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문제로 떠들썩하다. 어찌 보면 설계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납품받은 배터리의 품질 불량 문제일 수도 있다. 삼성은 어떻게든 귀결짓고 해당 모델을 단종하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대한민국, 우리들의 문제이다.
기업이 그 자체의 ‘업의 본질’을 망각하거나 훼손될 때, 기업은 성장이 멈추고 혼돈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해당 기업이 축적한 역량이 버텨주는 기간 내 업의 본질을 회복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내려 다른 방향으로 돌파구를 삼고 달려가게 된다면,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작은 기업과는 달리, 한국의 대기업은 그동안 나름의 역량과 경쟁력을 갖춰 왔다. 그래서 몇 가지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 문제를 깨닫고 해결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와 고급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킨 채 굳건하게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대한민국은 대기업 집단의 생존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스템을 구축해 받쳐 주었으며, 중소기업은 그 생태계 내에서 나름의 공간을 할당받아 아쉬운 대로 공생의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작고 큰 기업들의 합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이루었고, 국민들은 그러한 기업의 기본 요소로서 유기적인 한 덩어리가 되는 구조였다. 이 속에서 개개인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기업의 인재풀이 빈약해지는 것이고, 그러면 기업들로 이루어진 국가는 점점 성장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국가는 국민을 교육하고 시스템에 최적화된 인재로 만들어 공급해야 했다. 치열한 경쟁시스템의 쳇바퀴 구조는 이렇게 유도되어 온 것이다.
이 중 어느 한 부분이 무너지면 기업은 인재를 찾아 해외로 나가게 되고, 열심히 공부한 젊은 인재들에겐 기회가 없어지는 헬조선이 조성된다. 국가의 성장이 멈추게 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 당장의 분배와 보장에 더 민감해지는 다른 싸이클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모든 불안정의 시작을 작게 보면 개개인의 역량 부족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 중간에 있는 기업의 붕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위로는 국가의 재정을 뒷받침해줄 세수의 근원을 만들어내고, 아래로는 개개인의 삶을 유지시키고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직업(Job)을 제공한다. 기업의 이러한 중간 역할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개도국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총체적 문제인듯싶지만, 그들에게는 자원, 인재, 정부가 있을지언정 건실한 자국 기업체와 건강한 기업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난 수십년간의 글로벌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나는 보고 체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기업은 그들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업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 본질의 발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개별 기업의 ‘업의 본질’부터 정의해보도록 하자.
예시로 보는 ‘업의 본질’
유통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신세계(이마트 포함)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Availability’와 ‘Convenience’이다. 소비자가 필요할 물건을 다 가지고 있거나, 소비자가 불편함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거나, 아니면 이 둘을 모두 갖추면 되는 것이다. 남들이 제공할 수 없거나 공급이 어려운 물건들을 다 구비하는 방향, 또는 너무나 편리한 위치에 자리 잡아서 다른 곳을 가기 어렵게 만드는 방향이다. 이것들을 갖춘다면 유통업은 그 본질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진은 경쟁사의 상황에 맞춰서 조율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유통의 아마존은 오프라인 유통망에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물건을 구비하여 차별화를 시작하였고, 바로 손에 쥘 수 없는 온라인의 한계를 지속적인 혁신 해냈다. 때문에 이제는 당일 배송 또는 드론을 통하여 수 시간 내로 제공하는 편의성까지 둘 다 겸비하고 있다. 그래서 아마존이 막강한 것이다.
애플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잡하고 불편한 것을 소비자가 쉽게 쓸 수 있도록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Innovation’이 본질이다. 음악을 다운받고 재생하는 것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서 아이튠즈와 아이팟이 나왔고, 한두 시간이면 죽어버리는 두꺼운 랩탑을 반나절 동안 갖고 다닐 수 있게 가볍고 고장 나지 않는 맥북으로 만들었다. 전화기와 컴퓨터를 하나로 만들면서 정보를 쉽게 접하고 판단할 수 있게끔 아이폰으로 스마트폰과 앱 시장을 열었다. 작은 혁신에서 큰 혁신에 이르기까지, 애플의 브랜드와 신뢰감은 그들을 따라가면 가장 생산성 높고 똑똑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는 ‘혁신’에서 나온 것이다.
이외에도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 등 각 기업은 그들의 핵심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과 LG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쩌면 삼성, LG, 현대자동차… 아니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은 동일한 업의 본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훌륭한 제품? 다양한 부품경쟁력? 메모리 반도체? 가격 경쟁력?
아니다. 그것은 ‘공급망 관리(SCM: Supply Chain Management)’의 경쟁력이다. 이들은 일본보다 가격적으로 경쟁력이 있으며 품질 적으로는 대등한 수준으로서, 저가 대량 생산의 중국을 압도하면서 수많은 모델, 다양한 소재를 갖추고 있다. 지구 어느 곳에서든지 물건을 최단기간 동안 최대한 고품질로 생산해내는 마술적 공급망이라는 핵심 역량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애플이 폭스콘을 발판삼아 엄청난 물량의 아이폰을 만들어내지만, 그들은 삼성이 갖고 있는 공급망 실력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한두 개의 모델에 내부 부품조차도 가장 범용적인 (모든 주파수를 커버하는) 부품을 독점하거나 사전 대량 계약해서 변수를 최소화시키고, 사전 생산을 통해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항상 보장된 충성고객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초기 수요에 대응한다. 그 이후에는 반응을 봐서 조절해나가는 일차방정식을 대응할 뿐이다. 삼성이 대응하는 삼차방정식 (어떤 모델이 얼마나 어느 지역에서 언제까지 대박 날지)을 풀어내는 수준과는 다르다.
삼성은 해당 국가 (서로 다른 주파수대, 다른 인증규격)와 다른 사업자에 최적화된 다른 모델들을 수많은 국가에 동시에 발매하면서 그 수요를 맞춰내는 놀라운 공급망 관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그 회사의 핵심역량이다. 현대자동차, LG전자도 다름이 없다.
따라서 이들의 경쟁력은 모두가 혼란하고 애매하고 어디로 수요가 튈지 모르는 격변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것을 혹자는 fast follower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우리나라의 제조업 본질은 어디로 튈지 몰라서 수많은 조합을 준비하고 대비했다가 해당 수요의 기미가 보이면 재빠르게 남김없이 챙겨 먹는 든든한 공급망 관리이다. 제품의 화면이 큰 것을 좋아하면 그것을 맞춰주고, 옆구리가 휘는 것을 찾으면 곧바로 공급을 늘리며, 일체형이든 분리형이든 방수기능이든 뭐가 되든 수요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경쟁력 있게 빠르게 공급하는 능력인 것이다.
LG는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업의 본질에 뒤처졌다. 다양하게 준비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가면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제한된 모델을 브랜드나 영업능력으로 고객을 설득하는 능력을 아쉽게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다른 본질을 갖고 있는 다른 기업을 벤치마킹했던 것 같다. 컨설팅회사들은 제조업을 잘 모른다)
그들이 ‘업의 본질’에서 놓친 것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이 업의 본질에서 서서히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말 그대로 SCM은 공급망의 관리력이다. 관리력이란 그 생태계를 책임지면서 끌고 가주는 신뢰와 능력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대단한 생산성과 품질을 보장받는 공생의 네트워크인 것이다.
삼성은 상대적으로 투명한 벤더 관리를 보여줬다. 많이는 못 벌더라도 굶지는 않게 해주는 벤더 관리로 생태계 보존에 나름 신경을 잘 써왔다. 다른 그룹들이 친인척을 내세우고 단가 후려치고 결제 기간 연장하고 해외 현지공장에 무작정 투자해서 따라오기 등을 강요하면서 하청협력업체의 생태계를 서서히 약화시켰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그 누구도 새롭게 공급망에 뛰어들고자 하지 않게 되면, 그들의 차세대 제품 기획력과 가격, 품질 경쟁력은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본사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 외 스마트한 업체들은 해외의 업체로 판매를 넓히기 위해 눈길을 돌린다.
삼성이 ‘갤럭시 노트7’ 제품을 몇 개월 앞당겨 런칭한 것은 삼성의 업의 본질이 ‘SCM 경쟁력’임을 확인해볼 수 있는 테스트였다. 한 달, 두 달을 앞당겨 수백만대를 만들어야 하는 한, 모델을 빨리 런칭하기 위해서는 개발, 제조, 구매, 품질, 서비스, 유통망, 영업 전 분야에서 배가의 노력이 들어간다. 삼성은 TV건 휴대폰이건 날밤을 세우고 주말을 없애고 최대한 빨리 만들어 버리는 기적의 전통을 이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체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이 설계 개발 공정에서 잡지 못한 하자건, 제조상의 문제건, 협력업체 공급망의 품질과 단가 인하의 부작용이든 간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째 교체에서도 품질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초유의 단종과 회수 폐기처분 사태가 일어났다. 이것은 말단 직원의 실수일까? 경영진의 무대포 강행 실수일까? 납품하청업체의 태만인가? 공장부문의 예스맨들 입김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기업의 능력은 종속원 개개인 능력의 합으로 이뤄진다. 아마도 공장, 아니 공급망관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홀대한 수년간의 누적된 한계치가 터진 것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 업의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공장을 옮기고, 사람을 바꾸고, 조직개편을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어쩌면 오늘날 삼성이 있기까지의 그 본질을 다시 존중하고 격려해야 할 때이다.
한진사태로 국가적인 SCM 경쟁력이 힘을 잃고 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밖으로 실어내는 부분에서 빵꾸가 났다. 정치인들은 방만한 기업이 당연한 시장 경쟁력 부재로 낙오되는 것을 방치한다. 인천의 남동공단, 안산시화공단, 구미, 창원, 수원, 광주, 울산… 그곳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하드웨어를 만들고 싶어도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누구에게 기대도 되는지 모르는 채 비빌 언덕이 없어지고 있다. 물론 귀족노조도 한몫한다.
업의 본질이 이 생태계의 공존인 것을 망각하고, 중국이다 베트남이다 라고 몰려가는 어거지 SCM을 성공 경영의 사례로 학계에서 받쳐주며 신문에서 떠든다. 이러는 순간에도 우리나라 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그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대기업, 그리고 대한민국이 업의 경쟁력을 잃는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이점과 좋은 손재주, 빠른 판단력과 성실성, 그리고 쪽팔리기 싫어하는 자존심에 기인한 품질의 완성도, 사통팔달 도로, 철도, 해운망의 인프라, 똑똑한 사람들, 일손 달리면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는 예비생산군단 등 SCM의 핵심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SCM은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가야 한다. 이빨이 빠져나가고 있다. 다시 각자의 업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제조업의 본질이 무너지면, 서비스업과 콘텐츠 문화업만으로는 대한민국을 이끌 수 없다.
삼성, LG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에, 난 그들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응원한다. 주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생태계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