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대한 근본적 질문
저출산에 대하여 온 나라가 걱정하지만 정작 ‘내가 낳아 키우겠소’ 하고 선뜻 나서는 이는 여전히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현재까지의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출산과 육아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주로 집중되어 있고 저출산 현상의 주요인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아니 건드릴 수가 없다. 그 요인은 바로 한국사회의 가장 성스러운 가치관인 일 이데올로기와 이와 얽혀 있는 가족의 의미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하는 것조차 터부시되는 가치관과 문화적 의미의 체계를 뒤집지 않는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지 않고, 나아가 일과 가족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지 않는다면 저출산이라는 한국사회의 병에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현재 가임 부부들에게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 못지않게 아이를 낳고 키울 시간이다. 통계에 따르면 (‘소득 높은 맞벌이 신혼부부가 아이 덜 낳아’, 중앙일보) 결혼한 지 5년 이하 부부 중에서 소득이 상위 20%인 맞벌이 부부의 자녀 수(0.8명)가 소득이 적은 하위 20% 부부(주로 홀벌이)의 자녀 수(1.1명)보다 적다. 맞벌이 부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다.”, “아이 맡길 곳이 없다.” 이는 달리 얘기하면 소득이 많은 맞벌이 부부들에겐 아이를 키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젖 먹이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고’ 씻기고 얼러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아프면 병원 데려가고 약 먹이고, 때맞춰 예방주사 맞히고… 일일이 나열하면 끝이 없는 이 모든 일, 그리고 학교 들어가면 해야 하는 잡다한 학부모 역할까지 다 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에너지가 필요하고 또 사랑이 필요하다.
육아는 왜 천대받았는가
전통적으로, 아니 현대에 들어와서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기 전까지는 중산층에서 대부분 기혼 여성이 전업주부로서 아이 키우는 일을 전담해왔다. 그러나 여성이 하는 집안일과 육아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주부는 집에서 ‘노는’ 여자였고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이기적인 ‘아줌마’로 천시받았다. 무능한 국회의원들을 조롱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집에 가서 애나 봐라”였다.
반면에 남자가 하는 일은 온갖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았다. 서구 산업사회와 달리 우리 사회에선 회사가 계약사회가 아니라 개인보다 중요한 공동체로 인식되었다. 일단 조직에 속하면 집안일에 매여 있어선 안되며, 어느 정도 개인의 사생활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했다. 회식에 빠지거나 칼퇴근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여겨졌고 야근이나 휴일 근무도 서슴없이 해야 했다.
특히 대기업은 직원들의 헌신을 끌어내기 위하여 회사가 이윤창출보다 국민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인 ‘국민 기업’ 혹은 ‘민족기업’임을 강조하였다. 언론 또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급속히 성장했다’고 칭송했다.
서구산업사회에서 가정이 일터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면, 한국은 산업화과정에서 가족까지 조직사회의 일부가 되어 아내의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일은 남편의 성공을 돕는 “내조”가 되었다. 또한, 집에서도 남편이 사회에 나가 일단 성공하여 집을 대표하는 가장으로서 성공하여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시하였다.
저출산은 이데올로기적 결과다
육아와 일의 이러한 성별 분업체계의 문화는 기혼여성의 사회진출을 어렵게 했다. 여자들은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일에 전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제외되거나 고용되어도 결혼과 더불어 직장을 그만두거나 계속 다닌다 해도 승진에서 많이 차별받았다.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여성 임원이 극히 적은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그런데 이제 여성도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하여 남자처럼 직장 일에 전념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 즉 가족보다 일을 중요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출산과 육아의 기피다.
그렇다면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남녀 모두 일을 덜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다. 가족보다 일을 더 중요시하는 일 이데올로기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그저 양성평등만을 추구한다면, 출산과 육아를 위한 시간은 남지 않는다.
육아 휴직을 확대하고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을 증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가 육아휴직 기간 내에 다 크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집이 회식과 야근이 끝날 때까지 아이를 봐줄 수도 없다.
보육시설이 잘 되어있다는 유럽에서도 대부분 근로자는 5시에 칼퇴근하는 걸로 알고 있다. 많은 상점도 5시면 문 닫는다. 당연히 여성들은 직장에서 비교적 차별받지 않고 일하며 출산율도 우리보다 훨씬 높다. 이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느라 밤샘 근무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집에 가서 애부터 보라고.
원문: 김은희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