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가 “도덕적이지 않고 혐오감과 공격성을 유발하기 때문에” 꼭 끼는 스피도(Speedo) 남성 삼각 수영팬티를 해변에서 착용하는 걸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그런데 실제로 그런 주장이 현재 인터넷상에서 돌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부르키니 논란
하루 전, 프랑스 니스 해변에서 일광욕 중이던 무슬림 여인에게 무장한 경찰 3명이 지자체법령에 의거해 착용하고 있던 ‘부르키니(Burkini, 또는 Burqini)’를 벗을 것을 요구하고 결국 벗겨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현재 유럽에서는 상당한 이슈가 되고 있고, 그 속사정도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프랑스 수상과 교육부 장관이 이 사건에 대해 각기 상반된 입장을 표명하였고,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는 부르키니 금지에 대한 항의로 Beach Party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했다.
부르키니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르카+비키니의 합성어로, 여성의 신체노출을 꺼리는 이슬람 문화권 여성을 위해 제작된 수영복을 가리킨다.
인터넷에서 burkini 를 검색해보면, 별로 낯설게 보이지도 않는데,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여성용 래쉬가드나 서핑복장에 두건형 모자만 씌우면 진짜 부르키니와 별 차이가 없다. 한편으로는 해녀복장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수영복이다.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의 부르키니 금지관련 법령들은 그동안 그다지 진지하게 지켜지지 않는 편이었지만, 지난달 있었던 테러의 영향인지 니스를 비롯한 몇몇 지자체에서는 무장 경관이 해변을 순시하며 부르키니 착용자들을 적발하고 있다고 한다.
인디펜던스지에 기사화된 내용에 따르면, 사건의 당사자는 전직 항공승무원으로, 3대째 프랑스에 살고 있는 프랑스 시민권자였고, 가족과 함께 해변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으나 무장경찰이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의 가족들 앞에서 부르키니를 탈의할 것을 법의 이름으로 강요했다고 한다.
목격자에 따르면 그녀의 어린 딸이 울고 있었고,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프랑스를 자유의 나라, 똘레랑스의 나라라고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쟁점들
부르키니 착용금지에 대한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 위생문제
처음 공공 수영장 등에서의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한 이유 중 하나는 일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르키니의 소재역시 일반적인 수영복 재질과 크게 다를 건 없기 때문에 요즘에는 이 이유는 크게 논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물에 아예 들어가지를 못한다.
- 세속주의에 대한 존중(respecting for secularism)
프랑스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함께, 세속주의에 대한 존중을 중요한 덕목으로 주장한다. 이는, 종교가 정치나 교육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음을 명확하게 밝히며 그에 따라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띄는 모든 것을 금할 수 있다.
명분은 그럴 듯 한데, 문제는 프랑스에서의 세속주의란 서유럽 백인들의 주류문화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서, 무신론자라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이미 자신들의 삶속에 기독교적 문화 및 윤리관이 녹아 있음을 간과한다. 허나, 그 외의 제3세계의 문화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반세속주의 딱지를 붙일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수녀님이 해변에 앉아 계신다면 그 수녀복도 강제로 벗길 것인가 라는 반문이 튀어나온다.
- Good morals
IS, 난민문제, 터키와의 갈등 등,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권 전체가 이슬람 문명권과의 갈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불필요한 공격과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남들과 다른 복장을 함으로써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이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뒤집어 말하자면, 강간을 유발할 수 있는 미니스커트는 금지해야한다는 식의 논리나 마찬가지이고, 니스나 리비에라 해안에는 심지어 누드 비치도 있는 판에 고작 여성의 수영복에 대해 도덕성을 논하는 것은 오버인 셈이다. 바로 100년전까지 여성이 팔을 드러낸 수영복을 입으면 잡혀가던 곳이 프랑스였다는 걸 감안하면 어리둥절할 일.
그러다 보니 부르키니보다 더 공공의 혐오감과 공격성을 불러일으키는 배불뚝이 아저씨들의 삼각수영팬티를 금지하는게 우선이라는 풍자가 나오는 이유.
- 여성에 대한 억압을 막기 위해
그래서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근거는 부르키니가 무슬림 여성에 대한 억압이기 때문에 이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성주의적 근거를 대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부르카로 대표되는 무슬림 여성의 복장은 여성주의의 적이나 다름없다. 이슬람 남성 사회는 히잡이나 부르카 등으로 여성의 복장과 사회생활을 통제하기 때문에 이 주장은 매우 타당하고 올바른 것 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슬람문화권의 여성주의 운동은 이 부르카를 벗도록 하는 것에 아주 큰 공을 들이고 있다.
허나, 부르키니의 탄생을 보자면, 이 주장의 모순점이 드러난다. 부르키니는 호주의 여성사업가 Ahed Zanetti가 비치발리볼팀에 들고 싶은데 마땅한 의복이 없어 고민하던 무슬림 조카딸을 위해 2004년 만든 것이 최초였다. 무슬림 여성복장 자체가 활동적일 수 없는 데다, 수영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무슬림 여성들은 해수욕은커녕, 물에 빠져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 부르키니가 호주의 Surf Lifesaving 행사에서 ‘무슬림 청소년을 위한 수영안전강습’에 첫선을 보인 것 자체가 무슬림 여성인권을 위한 하나의 커다란 상징적 진보가 되었다. 부르키니를 입음으로써, 무슬림 여성들도 세계의 다른 모든이들과 마찬가지로,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수영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번 리우 올림픽 때에서도 비키니를 입은 서양선수들과 동등하게, 이슬람 국가의 여성들도 부르키니를 입고 비치발리볼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이보다 더 나은 무슬림 여성인권 향상의 지표가 있을 수 있을까?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도, 무슬림 여성복장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무슬림 여성 스스로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을 국가나 사회가 ‘선’이라는 명분으로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파시즘이자, 여성에 대한 억압이 된다. 여성주의에 대한 또다른 오해라 할 수 있다. 여성주의의 목표는 여성 스스로 결정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지, 여성에 대한 혜택이나 시혜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부르키니 금지는 페미니즘과는 아무 상관없다.
만약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내의 무슬림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를 원한다면, 그녀들이 자신들의 가족,민족,종교공동체로부터 벗어나 세속화를 선택했을 때 그녀들의 선택이 지켜질 수 있도록 무슬림 남성중심 사회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것이 진짜일 것이다. 부르키니를 벗겨서 그들을 다시 바깥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재밌는 사실들
다행히 현재 프랑스에서도 해당 법령들에 대해 인권문제가 제기되어 그 정당성에 대해 법정에서 가려지게 될 예정이라 한다.
부르키니에 대한 몇가지 재밌는 사실들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Zanetti에 따르면 부르키니 이용자의 40%는 무슬림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유대인과 무슬림 양쪽에서 각각의 전통적,종교적 이유 등으로 부르키니를 애용하고 있다. 한국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피부미용을 위해 부르키니를 착용하는 비무슬림 유명인사들도 있다.
- 호주에서는 해안 인명구조원 중에 이슬람종교를 가진 이들을 위해 공식적인 인명구조원용 부르키니가 채택되어 있다.
- 부르키니는 수영이 가능한 소재이지만, 일반적인 수영복에 쓰이는 네오프렌은 아닌데, 네오프렌은 몸에 너무 꼭 붙어 몸의 윤곽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몸의 윤곽을 가리기 위해 레이어드 스커트나 숄 등이 붙어 있다. 한국 여성들의 해변패션과 매우 유사하다(…)
- 남성용 부르키니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