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들을 만나보고 얘길 많이 하다 보면, ‘벤처가 아닌 완전 초창기 스타트업들에게 투자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언가 ‘라고 묻곤 한다. 대다수는 아이템이나 사업성을 본다고 대답한다. 그런 당연히 봐야 하는 것 말고, 실제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가 뭔지 궁금했다. 그러다 어느 한 인터넷 칼럼에서 인상 깊은 글귀가 보였다.
” 카이스트 출신 3명이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금 계약을 진행했다. “
이런 내용이었다. 요점은 스타트업 구성원들의 인적자원을 가장 크게 판단한다는 것이었다(한 번 더 말하지만 아이템이나 사업성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다)하지만 그게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을 무조건 높여준다고는 볼 수 없다. 성공확률을 높여 줬다면 카이스트 출신 사업자들은 모두 다 성공했어야 했으니까. 그런 회사에 이미 다녀본 나도, 그때 스타트업 기행이 끝났을 것이고 말이다.
대표와 임원들이 모두 6명 즈음 되는 회사였다. 다들 스탠포드, 버클리 등의 외국 대학 출신에 서울대, 카이스트를 나온 임원들도 있었다. ‘카카오택시’가 나오기 한참 전 그 와 비슷한 용역거래 플랫폼을 아이템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나름 사업아이템도 괜찮았고 구성원들도 어디 빠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데다 실행력도 좋았다. 그래서 내가 참여했을 때는 이미 투자도 어마무시하게 받은 상태였다.
물론 내부에 실무개발진이 없었기 때문에 외주로 일을 진행했고, 그걸 컨트롤하는 능력과는 별개로 업체 선정부터 문제가 있었다. 해당 업체가 망해버린 시점에서 그때의 진행을 마무리하려는 목적으로 새로 팀을 꾸리게 되면서 내가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현직 개발자들이 전 개발자 씹듯이(통상적으로 하는ㅋ) 오너들은 외주개발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개발팀을 내부인원으로 다시 꾸리게 된 사정을 나에게 ‘인수인계’했다. 외주를 준 회사는 망했고 남은 건 서버에 남은 소스뿐인 상황에서 내가 믿을 건 현재 구성된 임원들의 능력빨과 투자받은 자금빨 뿐이었다. 그런데 자금은 이미 거의 바닥난 상태였던 것을 당시 나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제대로 된 상황을 알게 되었다. 외주 회사에만 몇억을 이미 부은 상태고, 2년 동안이나 매출도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까지 다 완료되어 개발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외주업체는 기존 개발 기간 1년에 추로 1년을 더 버티면서 결국 업체가 망할 때까지 완성되지 않았는지 의문이었다. 그 회사에 1년여 간 근무한 다음에야 의문의 실체를 하나하나 알게 되었다.
일단,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다들 너무 잘났다. 출신이 엘리트인 만큼 개개인의 자존심이나 의견이 무척 강했다. 이 말은 곧 ‘독단적이었으며 타협이 없었다’는 말로 치환 가능하다. 게다가 각자 지향하는 바도 달랐다.
어제 회의에서 중요하다 여겼던 요소는 오늘 회의에서 아무 쓸모 없는 요소가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회사의 방향성조차 아직 정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장기 플랜을 미리 짜기는커녕, 단기 플랜도 서로 간의 의견충돌로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
게다가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전달이 불투명했다. 직원들은 그야말로 장기말이었을 뿐, 자유로운 의견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애사심과 열정을 강조하기만 했다. 임원들의 능력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믿으라고만 하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니들이 뭘 생각하든 우리가 더 옳다’ 이런 태도였다.
10명 남짓 타고 있는 배에 7명의 선장이 있었다. 그 선장들이 가는 목적지는 모두 다 달랐다. 항해하는 배를 다 만들기도 전에 항구에 정박해서 수리부터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막장이었다.
게다가 대기업의 안 좋은 특성마저 어설프게 녹아들어 있었다(아마 그들이 겪었거나 귀로 들어온 것이겠지). 까라면 까야 했고, 회의 때 독자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면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몇 안 되는 사내 직원들을 감시하는 직원도 있었으며, 직원관리라는 명분 아래 직원들을 탄압하는 수단이 되기까지 했다. 아니 외국에서 살다 온 양반들이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어찌 그리 군대처럼 일하는지.
급여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팀장에겐 팀원들의 급여를 줄 수가 없으니 양보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고, 팀원들에게는 팀장 급여를 줄 수가 없으니 양보해 달라며 같은 양해를 구하면서 정작 그 누구도 그 ‘양보된 급여’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직원들끼리 말 못 할(퇴직하고 나서야 말할 수 있을) 사정으로 인해 서로 간에 불신만 쌓여가고 있었다.
아니 왜 배울 만큼 배운 양반들이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할까? IT 기업, 아니 IT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는 게 후의 내 평가다. 아니, 그 전에 회사 운영을 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VC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보는 오너들이 엘리트급이고, 그들 경험으로는 그것이 가장 성공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을 텐데 현실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인가? (물론 한번 겪은 경험으로 답을 내린 나도 성급하게 일반화한 부분도 있다)
사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엘리트가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환상이었을 뿐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무조건 출신이 중요하다는 것은 옳은 답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조합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회사 운영 및 PT, 자금 관련된 부분의 엘리트, 개발 부분의 총괄 엘리트, 디자인 및 설계에 관한 엘리트,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엘리트. 이런 식으로 환상적인 엘리트들이 구성되어 있다면 굉장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규모가 작고 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이긴 하지만, 각각의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운영, 투자유치 영역과 구현 영역, 조직관리영역… 엘리트 보다도 그 영역에 있어 전문성이 뛰어나고 조직융화에 대해 경험이 많은 조합원이 한 분야의 어마무시하게 뛰어난 엘리트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그런 엘리트는 스타트업 조직원보다는 좀 더 큰 기업의 특화된 무대가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 부분은 나의 ‘엘리트’라는 정의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고, 명확하게 어떻다고 정의내리기도 어려운 주제라 후에 어떤 식으로 나의 평가가 변화해가는지에 대한 단계로서 쓰는 글에 가깝다.
원문 : !NeoEsca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