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평 : 마냥 좋아만 하고 있을 때가 전혀 아니다.
사족평 : 황무지(호남) 개간한 파이오니아 정치인이 당대표가 된 것이다.
키워드 1. 조경태
내가 지난 4.13 총선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조경태 의원이 지역구를 잘 닦아 놓았던 것이다. (주: 글쓴이 오창석은 지난 총선에서 더민주 사하을 후보로 나서 새누리 조경태 후보와 경쟁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잘 닦아 놓았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쉽게 말하면 유대관계고, 인간관계다. 더 쉽게 말하면 ‘사교성’이다.
조경태 의원은 늘 자신보다 나이 많으면 형님, 누나였고, 모든 어르신들을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하며 친밀감을 유지했다. 오죽하면 할머니가 민원을 넣어도 그 다음날 서울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이야기마저 돌았다.
실상 국회의원이 지역구 할머니 개인, 단 1명의 민원을 듣고 처리하기엔 무리가 있다. 사하(을) 유권자만 16만 9천명이다. 결국 그 소문은 일정한 사례를 가지고 주변 참모나 자기 사람들을 통해 퍼뜨리거나, 또는 겸사 겸사 내려온 일에 대해 당위성과 정당성을 받는 작업이었다. 나쁘다고 볼 게 전혀 없고, 오히려 정치인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널리 널리 알리는 것이 좋으니 이 작업을 잘하는 것이 지역구를 잘 닦아 놓는다는 표현에 부합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역의 민원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하구는 부산 동서 불균형의 피해지역으로 경제적으로 많이 낙후되었다. 발전이 되지 않았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먹고사는 문제였고, 어떠한 정책적 접근과 국가 중대사를 논함보다는 내 눈앞에 열심히 뛰는 사람과 실질적인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조경태 의원은 충분히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었다. 2번 떨어지고, 3번 당선, 그리고 이번에 내 덕분에… 또는 나 때문에… 4선을 했으니 적어도 그 지역에서만 20년 이상 있어왔다. 그러면 유권자의 눈 앞에 보이는 실질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지하철이다. 부산도 이미 4호선이나 깔렸지만, 동서 격차로 사하(을)지역에는 지하철이 없었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이 용단을 내려 조경태의원과 영남지역 후보자들, 나아가 국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사하 지역에 지하철이 추진된 것이었다. 하지만, 추진과 과정은 모두 조경태 의원이 당선되고 나서 시작된 것이니, 실제 지역 주민들에게 ‘그거 조경태 의원이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해준 것입니다.’라고 백날 떠들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조경태 의원은 사하을 지역에서 박근혜가 와도 쉽게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또한 조경태 의원이 당선되고 나서 지하철이 생긴 건 어느 정도 보은의 성격도 있다. 만약 조경태 의원이 떨어졌다면 약 1조원에 달하는 큰 공사의 논의자체도 힘들었을 테니, 냉정하게 조경태 의원의 공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냥 우리는 그가 미울뿐이다. 여기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키워드 2. 이정현
돌아와서 영남에 조경태가 있다면, 호남엔 이정현이 있다.
이정현은 곡성출신(왠지 모를 공포감은 무엇일까…나홍진…) 호남인이지만, 1985년 민주정의당에 입당했다. 후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제1회 지방선거에 광주광역시의원으로 출마했지만 10%(2위)를 득표하고 낙선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17대 총선에 첫 출마했고, 한나라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 을에서 1%(5위)를 받고 낙선했다.
그 후, 제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여 소위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었고, 18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22번)로 국회 첫 입성,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 다시 출마했다. 물론 또 낙선했지만, 39.7%(2위)라는 의미 있는 득표를 기록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첫 지역구 당선을 이뤄냈다. 득표율은 49.4%로 거의 과반에 육박했다. 최근 20대 총선에서는 44.5%로 지역구 재선, 총 국회의원 3선을 이뤄냈다.
딱 선거의 결과로만 보면, 대단한 여정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를 달고 호남에서만 도전을 거듭했고, 지방선거를 포함해 총 3번의 낙선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역구 재선이니 이 사람도 자기 고향 호남을 적어도 20년 이상 누빈 것이다.
여기에 일화를 보태보자. 국회의원 신분으로 호남고속선 건설 예산 500억 삭감을 막으면서 ‘호남 예산 지킴이’로서의 인지도도 쌓아두었다. 혼자 막았든 막지 않았든, 위의 조경태 의원 지하철 사례와 같이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의 신분으로 호남에서. 당연히 지역 주민들이 당은 싫어도 사람은 좋다는 이야기를 낼 수 밖에.
또 하나. 내가 들은 이야기는 평소 지역구를 누비며, 같이 밭매고, 논 농사하고 일하고 마을회관에서 막걸리 같이 마시고 잠자며, 다음날 일어나서 어른들 모시고 목욕탕 가서 등 밀어 주고, 해장국까지 드시게 한 후에 어른들을 댁으로 모셔다 드린단다. 평.소.에.
그러면 아무리 정당이 싫어도 눈 앞에서 이쁜 짓하는 사람 이정현을 싫어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싫어하기 어렵지 않을까? 당선되는 이유가 명확히 있는 것이다.
대안방송에서 터뜨린 이정현 녹취록? SNS, 뭐 그런 것들? 안타깝게도 순천의 김광진 의원의 필리버스터 열풍에서도 노관규 당시 예비후보에게 진 것은 마치 사하을처럼 순천이라는 지역적 특색이 가미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조경태 의원처럼 국회의원은 지역구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고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크기 때문에 지역구를 벗어난 행동들이 미워보일 수는 있지만(또는 나빠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SNS가 아닌 종편이 있지 않은가? 또한 예산 폭탄론도 있지 않았던가?
키워드 3. 친밀감, 사교성, 현지화
탁월한 사교성과 친밀감, 그리고 3번 떨어지면서도 집착스럽게 도전한 그가 당대표가 됐다. 친박만을 밀고 어쩌고 저쩌고 도로 새누리당, 도로 친박당 된다는 것이, 과연 진짜 우리 더불어민주당에게 유리할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보다 위험한, 여기서 말하는 위험이란 정권교체에 큰 걸림돌이 될 만큼 역할수행을 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선거내내 거의 비슷한 농촌 옷차림을 유지했는데, 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일반 농민과 지역주민에게 어필한 것이다. 즉, 자기 마케팅에도 능하다는 것이다.
키워드 4. 두터운 넉살과 입이 찔어질 듯한 웃음
조경태 의원을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웃음 코칭을 받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에 뛰어난 표정을 가지고 있다. 분명히 거울 보고 연습을 했거나 오랜 시간 단련한 결과다. 가끔 무표정이다가도 악수할 때만 되면, 콧잔등이 살짝 올라가면서 입술이 양옆으로 크게 갈라지면서 일관된 웃는 표정이 연출된다. 긴 시간 여러번 관찰했는데 이건 마치 반사신경처럼 체화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정현 의원도 언론 노출된 사진을 보면,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냥 헤벌쭉 바보 같이 웃는 것이 아니다. 웃는 표정이 재수없다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저렇게 ‘똑같은’표정으로 웃지? 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조경태 의원처럼 ‘체화’된 결과라 보여진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한, 무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거기다 호남에서 무수히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버텨낸 넉살과 멘탈은 대선 때, 승리를 위해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무슨, 친박이 당대표가 되어서 박근혜 대통령 말만 듣고 자기 맘대로 해서 대선 개판칠 것이라는 쉬운 예단들을 한다. 일반적 다수당과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그걸 맹목적 충성만 하다가 당대표가 대선을 그르친다? 어불성설이다. 그러면 자기 정치 생명도 끝이다.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리가 없다.
키워드 5. 여기에 낡은 지역 논리가 여전히 먹힌다면…
새누리당의 ‘호남’ 당대표,
여기에 ‘영남’이나 ‘충청’ 대선 후보,
대통령의 TK 절대적 지지라면
나는 여전히 새누리당이 재집권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가정을 크게 열어두고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줄평 : 마냥 좋아만 하고 있을 때가 전혀 아니다.
사족평 : 황무지(호남) 개간한 파이오니아 정치인이 당대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