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이 우연한 기회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스트리밍 방송 BJ들의 쇼에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공중파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방송을 탄다는 생각에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열혈 채팅을 했는데, 센스 넘치는(?) 나의 드립들에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아 큰 상처를 받고 쓸쓸히 채팅방을 퇴장하게 되었다.
나중에 방송에 출연했던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니, 그 BJ들은 아예 한국에 사무실까지 마련해 두고 방송하고 있다. 웹드라마도 찍고 실시간 방송도 진행 중이다.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한국인 게스트도 있는 듯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정하고 방송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조만간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능력도 한계에 부딪치겠다는 예상이었다. 동영상 데이터는 아무래도 텍스트 데이터보다 하드웨어적, 알고리즘적 측면 모두에서 분석의 난이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아니고… 급변한 중국 인터넷 환경 중, 실시간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해보고 싶다.
나름 중국에서 대학까지 유학을 했고 중국 콘텐츠 산업과 관련된 일을 조금 접하다 보니 트렌드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1~2년 정도 관심을 갖지 않았더니 중국의 인터넷 세상은 이제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세상이 되었다. 이미 중국에서는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왕홍”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스타들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실시간”, “인터렉티브” 이런 단어들이 갑작스럽게 산업의 키워드로 부상했다. 어떤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바이두를 통해 자료를 뒤지고, 그중 가장 논리적이었던 글의 일부 내용들을 요약해봤다. 그리고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배경지식들을 함께 소개하도록 하겠다.
갑자기 왜 뜬 거야?
중국의 유명한 실시간 방송 플랫폼이라고 하면 화지아오(花椒), 양커(映客)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대형 IT 서비스 회사들에서도 실시간 방송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고 워낙 큰 시장이라 어느 한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치 과거의 앱 마켓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유행은 어떠한 환경에서 잉태된 것일까? 예전에 특이하다고 느꼈던 2가지 중국 인터넷의 특징이 떠올랐다. 첫 번째는 단마쿠(danmaku; 동영상에 자막 형식으로 댓글을 남겨 소통하는 형태) 사이트에 대한 반응이었다. 중국에만 있는 문화는 아니지만(일본의 니코니코동화에서 시작) 단마쿠를 통해 생전 처음으로 중국 사이트에서 동영상에 덕지덕지 붙은 자막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동영상으로 해적판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긴장하며 봐야 할 내용들을 극 초반에 전부 스포일러 당하는 재앙을 겪게 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애호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런 문화들이 언제부터인가 비주류에서 주류문화로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이다. 소통하기 좋아하는 중국 네티즌들의 소통에 대한 욕구는 이미 danmaku사이트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발견했던 또 한 가지 특징은 저 퀄리티 콘텐츠에 대해 왕민(网民, 중국어로 네티즌을 뜻하는 말)들이 관대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百度)는 기본적으로 구글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네이버처럼 잘 정리된 콘텐츠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또 구글에서 검색할 때처럼 질의문에 맞는 훌륭한 웹페이지를 찾기도 힘들다. 그런데 또 인구수에 비례하여 엄청난 양의 페이지들이 생성된다.
그래서 중국의 네티즌들은 저 퀄리티 콘텐츠에 대해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에게 익숙한 커뮤니티, SNS를 통해서 콘텐츠를 소비하게 된다. 좋은 콘텐츠에 대한 기준은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에서 점점 멀어져 자기에게 익숙한 것으로 편향되어간다.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많은 콘텐츠들이 13억 인구의 엄청난 다양성 덕분에 생명력을 이어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런 중국 인터넷의 특징이 일반적으로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실시간 방송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는데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Hot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여기서는 중국의 36kr 사이트에서 발견한 三节课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为何 “直播”和 “内容”会成为现象级的行业风口?>(왜 실시간 방송과 콘텐츠는 이토록 경쟁이 치열한 산업 현상이 되었나?)를 번역하고 해석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일단 얼마나 핫한지 한번 얘기해보자. papi쟝(papi酱)이라는 왕홍(网红, 중국의 인터넷 스타)이 있다. 최근에 이 계정이 진행하는 실시간 방송의 광고를 공개 경매했는데, 그 가격이 무려 2200만 위안(한화 36억 원 상당)이라고 한다.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쥔이 제품 발표회를 했는데 이를 샤오미의 인터넷 실시간 방송 플랫폼을 통해서 중계를 했다. 앙증맞은 진행으로 시청자들에게서 수많은 별풍선(이해하기 편하게 별풍선이라고 지칭하겠다)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다. 마동(马东)이라는 공중파 MC가 실시간 방송 플랫폼을 통해 진행하는 말하기 수업이 구독료로만 1,000만 위안(한화 15억 상당) 이상을 벌었다고 한다. 돈으로만 놓고 보자면 참 핫해 보인다.
산업적으로 분석을 이어가 보자, BAT라고 하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인터넷으로 통하는 입구를 선점하는 것이다. 검색하면 바이두, 채팅을 하려면 Wechat 또는 QQ, 쇼핑을 하려면 타오바오, 이런 식으로 이런 대기업들이 입구를 선점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어느 날엔가 유저들의 이용행태가 변화해서 이들의 서비스가 더 이상 입구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유저들의 어떤 특별한 행태가 나타나면 이를 자신의 서비스로 가져가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 산업에서 유저들의 파워가 채널의 파워를 대체해 가고 있다. 웨이보, Wechat 모멘트, Wechat 퍼블릭 ID, 쯔후(知乎)같은 SNS 형태의 매체들이 기존의 중앙 집중적인 콘텐츠, 트래픽 배급 방식을 대체하고 있다. 아래 그림의 좌측에서 우측으로 트래픽의 움직임이 바뀌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아무리 잘 만든 동영상이 있어도 요우쿠(优酷) 편집자가 메인 페이지에 실어주지 않으면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실시간 방송의 트래픽은 대부분 SNS 서비스에서 들어온다. 내용상의 창의성과 정확한 구독자 타겟팅만 있으면 채널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SNS상에서 콘텐츠의 생명력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는 BJ들과 인터넷 스타들이 채널로부터 독립해서 생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유저들이 콘텐츠를 찾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포털사이트의 뉴스 섹션이나 검색엔진을 이용했다면 요즘엔 자신이 가입한 SNS 서비스에서 먼저 콘텐츠를 검색한다. 결론적으로 유저를 흡수할 수 있는 실시간 방송과 콘텐츠들이 위에서 말한 인터넷으로 통하는 입구가 되고 있다. 반면 SEO, 광고 등은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실시간 방송과 콘텐츠의 힘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어떤 BJ가 추천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구매자들은 내가 신뢰하는 BJ가 추천한다면 나는 무조건 산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에서의 분위기가 구매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구매자들은 내가 좋아하는 BJ가 방송에서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는 무조건 산다는 태도를 보인다.
실제로 인기 BJ들은 이런 식으로 엄청나게 물건을 팔아치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파는 지식상품(예를 들어 강의)에 까지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콘텐츠 생산자들이 트래픽을 기반으로 해서 광고를 붙여서 자신의 노력을 수익으로 전환했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부터 이 글의 핵심이다. 전통적 인터넷 기업들의 인터넷으로 통하는 입구 역할은 약화되고 있다. 그리고 실시간 방송과 콘텐츠가 새로운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콘텐츠 자체를 소비하고 판매하는 것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그래서 모든 기업들이 새로운 입구를 선점하기 위해 뛰어들고 있다.
콘텐츠를 통해서 유저를 끌어들이고 실시간 방송을 통해서 트래픽을 빠르게 수익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이 미래 인터넷 서비스의 새로운 수익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기업들은 콘텐츠를 선점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실시간 인터넷 방송 플랫폼은 이렇게 Hot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중국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던 필자의 친구가 방송의 재미에 빠졌나 보다. 시도 때도 없이 페리스코프를 켜고 카메라 빨을 받고 있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방송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 방송의 매력이라는 것을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져서 더 큰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중국을 네티즌들을 상대로 한 콘텐츠를 한번 만들어봐야 되지 않나 싶다.
원문: 권혁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