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핑계로 사진은 정작 안 찍고 긴 글만 올리는 이상한 찍사 라시엘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글로 또 찾아뵙습니다. 처음엔 어떤 분의 글에 댓글로 달려고 쓰던 글이 오늘도 여지없이 길어져 버렸네요. 뭐, 다들 한 번쯤 읽어보시라고 그냥 글로 올립니다.
오늘의 내용은, 단렌즈 화각 선택의 방법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풀프레임을 기준으로 쓴 글입니다. 크롭프레임이나 마이크로포서드를 쓰시는 분들은 그에 따라 환산된 화각으로 계산하시면 됩니다. 캐논은 1.6, 니콘은 1.5, 마포는 2를 곱하면 수치가 맞습니다.
시그마의 ‘아트 삼식이(시그마 30mm f1.4)’가 그렇게 인기를 끄는 것도, 캐논 기준 48mm, 니콘 기준 45mm가 되서 딱 표준 화각에 맞는 렌즈가 되기 때문이죠. 사실 35mm 렌즈는 풀프레임 호환성이 좋아서 그렇지, 소위 표준 렌즈인 50mm와 환산상 딱 맞는 렌즈는 30mm나 28mm이긴 합니다.
다만 mm는 본래 초점거리를 의미하는 것이고 화각은 각도기의 도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편의상 초점거리로 이야기하고 초점거리에 따른 화각은 대략 일치하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렌즈별로 1-2도 정도의 미미한 차이는 발생합니다.
1.
단렌즈도 다양한 화각이 있습니다. 주로 24-35-50-85-135-200의 6개 렌즈가 일종의 표준값으로 널리 만들어지는 렌즈들입니다.
하지만 심도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시겠지만, 35를 넘어갈 정도의 광각 렌즈에서는 조리개에 따른 심도값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낮은 조리개값이 생각보다 큰 메리트가 되질 않아요. 이 화각은 저처럼 은하수 찍으려고 일부러 조리개값을 낮춘 것을 쓰지 않는 한에야 그냥 줌렌즈로 퉁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망원은 아웃포커싱 자체가 워낙 강하다 보니 조리개값이 낮으면 너무 날아가서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뭐, 그래도 대표 쓰시는 분들은 씁니다. 진짜 미친 듯이 날아가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망원 단렌즈는 가격이 심히 비쌉니다. 100-200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기천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단렌즈의 구성은 하나는 표준각, 하나는 준망원각으로 맞추는 것이 기본이 됩니다. 35-50의 표준각과 85-135의 준망원각이 기본이죠. 다만 전체를 구비할 것이 아니면, 발줌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선에서 35-85, 또는 50-135로 구성하시는 게 가장 가성비가 좋은 구성법입니다. 저는 50-135를 선호합니다만, 35-85를 선호하는 사진사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단, 웨딩 등의 촬영에서는 50-85의 구성도 흔히 보입니다. 어차피 원판 촬영할 것은 줌렌즈를 이용하고, 50mm의 표준으로 주요 촬영을 하면서 일부 사진을 85mm로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예식장 등의 공간에서 135는 좀 지나치게 망원인 것도 있고요.
즉, 상황은 케바케입니다. 35-85, 또는 50-135의 구성은 일반론 수준이고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은 아니라는 건 알아두세요. 자신의 사진 환경을 잘 고려하셔서 배치해야 합니다.
일단 한가지 언급하고 시작합시다. 원래는 35와 50에 대한 말로 꽤 유명한 말인데, 85에 대한 내용을 마루토스 님이 덧붙인 내용입니다. 워딩이 정확한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쓸만한 사진은 모두 35mm에서 나온다.
그러나 진짜 작품은 50mm에서 나온다.
그리고 대중은 85mm에 열광한다.
2. 2가지의 표준 렌즈 : 35mm와 50mm
표준 렌즈의 정의는 ‘이미지 센서의 대각선 길이를 초점거리로 가지는 렌즈’입니다. 정작 사진사들조차도 착각하는 부분인데, 이게 가장 올바른 정의에요.
환산 화각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에러가 걸리는 겁니다. 센서가 커지면 표준 렌즈도 달라져요. 풀프레임은 초점거리 43.27mm가 표준 화각입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두 개의 표준 렌즈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35mm와 50mm입니다. (단, 탐론에는 진짜 저 화각이랑 비슷한 45mm 단렌즈가 있습니다)
35mm는 43수치와 초점거리가 가까운, 그에 따라 사람의 시야각에 가장 유사한 렌즈입니다. 눈으로 보는 그대로의 화각을 담는 스냅 촬영에 유리합니다. 또한 피사체와의 거리가 제한되는 실내 촬영에 강점이 있어서 일명 카페 렌즈라 불리는 화각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담기기 때문에 여행용 스냅 렌즈로는 최적이지만 인물 촬영은 은근 어려운 부분이 많은 렌즈입니다.
50mm는 43 수치와 화각(약 53도)이 비슷한, 그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원근감과 가장 유사한 렌즈입니다. 일명 표준 화각의 대표 렌즈입니다. 보이는 그대로의 느낌 자체를 담기에 좋고, 가장 전천후로 이용되는 렌즈입니다. 다만 정확한 용도를 딱 규정짓기는 또 어려운, 어떤 의미에서는 2단 우산처럼 비를 다 막아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는 애매한 렌즈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35와 50에 대한 선호도는 보통 거리감 왜곡의 여부에 달렸습니다. 50도 어느 정도의 왜곡이 있기는 합니다만, 35는 광각 속성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보니 그에 따른 거리감 왜곡이 생각 외로 크게 발생합니다. 또 광각이다 보니 아웃포커싱도 약해지는 경향이 있죠.
왜곡을 징하게 싫어하는 저 같은 타입이시라면 50mm, 뭔가 좀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보는 그대로의 풍경을 담고 싶으시다면 35mm가 낫습니다. 실내에서는 뭐 35가 무조건 유리하고요. 50은 여자친구 찍어주시려면 의자 뒤로 쭉쭉 빼셔야 합니다.
3. 준망원의 대표 주자 : 85mm와 135mm
아웃포커싱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보통 조리개를 이용해서 아웃포커싱을 하면 배경 자체의 보케가 무너지지는 않으면서 흐려지는 느낌을 받게 되고, 망원 등 거리를 이용해 아웃포커싱을 하면 배경이 아예 무너지면서 보케가 섞여버리는 형태가 나타납니다. 저는 이것을 보케형과 스머지형으로 구분합니다.
이것이 적절하게 섞이는 지점이, 바로 준망원화각인 85mm와 135mm입니다.
85와 135 렌즈는 전형적인 야외용 인물 렌즈입니다. 완전 망원과 표준의 접점에 있어서 조리개형 아웃포커싱과 망원형 아웃포커싱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화각입니다. 강한 아웃포커싱으로 인물이 부각되는 만큼, 사진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가장 혹하는 사진은 여기서 나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워진 배경과 두드러지는 인물이라는 단조로운 구조 때문에 사진이 좀 뻔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사진이 뭔가 변함이 없는 거 같다, 배경이랑 인물만 달라지지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이것은 ‘망원의 함정’에 빠지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준망원 렌즈는 솔직히 인물 촬영에 정말 쉬운 렌즈고 좋은 렌즈지만, 사진 자체가 단조롭고 아웃포커싱 때문에 배경을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진 처음 찍는 초보한테 들려줘도 노출이랑 초점만 잡으면 중간은 가는 렌즈이기도 해요. 언제고 이에 대해서는 다시 글을 쓸 생각입니다. 그래도 모델 촬영이나 여친 촬영을 하신다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렌즈입니다.
참고로 니콘은 135 화각이 D렌즈 이후 리뉴얼되지 않고 있으며, 쓰시려면 삼양 수동 렌즈나 칼자이스 렌즈를 쓰셔야 합니다. 85mm와 135mm는 비슷한 화각인 90mm나 150mm로 교체되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캐논이 이 점에서는 가장 표준으로 만들기는 해요. 아닌가. 캐논이 만들어서 표준이 된 건가.
4. 조리개값에 따른 구매 원리
우선, 애초에 광-표준에서는 아웃포커싱이 두드러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지가 두 가지가 됩니다. 이걸 억지로 조리개값을 낮추고 낮춰서 그 와중에도 아웃포커싱을 뽑아내든가, 아니면 다 포기하고 그 보이는 느낌 그대로를 찍는가죠. 저는 철저히 후자입니다. 정확히는 돈이 없어서 후자가 된 거 같기도 하지만, 뭐 어쨌건. 흠흠.
사실 1.8 렌즈와 1.4 렌즈를 보면, 아웃포커싱이 생각 이상으로 크게 차이가 납니다. 계산기를 돌려보면, 35mm 기준 피사체와의 거리 2미터라고 했을 때 1.8은 초점이 맞은 면으로부터 22cm, 1.4는 초점이 맞은 면으로부터 17cm가 초점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는 거리가 됩니다. 5cm라고 되어 있지만 이 차이가 실제 촬영에서 보면 굉장히 큽니다. 솔직히 표준 화각에서는 조리개 심도가 꽤나 중요합니다.
반면 준망원 화각에서는 심도의 문제보다도 렌즈의 문제가 더 크게 좌우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준망원 렌즈인 ‘만투(85mm f1.2 L USM)’ 1.2 렌즈와 다른 1.4 렌즈를 비교해보면, 더 흐려진다는 느낌보다는 만투 특유의 보케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많이 날아가서 더 날아갔다, 덜 날아갔다 이런 느낌이 크게 들지 않아요. 1.2와 1.8 정도면 확실히 눈에 띄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낮은 조리개값에서는 지나치게 날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초점 잡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만투 관련해서 자주 하는 얘기가 있죠.
초점만 맞으면 어디서 찍어도 예술이 된다. 하지만 초점은 맞지 않는다.
어찌 됐든 선택입니다. 조리개값은 확실히 심도 표현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저 수치에 따른 가격 차이는 거의 60에서 100만원 이상을 호가합니다. 무게도 더 무거워집니다.
같은 값이면 무슨 고민을 하겠냐마는, 같은 값이 아닙니다. 진짜 만투 하나 살 돈이면 애기만두(85mm f1.8)를 4-5대를 삽니다.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없을 테죠. 하지만 그것이 과욕인지 아니면 정말 필요해서인지는 스스로 고민하셔야 합니다.
제 렌즈 구성을 보면, 전 예전 캐논 시절 쩜사를 썼던 걸 제외하면 항상 1.8 렌즈를 이용해 왔습니다. 저는 배경이 어느 정도 살아나면서도 그 속에서 인물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길 바라고, 굳이 배경을 지우기보다는 선 자체가 명확한 사진을 추구하는 스타일입니다. 감성 따위 없죠.(먼산)
물론 저도 자주 욕심이 납니다. 하지만 누가 주면 모를까, 제 사진 생활, 제 사진 스타일에 굳이 필요한 렌즈가 아니기에 쓰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비싼 렌즈 하나 살 돈이면 전 해외로 사진 여행을 한 번 더 가자는 주의라…
마무리하며
요새 주말이 좀 여유롭습니다. 업무가 바빠서 야근은 해야 하기는 하는데 뭔가 일정이 꼬여서 정작 바쁜데 일이 없는 이상한 상황. 그 덕에 오랜만에 긴 글을 또 하나 싸질러 놓습니다. 도움이 되시는 분도 있겠고, 뭔 개소리냐 하는 분도 있겠고.
개인적으로 업으로 하는 분이라서 급박하게 찍어야 하는 문제도 없으신 분들, 그런 분들이 풀프레임, 그것도 캐논을 쓰면서 단렌즈를 쓰지 않는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예전 바디 선택하는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풀프레임의 장점은 화각 분야에서는 사실상 사라졌고, 이제 고감도와 심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근데 줌렌즈 정도의 심도는 이제 시그마 UFO(시그마 아트 18-35 f/1.8) 렌즈의 출현으로 크롭프레임에서도 얼마든지 줌렌즈로 확보 가능하고 돈도 덜 들거든요. 단렌즈면 뭐 말할 것도 없고. 시그마 렌즈가 무겁다고 해봐야 솔직히 신계륵(캐논 EF 24-70mm F2.8L II USM)이나 새아빠(캐논 EF70-200mm f/2.8L IS II USM) 생각해보면 무거운 것도 아니고. 캐논은 5D Mark IV랑 1D x Mark2 빼면 고감도 성능도 니콘 크롭프레임 수준이랑 크게 차이가 없고요. 돈이 싸길 하나. 뭐, 어찌 됐건 자신의 선택이겠습니다만.
좋은 제품 사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렌즈 이전에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한테 필요한가, 이 가격을 들일 가치가 있는가, 이 돈을 써서 하지 못하는 다른 일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등등.
사진을 찍는 건 렌즈도 바디도 아니에요. 여러분입니다. 그것만은 반드시 기억하세요.
원문 : 조현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