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소타입(ISOTYPE)은 ‘국제 그림글자 교육기구(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의 약어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간략화된 그림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이며 교육자로서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장이던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 박사가 1925년 시각교육 연구소를 설립해 만들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시각언어, 아이소타입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아이소타입의 탄생
아이소타입의 탄생은 두 가지 역사적 전통에서 비춰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통계 그래픽의 역사, 또 하나는 인류가 교육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그림, 다이어그램, 지도 등 시각적 수단을 통해 정보를 소통한 전통입니다.
전통 1. 통계 그래픽의 역사
통계자료를 그래픽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18세기 윌리엄 플레이페어(William Playfair)가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인쇄기술의 발전으로 독자 대중에게 오락과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해 통계 그래픽이 광범위하게 출현함으로써 그래픽 기법이 개발되었습니다. 까다로운 수량 정보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통계 그래픽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도표도 대중의 이해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수량 정보를 담았지만 다이어그램이라기보다는 삽화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반면 오토 노이라트는 수량 정보를 담고 있으면서도 기하학적인 특성을 가진 그래픽을 개발했습니다.
전통 2. 시각적 수단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기
노이라트의 아이소타입은 특유의 절제되고 단순한 표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시각적 수단을 통해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공통된 정보를 주기 위해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편한 형태가 필요했습니다.
이집트 상형문자를 보면 평면의 기하학적 특성을 가진 그림을 이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일정한 양식을 이용해 내용을 표현합니다. 여기에서도 아이소타입의 ‘양식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소타입의 규칙
아이소타입은 초창기부터 규칙 또는 원리를 고수했습니다. 몇 가지 예시를 통해 아이소타입의 규칙을 소개합니다.
1. 수량정보를 보여줄 때 기호 하나는 정해진 수량을 제시하고, 더 많은 수량은 기호를 반복함으로써 보여준다.
2. 정말로 알 필요가 있는 것만 선별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는다.
3. 색과 기호의 모양 요소 배치 등 세부적인 부분의 규칙을 제시한다.
4. 사람들이 알기 쉽고, 흥미로운 것,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시각화한다.
아이소타입 방식을 이용한 디자인
위와 같은 아이소타입의 규칙은 모든 디자인에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아이소타입은 언어를 초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현대 시각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포머』의 공저자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는 아이소타입을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헤리 백(Harry Beck)이 디자인한 런던 지하철 다이어그램은 지리적 관계보다 연결관계를 보여줍니다. 지하 공간에서는 방향감과 거리감, 속도감을 거의 느낄 수 없으므로 정확한 방향과 거리는 필요한 정보가 아니죠. 그래서 아이소타입처럼 중요 정보를 선별하고 세부 사항을 생략하며 중요한 부분만 선별했습니다.
아이소타입의 목적
우리는 왜 오토 노이라트가 아이소타입을 개발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상이나 질서를 그래픽으로 나타낸다고 해서 주어진 자료를 단순히 시각적 형태로 자동 변환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를 선별하고, 흥미를 유도하고, 전체에서 둘 이상의 부분을 병치해 보는 이에게 자극을 준다는 것이 아이소타입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아이소타입은 정보의 평등한 공유를 촉진하면서 계층 간 문화 통합을 지향합니다. 특정 이념을 위한 설득보다는 현상의 공유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료 자체를 위해서, 혹은 자료를 읽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료가 품은 뜻을 좋은 질서를 통해 보여줍니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사회 문제 자체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만든 아이소타입. 노이라트가 아이소타입을 통해 남긴 유산을 올바르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원문: 슬로워크 / 필자: 김영희
참고
- 마리 노이라트·로빈 킨로스 공저, 『트랜스포머』, 작업실유령
- 함영훈 저,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픽토그램』, 길벗
- 이상하 저, 『상황윤리』, 철학과현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