체성을 구하려는 의지를 가져야만 오늘의 실패를 내일의 성공을 대비하는 거름으로 쓸 수가 있다.
<비참한 대학생활>의 목차를 보면 이런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1장은 ‘치부를 드러내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자’, 2장은 ‘사상의 실현만으로는 부족하니 현실이 자신의 사상을 도출하게 하자’, 3장은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게 할 상황을 창조하자’란 제목이 달려있다. 명료하게 말하자면 먼저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한 위에, 이와 분리할 수 없는 (우리 스스로 도출해낸) 이념적 사상적 결론을 얹고, 이를 실천에 옮겨 실질적인 세상의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시도를 하자는 것이다. 더 보탤 말도 없고 뺄 말도 없다.
대학생들은 왜 시국선언을 하는가
이런 내용의 팜플렛이 특히 대학생을 대상으로 뿌려진 것은 앞서 잠깐 언급한 대학생 고유의 특성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오늘날의 대학은 대학생이 완전히 체제에 종속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으로 말하면 대학생은 지적 성숙이 충분한 상태이나 체제의 논리에 완전히 종속되지 못해 비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다른 세상을 꿈꾸는 데 필요한 일을 하기에 불행하게도(?) 가장 적합한 상태이다.
놀라운 것은 1960년대를 잠시나마 주름잡은 이 이단아들이 진단하는 대학의 현실이 오늘날 우리들의 불평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것이다. 비판의 내용은 달라진 게 없으나 대학생들의 외양과 표정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이제 대학생들의 경쟁의식에 찌든 표정 아래서 냉소와 무기력과 패배주의를 읽는다. 그런 세상을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
똑같은 비판, 똑같은 논쟁, 똑같은 대응,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세상을 바꾸자는 사람들이 과거 내놓은 반성과 참회와 비판을 다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비참한 대학생활>은 우리가 늪에서 빠져 나가기 위한 참고자료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건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이 책이 얼마나 팔리든 사실 나의 삶과는 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끔찍한 상품논리로부터 우리의 정치가 탈출하는 것뿐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오직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