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공공기관은 기업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때 국내 총판과 계약한다. 서울특별시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직접 소프트웨어 업체와 계약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건 규모가 큰 ‘기업 대 기업’ 거래일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과 조희연 교육감의 설전이 10월7일 오전부터 트위터를 시작으로 소셜미디어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학교에서 쓰는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MS오피스, 한글)를 왜 한 업체에서 구입했는지 문제를 삼은 이은재 의원과, M오피스는 MS에서 살 수 밖에 없다고 답변한 조희연 교육감의 답변이 이날 국감의 백미였다.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이 틀렸는지 좀 자세히 알아봤다. 난 이제 기자는 아니지만… 칼럼니스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명에도 취재에 적극 협조해준 서울특별시교육청 관계자와 한MS 관계자에 이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여러분의 협조가 이런 사이트에 이런 기사로 올라왔습니다! 하하(…)
읽어도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대화(…)
우선 영상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질의가 오갔는지 보자.
조희연: MS와 아레아 한글 부분은 모든 회사가 다 두 회사와 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
이은재: 이게 업체와 무슨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느냐?
조:학교가 하는 것보다, 교육청이 집단으로 하기 때문에 훨씬 더, 20여억 원을 절약한 것으로 보고를 받고 있다.
이: 만약 그렇다면 보고가 잘못된 것으로 저는 알고 있다. 상당히 높은 계약으로 수의계약을 따내기 위해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는데, 교육감은 모르고 계시는지?
조: 아니다. 이것은…
이: 질문 끝난 다음에 답변하라. 교육감은 모르는 것인지 동문서답만 계속한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구매한 것이 결국 독점 규제, 그런데 왜 이것을 입찰 안 하고 수의계약을 했나? 아니 이거, 입찰하도록 돼 있는 것 아닌가?
조: 아니 이 부분은.. 그건 MS하고 한글 워드만 해당되는 거다. MS를 하는 다른 회사가 없지 않나?
이: 글쎄요, 그런 것은 무조건 입찰하도록 돼 있지 않나?
조: MS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이거. 한글 워드하고.
이: 아니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거기하고 수의계약하신 거죠! 입찰을 하도록 돼 있는데!
조: 아니, 모든 학교에서 MS를 사용하도록 돼 있잖습니까?
이: 아니. 모든 학교 얘기 하지 말고. 교육청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모든 학교를 자꾸만 핑계를 대세요!
조: 아니 MS오피스를 어디서 팝니까?
이: 아니. 그렇지 않다니까요!
조: MS 회사 외에 살 데가 없잖습니까?
이: 이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사법 기관에 고발돼야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가지 쟁점 총정리
읽어도 무슨 소리가 오가는지 모를 정도로 헛소리의 향연이다. 이은재 의원은 MS오피스인지 한글과 컴퓨터의 한글인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고 어물쩡 한데 묶어 질의하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은재 의원이 지적하는 소프트웨어를 MS오피스로 알아듣고 답변하는 중이다. 따라서 사건의 쟁점은 다음 4가지다.
1) 서울시교육청은 MS와 직접 MS오피스 구입을 독점계약 한 건가?
2) 각 학교가 따로 사게 놔두지 않고, 왜 교육청이 직접 구입했나?
3) 이은재 의원의 의견처럼 결과적으로 문제 있는 계약 아닌가?
4) 그러나 만약 이은재 의원의 질의가 사실이 아니라면 이은재 의원은 대관절 무슨 소릴 하는 것인가?
이쯤 되시겠다.
1. 먼저, 서울시 교육청에 직접 알아본 결과 이은재 의원이 사실관계를 대단히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올해 상반기 나라장터를 통해 MS오피스 구입 입찰을 공고했다. 총 네 군데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고,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한 개 업체(필라테크)와 47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올해 3월29일의 일이다. MS와 직접 계약한것도 아니고, 총 네 개의 국내 유통업체 중 가장 낮은 금액을 쓴 업체와 물품구입을 완료한 것이다. 나라장터에 입찰 결과가 등록돼 있음은 물론이다.
2. 또,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MS오피스 물품을 교육청이 일괄적으로 구입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공동구매 형식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고, 학교 개별구입 시 소요되는 교직원의 업무량을 경감하는 효과를 보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2015년까지는 각 학교가 별도로 소프트웨어 구입 계약을 했다. 그동안은 학교 담당자가 직접 총판을 찾아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왔다는 뜻이다. 비효율적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같은 구매 절차를 2016년부터 서울시 교육청이 직접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조희연 교육감은 국감장에서 20여억 원 정도의 가격 절감 효과를 봤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3. 따라서 MS오피스 구입 절차는 아무 문제 없는 계약이라는 게 서울시 교육청 담당 주무관의 답변이다.
최대한 좋게 이은재 의원의 말을 해석해보기
4. 자, 그렇다면… 이은재 의원은 과연 국감장에서 무엇을 질문한 것인가. 무엇을 물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교육청에 좀 더 알아보니 이은재 의원이 문제를 삼고자 했던 사안이 무엇인지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이은재 의원 본인의 의도를 왜 내가 분석하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범인은 바로 한글이다. 한글과 컴퓨터의 한컴오피스가 이은재 의원이 거론한 주인공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국내 유통업체 1곳과 한컴오피스 공급 수의계약을 맺은 바 있다. 경쟁입찰을 통해 유통업체가 선정된 것이 아니라 한 곳과 수의계약을 맺었으니 이은재 의원실 입장에서는 응당 질문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 여겼으리라. 그것이 정작 국감장 내부에서는 엉뚱한 MS오피스 발언으로 논지가 흐려졌던 것은 아닐까.
여하간, 한컴오피스는 왜 업체 한 곳과 수의계약으로 공급됐을까. 다음은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답변이다.
“한글(한컴오피스)은 서울에서 유통하는 업체가 한 곳이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 입찰을 했는데 모두 유찰되고, 그 후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건입니다.”
두 차례나 유찰된 이유 역시 나라장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곳만 응찰했기 때문에 유찰된 것이다.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업체가 수의계약을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실제 이은재 의원이 무엇을 혼동했는지는 취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이은재 의원의 이른바 “MS 단독 입찰 불법! 조희연 사퇴!” 발언은 한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체의 수의계약과 혼동해 나온 것은 아닐까? 위 두 사람의 대화에서도 MS오피스와 한글이 계속 병행돼 나오는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이은재 의원실의 보좌관은 한글 소프트웨어의 수의계약 건을 질문하라며 자료를 만들어 줬겠지만, 정작 국감장 현장에서 의원 본인이 질문을 제대로 못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기관의 잘못된 행정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는 국감장에서 볼 만한 아름다운 장면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은 국감의 본질이 아니라 ‘조희연 까기’에 집중한 한 의원이 벌인 촌극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