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만 입력하세요. 디자인은 tyle이 해드릴게요.’
‘tyle(타일)’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서비스 설명이다. ‘카드뉴스 만드는 녀자(카만녀)’로 알려지기 시작한 ‘타일’은 ㈜투블루에서 개발한 서비스로, 올 10월부터 본격적인 유료 서비스 전환을 앞두고 있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과 이용계약을 맺는 등 빠른 성장을 보이는 이 툴에 대한 구성원들의 접근은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다. 투블루가 겪은 실패와 교훈, 그리고 성공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특유의 기업문화와 철학(?)을 취재했다.
1. 어차피 성공은 어렵다: 절대 남 탓은 하지 마라
투블루의 구성원은 총 6명이다. 처음 공동 창업한 멤버는 흥과 쭌. 이 둘은 서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혼자서는 실패를 반복해 왔다. 함께라면 어떤 고난이든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다. 그들은 시원하게 실패를 경험했다. 당시 개발하던 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취재진의 요구에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아무튼 서비스는 망했다.
비록 함께 해서 더러웠지만 그들은 남탓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냉철하게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슬라이드 툴’로 알려진 그 서비스는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투블루의 피벗을 위한 훌륭한 자산이 되었다.
2. 블루오션은 없다: 니즈가 없는 곳에는 시장도 없다
그들이 원래 시도했던 서비스는 웹 기반으로 비주얼 노벨을 쉽게 만드는 서비스였다. 당시 실패의 원인을 그들은 이렇게 회고했다.
흥: 창업해서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했어요. 당시에 하고 싶었던 일은 플랫폼을 만드는 거였는데… 이내 공급과 수요 모든 측면에서 예측에 실패했다는 점을 알게 됐죠. 컨텐츠를 공급할 사람을 찾기 힘드니 자연스럽게 플랫폼을 필요로 하는 수요층 관리도 못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뛰어든 시장을 블루오션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여기에는 시장이 없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시장, 혹은 뛰어들었지만 성공적인 시장 창출을 하지 못한 곳은 블루오션이 아니었다. 바다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창업자들은 이후 2개월간 암흑의 시기를 보냈다. 당시의 주요 화두는 ‘우리만의 특색이 있는가’를 넘어 ‘니즈가 있는 비어 있는 시장이 있는가’였다.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타일의 기획안이 등장했다.
3. 저비용으로 니즈를 파악하라: 캐릭터 활용은 초기 ROI 끝판왕이다
이후 대표 쭌은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영업을 다녔고, 개발이사 흥은 헬조선의 개발자답게 프론트엔드, 백엔드, 디자인, UX, 모바일 최적화, 전화 상담(…) 등 모든 걸 맡았다. 하지만 김지현 마케터는 할 일이 없었다.
해고와 월급 루팡의 위기 속 그녀는 아이디어를 냈다. 자신의 인격을 투입한 캐릭터 페이지, 카드뉴스 만드는 녀자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회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에 더 친밀감을 느낀다는 생각이었다.
카만녀는 자체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카드뉴스 템플릿과 마케팅 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학생, 마케터, 직장인 할 것 없이 카만녀의 ‘꿀팁’을 참고하고 공유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초기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천만원의 광고가 아닌 페르소나가 담긴 캐릭터 하나로.
4. 개발자는 단순 코더가 아니다: 기획에 참여하는 개발팀
투블루는 카만녀 킴이 다닌 50회 가량의 강연을 (업무 손실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였다. 개발하던 툴의 유저테스트로 활용한 것이다. 보통 사용자 테스트에 돈을 쓰는데, 배우러 온 사람들을 부려먹는 무시무시한 마케터이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다름아닌 개발이사 흥이다.
흥: 사람들을 실험실에 가둬놓고 간식 주면서 자, 이 서비스 한 번 써봐라! 하면 제대로 테스트가 안 되거든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게 하기가 쉬워요. 실제로 사람들이 어떻게 이 툴을 (이상하게) 사용할지 제대로 알 수 없는 거죠. 실습 수업에서 타일 툴을 사용해보게 하고 이를 지켜보면서,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지 많은 힌트를 얻었어요.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서비스에 그 누구보다 큰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 서비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회사에서 이들을 그저 코딩하는 기계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 좋은 서비스를 낳는다는 게, 이 기업의 신념이다.
또 이들은 취재 과정에서 일관되게 ‘사람’의 가치를 언급했다. 개인의 발전이 곧 회사의 발전이며, 업무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에 업무를 맞춰 과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흥: 개발자들이 즐겁게 개발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고 해요. 그 기반은 소통이고요. 많은 회사에서 기획서만 툭 던지고 개발하라고 해요. 그게 아니라 최대한 ‘이 일을 왜 해야 하나’에 대해 설명하는 거죠. 또 보고를 위한 보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일처리는 github 로그와 소스로 대신하고요. SW 회사에 이런 문화가 없으면 기획과 개발의 반목이 심해질 거라 봐요. 또 좀 더 쾌적한 개발을 위해 모두에게 고가의 기계식 키보드를 제공하고요.
5. 능력보다 인성과 팀웍: 채용의 핵심은 ‘신뢰’와 ‘문제해결 의지’
많은 스타트업이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 사람이 디자인, 마케팅, 개발 등 하나의 직무가 아닌 여러 직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블루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자신의 기본 롤이 있지만, 미션이 생기면 서로 협력하며 함께 해결방안을 찾는다. 모든 것은 회사의 문제이고, 네 일이니 내 일이니 가릴 수 없다는 것이 투블루의 철학이다.
흥: 말씀드렸듯, 비즈니스 모델과 목표를 공유하면 개발과 마케팅이 다르지 않아요. 배너를 어디에 어떻게 누가 다는지 문제가 아니라 배너를 왜 다는지에 대해 함께 얘기하자는 거죠. 물론 지금은 제가 제일 바쁘니, 개발자를 우선 채용할 생각입니다.
카만녀: 인력을 보강할 때 마케터다, 개발자다 이렇게 구분하지 않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와 함께 무엇을 할지가 중요하지, 채용 인력과 분야는 한정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지금은 제가 제일 바쁘니, 저와 함께 할 분석 기반의 마케터가 와야 합니다.
6. 야근은 없다: 팀을 위해 내가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회사가 있는 것
투블루는 ‘일단 야근은 없다’ 주의다. 야근만 없는 게 아니다. 회식과 워크샵도 없다. 업무시간 외에는 개인주의를 철저하게 장려한다. 일하는 과정 자체가 단합이니, 별도로 시간을 내 단합할 필요가 없다.
흥: 무조건 야근 하지 마라, 혹은 6시 이후에 불 끈다 그런 게 아니라, 정해진 업무시간 내에 효율을 높이는 작업을 하자는 거에요. 이를 위해서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결국은 방향이 중요하죠. 올바른 길을 옳게 가고, 구성원들끼리 그 방향이 공유돼 있어야 해요.
카만녀: 개인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챙겨주지 않는다는 건데, 그런 건 아니에요. 다들 ‘함께’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노력을 해요. 일례로 저는 매번 동료들 생일마다 선물을 줘요. 물론 그 님들은 제 생일을 안 챙겨줬습니다만(…)
7. 수직과 수평의 균형: 치열하게 토론하되 결정권자를 존중한다
투블루 식구들은 매일같이 서비스를 두고 토론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의견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터지게 싸운 후, 각 담당자의 결정을 존중하며 마무리된다. 개발은 개발이사 흥이, 마케팅은 카만녀가, 전략과 재무는 대표이사 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토론시간을 줄이고 실행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 담당자가 자신의 일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과 원칙으로 그들은 카드뉴스를 만들어주는 서비스 타일의 유료화에 성공했다. 이미 CJ E&M 등 굴지의 대기업이 타일을 사용하고 있다.
타일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그들은 먼저 운과 노오오오오오오오력을 꼽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디자인 툴이 넘쳐나면 뭐하나 디자인하는 게 문젠데. 그러니 이를 해결해줄 솔루션을 만들자’는 명확한 미션이 있어서였다. 이후 종종 매각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더 큰 비전이 있어서였다.
그들의 ‘더 큰 비전’은 바로 카드뉴스를 넘어, 더 다양한 영역에서 디자인 감각이 없는 사람도 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디자인 툴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미 타일에서 쌓인 디자인적 요소(폰트, 색깔, 간격 등)를 코드화하는 작업, 그리고 디자인적 요소의 상호관계(배치) 또한 코드화하는 작업의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
흥: 모두가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거나 디자인 툴에 대한 이해가 높은 건 아니잖아요. 디자인 툴만으로도 ‘디자이너가 당신 옆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고 싶어요. 빠르게 감각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지금은 카드뉴스 툴을 서비스하고 있지만, 앞으로 다른 형식의 디자인 툴로까지 확장해가고 싶어요.
킴: 그리고 디자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결국 이 카드뉴스에 ‘어떤 내용을 넣을 것이냐’하는 부분이죠. 이에 대해서는 ‘타일 아카데미’를 열어서 내용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카드뉴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하고 싶어요. 물론 타일을 사용하는 유저에게는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투블루 비즈니스의 핵심은 디자인 자동화 기술이다. 전통적으로 정성적이라 생각되는 시각디자인 부분을 정량적인 코드로 변환, 조립한다. 향후에는 카드뉴스로 제작된 슬라이드를 영상으로 추출하여 광고 효율을 높여주는 작업, 디자인 정량화 노하우를 오피스 영역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논의하고 있다.
흥: 가능한 모든 문제를 구성원과 공유하고, ‘방향에 맞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저희의 비즈니스 가치와 비전을 실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메시지를 입력하시면, 디자인은 자동으로 저희가 완성해 드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