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신문을 만드는 ‘출근파업’을 선택한 이유
기자들이 유일하게 쉬는 지난 주 토요일 오후, 한국일보 기자 120여명이 들어가 있는 카카오톡 그룹방에서 ‘까똑’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토요일 당직으로 회사에 출근했던 선배가 ‘편집국에 용역이 들어와서 기자들을 몰아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까만 양복입은 덩치 큰 사람들. 취재현장과 기사에서만 접한 ‘용역’들이 편집국 입구를 막은 사진들이 카톡 방에 등장했고 노조는 비상 소집을 알렸다. 애인과 데이트 갔던 후배부터 저녁 찬거리 사던 선배까지 슬리퍼 바람으로 회사로 모였다.
참 드물게도 큰 사건 없었던 일요일 저녁 뉴스 메인과 포털 핫 이슈를 차지했던 ‘언론사 초유의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의 당일 풍경이었다.
지난 4월 29일, 한국일보 노조가 장재구 회장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직후 회장에 비판적이었던 부장들과 국장을 날려버리는 보복 인사가 강행됐다. 여기서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 대부분이 가입한 노조는 전체 총회를 통해 사상 초유의 결정을 했다. 회사의 인사를 거부하고 원래 체제대로 지면 제작을 하겠다는 것. 편집부는 기존 데스크들이 승인한 기사만을 가지고 지면을 짜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신문이 나왔다.
기업의 사주가 결정한 인사를 종업원이 무시하고 지들 하던대로 제품을 생산한다? 아예 생산라인을 세운다면 몰라도 종업원 뜻대로 생산라인을 가동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노동자 투쟁방식은 ‘파업’이다. 물론 제작거부, 파업으로 돌입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인사거부와 지면 제작을 택한 논리는 아주 단순했다. ‘신문은 회장이 아니라 기자가 만든다’. 한국일보의 사주는 장재구지만 편집방향을 결정하고 기사를 써서 한국일보의 이름을 지켜내고 있는 것은 기자들이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이 소비자에게 양질의 상품을 내 놓기 위해서는 상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가 신문 제작을 사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투쟁과 제작을 병행하는 ‘빡센’ 날들이 시작됐다. 5월 초에는 매일 있었던 11시 오전 총회, 7시 30분 저녁 총회는 월요일과 목요일로 고정되며 일상에 흡수됐고 이따금 검찰청 앞에서 회장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 등 이벤트 발생시마다 장소와 시간이 바뀌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부장부터 막내기자까지 맛없는 술집에 몰려가 술을 마셨다.
극단을 지양한 한국일보 기자, 극단을 선택한 사주
물론 매번 신문이 온전히 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측이 단독 기사를 몰래 빼버려 한바탕 편집국이 뒤집어지기도 했고 미스코리아 대회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날에 미스코리아 당선자 기사를 쓰는 등 불가피한 타협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는 이 순간에도 신문제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팩트 앞에서, 회사측은 연일 악수를 뒀다. 처음에는 인사거부한 부장들의 기사 전송 프로그램의 아이디를 빼앗더니, 한 달 반이 지나자 전 기자들을 ‘퇴사자’ 처리해 기사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 전향서나 다름없는 ‘근로제공 확약서’를 써야 기사를 쓸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회사측은 기자가 아닌 자신들이 생산의 주체라 주장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쫓겨난 토요일 이후 상황보다 5월 2일부터 44일동안 지면을 제작하며 싸워 왔다는 것이 스스로 더 놀랍고 자랑스럽다.
한국일보의 싸움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웠던 작년의 언론사 투쟁과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많은 언론이 인사 불복종 사태로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지만 본질은 200억+알파를 배임한 혐의의 비리 사주가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한 싸움이다. ‘혐의 입증이 확실해 압수수색도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검찰쪽에서 나올 정도로 절차상 제대로 진행되면 결국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흥분할 필요가 없었다.
노조는 그동안 고발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 오면서 한편으로는 장 회장이 회사를 매각하고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한국일보 노조는 타사 노조들에게 ‘선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해 왔다. 이런 극단을 지양하고 끝까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는 노조의 태도는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한국일보의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한국일보 기자로 가지는 자부심, 그리고 아쉬움
한국일보는 사실 언론사 지망생들에게 처음부터 눈에 띄는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조선일보나 한겨레처럼 진영이 확실한 것도 아니고 ‘재정 상황 안 좋다’는 이야기를 10년 동안 들어올 정도로 돈을 많이 버는 곳도 아니다.
나 같은 경우엔 한국일보에 대해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축에 들었다.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다보니 한국일보 공채가 떴고 공부하면서 흥분하지 않으면서 깊이있는 몇몇 기사가 맘에 든 정도였다. 어쩌다 보니 입사했고 선후배들과 부대껴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그리고 더 괜찮아질 수 있는 회사라는걸 느꼈다.
가장 깊게 받은 인상은 한국일보의 중도지향이란 양쪽 의견의 절충안이란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마다 칼날같이 시시비비를 들이대는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념적 지향에 따라 결론에 꼭지점을 찍어놓고 직선을 잇는 것이 아니라 팩트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현장기자의 판단을 데스크가 신뢰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었고 현장의 기자들은 데스크에게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더욱 아프다. 참고 참다가 결국 안되겠다, 하고 사측과 각을 세웠지만 그래도 지면을 제작하겠다고 남은 데스크들은 주 6일 근무와 야근을, 기자들은 취재처와 편집국을 오가며 한 달 반 동안 붙잡고 있었던 지면이었다. 이른바 ‘짝퉁 한국일보’가 나온 월요일 오전, 한진빌딩 로비 1층에 모여 결국 우리 손을 떠나고 파행으로 제작된 신문을 보는 심정은 참담했다.
다른 신문에 보도된 한국일보 사태 기사를 찾다 같은 취재처 발 타사 기사가 쓴 기사를 읽으며 “이 기사 더 잘 쓸 수 있었는데”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들은 더욱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해야 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도록, 그래서 ‘납득할만한’ 결론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계속해서 한국일보 상황을 알고 싶은 분은 한국일보 비상대책위 블로그와 트위터를 찾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