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왕의 죽음과 함께 왕궁은 혼돈에 빠졌다. 먼 옛날 동쪽의 큰 섬 ‘왜’로부터 전해졌다는 금지된 파괴의 주술 ‘유신’을 발동했지만, 그 반동으로 일어난 저주로 신을 죽이는 총 ‘발터’에 비명횡사하고 만 정희 1세. 왕의 죽음과 함께 피의 주술 ‘유신’은 그 적통인 공주에게 혈통 승계된 상황, 왕궁에서는 공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충신 중의 충신 드 환 경은 급히 왕궁 금고에서 공주가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도록 6억 원을 꺼내 경황이 없는 공주의 쌈지주머니에 넣어주곤 말했다.
“반드시 돌아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2.
아버지가 신을 죽이는 총 ‘발터’를 맡겼던 것은 아버지의 최측근 재규어. 음지에서 일하며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어주었던 그의 배신은 어린 공주에게도 충격이었다.
공주는 누구에게도 왕가의 권력을 나눠주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오직, 그 어떤 권세도 마다하고 신의 뜻과 공주의 보필에만 전념했던 대사제 타이민에게만 신뢰를 주었다. 그러나 노쇠했던 타이민은 그만 공주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천지만리 혼자뿐인 우리 공주님… 우리 공주님을 남겨두고 내가 어찌 떠나나…”
그것이 타이민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3.
오랫동안 애국 신민들 사이에서 괴뢰 부카니스탄과 내통하였다 일컬어지던 the 슨상님이 왕궁을 찬탈하고, 그의 뒤를 이어 고졸 주제에 나라의 죄인을 판단하는 등 국정을 농단한 괴수 므현이 왕좌를 차지하매, 애국 신민들 사이에 왕의 귀환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제야 최대의 정치 파벌 일국(一國)당은 공주를 찾았고, 공주는 이 파벌에서 놀라운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머슴 출신 오사카 맨슨과 함께 양대 파벌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비로소 왕궁을 되찾기 위한 원정대가 조직되었으나, 어이없게도 오사카 맨슨이 공주를 능멸하고 좌장으로 서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4.
왕궁을 되찾았으나 왕좌를 오사카 맨슨이 찬탈한 상황, 넋이 나간 채 지내던 공주의 방 앞에 어느 날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창문을 연 공주는 그 앞에 한 소녀가 서 있음을 발견한다. 공주도 이 소녀를 알고 있었다. 나라 제일의 명마를 다섯 마리나 가지고 있다는 천하의 명기수였다.
“공주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뒤에 서 있는 여인 – 공주는 그 여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 여인의 얼굴 속에 누구의 얼굴이 담겨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천지만리 하나뿐인 자신의 유일한 벗, 그 이름은 -.
5.
“당신에겐 여왕의 귀환을 막을 권리가 없잖소, 섭정!”
여인은 주술로 나라의 강역을 녹색으로 물들이는 이적을 보여주었고, 오사카 맨슨은 상서롭지 못한 조짐에 왕좌를 내려놓았다. 드디어 순리에 따라 왕좌는 다시 공주의 것으로 돌아왔고, 삼십 년 넘게 섭정의 자리로 남아있었던 왕좌에 여왕이 귀환하였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므현의 종자 제인 문이 악의 세력 친노를 진두지휘하며 사사건건 공주의 국정에 참견했다. 공주에겐 점점 믿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친노는 어느새 온 국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창조경제 꽃을 피우려는 공주의 계획은 어그러졌다. 누군가가 공주의 귀에 속삭였다.
“헤일, 친노.”
6.
공주는 더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이 내게 외로운 여왕이 되길 강요한다면, 기꺼이 그리하리라 공주는 다짐했다. 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있었다. 단 한 사람, 백마 타고 찾아온 초인, 사제 슨실이 있는 한 내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슨실은 주술이 담긴 예복과 오방낭으로 공주를 지켜주었으며, 공주의 말 속에 매혹의 주문을 불어넣는 일을 했다. 우주의 기운이 공주를 지켜주도록 했다.
그러나 악의 축 친노는 점차 세력을 넓혀갔고, 악의 주술로 슨실의 신성 마법을 파해하기 시작했다. 마법진 미르의 위치가 발각되며 공주는 눈물을 머금고 슨실을 덕국으로 피신시킬 수밖에 없었다. 슨실은 내가 죽더라도 공주를 지키겠다고 호소했으나, 공주는 내가 왕좌에 있는 한 누구도 날 상처입힐 수 없으리라며 슨실을 안심시켰다.
7.
내가 왕좌에 있는 한 누구도 나를 상처입힐 수 없으리라. 공주는 피의 마법 ‘유신’으로 영원히 왕좌를 왕가의 것으로 하기 위한 계획을 발동했다. 그러나 그날 밤, 친노는 마법진 즈트브크를 통해 슨실을 모함하였다.
공주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유신’을 발동했던 아버지는 신을 죽이는 총 ‘발터’에 비명횡사하셨다. 반신반인의 힘을 가지고서도 피의 마법을 쓴다는 것은 이토록 위험한 일인가. 세상이 내게 외로운 여왕이 되길 강요한다면, 기꺼이 그리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건만, 오직 믿고 의지할 단 한 사람, 슨실 없이는 참기 어려웠다. 친위대의 원내대표조차 자신에게 슨실에 대해 해명하라며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왕좌에 이는 바람 소리가 마치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추억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먼 덕국에서 들리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바람을 타고 달려온 말발굽 소리처럼도 들렸다. 만인을 내려다보는 외로운 왕좌에서 공주는 그 바람에 기대 다시금 굳건히 서리라 의지를 다졌다.
바람이 말하고 있었다. 천지만리 혼자뿐인 우리 공주님, 우리 공주님을 남겨두고 내가 어찌 떠나나…
원문 :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