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올렸던 포스팅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한국 여성들이 의지력과 능력 부족으로 연봉이 높은 STEM 일자리에 가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 실제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년간 2% 포인트 남짓 STEM 부문의 여성 비율이 올라가는 데 그쳤다.
- 그렇다면 한국 여성은 의지 부족에 또 무능력자인가?
- 그렇게 결론 내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 여성은 수학을 못 한다는 편견 속에 STEM 부문 여성의 취업은 어려우며,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으로 STEM 부문을 회피하는 사회적 선택이 벌어질 수 있다.
- 한국 여학생의 PISA(OECD에서 진행하는 국제 학력평가시험) 수학 점수는 남녀학생 포함 세계 3위이며, 2위인 일본 남학생과의 점수 차이는 고작 0.9점에 불과하다.
- 결국, 한국 여성들은 세계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수학을 잘하지만, 시스템 속에서 차별받고 있다.
이 이야기에 대해, 여러 반응이 나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반응은 “‘메갈’ 나빠요! 그리고 ‘메갈’ 지지하는 당신도 나빠!”였습니다. ㅎㅎ
아무튼, 이런 초딩스러운 반응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 여성이 정말 차별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일부 댓글에서 한국 여성들은 차별받기는 커녕 ‘여자라는 이유로 특권을 누린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통계로 살펴보는 여성의 삶
통계에 사용된 자료는 한국 통계청에서 작성한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입니다. 제일 먼저 한국 여성의 고용률과 실업률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래의 ‘그림’에 잘 나타난 것처럼,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49.9%로 남성에 비해 21.2% 포인트나 차이가 납니다.
어마어마한 차이지만, 2000년의 23.7%포인트에 비해 그래도 2.5% 포인트나 줄었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왜 요즘 여성차별 문제가 이슈가 되는가? 예전에는 남녀차별 문제가 더 심하지 않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여성들이 무시할만한 마이너였지만, 이제는 위협적인 소수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전 프랑스 사는 친구에게 물었죠. “거기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지 않아?” 친구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워낙 쪽수가 적어서 아예 신경도 안 써. 대신 전체 인구 10% 넘어선 무슬림에 대해서는 아주 난리도 아니야.”
친구의 이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남녀차별은 훨씬 심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여성이 워낙 소수였고 또 더 나아가 위협이 되는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학력도 낮고 또 조직되지도 않았죠. 더 나아가 결혼하면 바로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시되었으니 경쟁상대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아주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꾸준히 남녀 고용률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위협’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이 다를 뿐이죠. 그리고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 조직화되고 있다는 게 점점 더 신경을 건드리는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전과 달리 훨씬 교육을 잘 받은, 그리고 남녀평등에 대한 신념을 지닌 신여성의 출현에 대한 좋은 글 한 편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현재 30대 여성들은 어떻게 보면 이전의 한국 여성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이단아’들이며, 이들 덕분에 이렇게라도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한 통계가 의미하는 것
기초 정보는 이 정도로 마치고,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래의 통계는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인데, 아주 심각한 상황입니다. 25~29세에 68.6%까지 상승했던 여성의 고용률이 35~39세에는 54.1%로 떨어집니다. 전형적인 M자형 경제활동 참가율에 변화가 없습니다. 이는 미혼 시절 직장에 취직한 후, 결혼 후에 회사를 떠나는 유구한 전통이 아직도 지속되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여기에도 변화의 징후는 확연합니다.
1. 25~29세 여성 고용률이 2000년 53.7%에서 2015년 68.6%로 무려 14.9% 포인트나 상승했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절반 남짓한 20대 후반 여성이 직장을 잡은 반면, 이제는 거의 2/3 이상의 20대 후반 여성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결혼이 늦어진 탓도 있습니다. 최근 초혼 연령이 사상 처음으로 30대에 도달한 것이 영향을 미쳤겠죠. 그리고 이런 만혼 경향은 점점 더 한국 여성이 자신의 직장 커리어에 신경을 쓴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2. 35~39세 가임연령 고용률은 2000년 57.7%에 비해 2015년 54.1%로 오히려 더 떨어졌습니다.
결혼을 늦게 한 탓이 아마 제일 클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 생활 시작 후 10년 차, 가장 커리어에서 중요한 시기에 고용율이 이렇게 낮다는 것은 결국 여성의 소득증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앞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성의 고용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M자형 고용률 곡선에는 변화가 없다.
- 경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는 35~39세 연령대의 고용률은 15년 전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이 결과, 아래와 같은 임금 수준을 형성하게 됩니다. 한국 여성의 (남성대비) 임금 수준은 2012년 64.4%를 고비로 다시 하락하기 시작해, 2015년에는 62.8%까지 후퇴했습니다. 불황에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여성들이니까요.
아무튼 M자형 고용률 곡선이 남녀 임금 격차의 가장 최대의 원인이라는 게 점점 분명해지는 듯합니다. 다시 말해 정규직으로 취업했던 미혼여성이 출산/육아 후 다시 취직할 때에는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향이 높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한국경제 전체에 심각한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그 부분을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남녀임금 격차 혹은 남녀고용률 격차 문제가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은 각 가정의 교육투자를 헛수고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그림’은 남학생과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을 보여주는데, 여성이 2009년부터 대학진학률에서 역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4년제 대학 진학률 면에서 보면, 2015년 현재 여학생이 48.8% 남학생이 44.8%로 무려 4% 포인트나 차이 납니다.
즉, 각 가정에서는 공부 잘하는 딸에게 많은 교육투자를 했지만, 이 딸은 높은 확률로 비정규직이 되거나 혹은 결혼 후 퇴사하는 신분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굉장한 손실이죠. 각 가정은 쓸데없이 교육투자를 한 꼴이 되어, 심각한 노후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각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즉 교육을 잘 받은(=높은 확률로 생산성이 높은) 사회 집단이 오히려 고용률이 낮고 임금도 낮으니까 말입니다. 이는 새로운 교육투자의 인센티브를 꺾는 것은 물론, 사회적으로 매우 큰 비효율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출산율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결혼을 아예 기피하는 ‘고학력’ 여성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 결혼했더라도 출산을 회피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일테니까요. 최근 한국 정부의 출산율 제고 정책이 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는 대목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봉착한 여학생들의 선택은 매우 명확합니다.
예, 맞습니다. 남녀 차별이 없는 곳으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첫 번째 표는 ‘여성 교사의 비율’을 보여주며, 아래의 두 번째 표는 ‘공무원 시험에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표는 ‘여성 법조인의 비율’인데, 역시 예외가 없습니다. 마지막 표는 의료분야의 여성 비율인데, 역시나 예외 없이 가파르게 상승 중입니다.
전체 교사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59.3%를 기록한 것은 그러려니 했는데, 5급 공채 공무원 시험(=행정고시)에서 여성의 비율이 48.2%에 이른 것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특히 대표적인 남초 직업군이었던 법조계에서도 여성 비율이 22.9%까지 상승했고, 특히 판사 중의 비율은 27.4%를 기록했군요.
이상과 같은 여성의 약진은 남성들에게 큰 위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왜 요즘 남녀차별이 이슈가 되는지, 그 이유가 이런데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 같아도 딸 낳았으면 교직이나 공무원 그리고 의료계로 진출하라고 독려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 한국에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어 통계청의 자료를 살펴보았다.
- 2015년, 여성의 고용률과 남성의 고용률은 20% 남짓 벌어져 있다.
- 그런데 수능성적은 여성이 더 높으며, 4년제 대학진학률도 여성이 4% 포인트 이상 높다.
- 특히 여성의 35~39세 고용률은 2000년보다 오히려 떨어졌다.
- 이 결과 여성과 남성 간 임금 격차는 2012년을 고비로 다시 악화되고 있다.
- 불황에 약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시사한다.
- 이상과 같은 현실 속에서 여성들은 교직/의료계/법조계/공공기관 등에 집중하고 있다.
- 교직에 이어 법조계와 공공기관도 곧 여성이 우위에 설 것이다.
- 앞으로도 여성에 대한 젊은 남성의 혐오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유력한 경쟁자이니까.
뭐, 이 밖에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폭력에 노출된 빈도 등 수 많은 데이터가 있지만 이미 더 잘 다룬 글이 있기에 저는 그만하겠습니다.
아무튼, 젊은 남성의 여성 혐오는 어떤 면에서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일단 경쟁이 훨씬 심해졌고, 특히 한정된 좋은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욱 심할 테니까요. 그리고 예전에는 그 경쟁에 뛰어든 여성의 숫자도 얼마 안 되어 배제하기 쉬웠는데, 이제는 숫자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니까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혐오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재의 취업난을 만든 주된 원인에 포커스를 맞춰야죠. 현재 젊은 층 취업난의 최대 원인은 불황이며, 그다음이 노동시장 분단 문제, 마지막으로 대학의 잘못된 전공 공급 때문입니다. 이 셋은 모두 해결책이 있습니다.
- 정책당국의 경기부양. 특히 신규 고용에 대한 인센티브(법인세 공제 등) 정책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 정규직 남성 근로자 위주의 고임금 시스템을 어떻게든 바꾸는 것입니다. 대신 해고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의 보강도 필요하겠죠.
- 대학 구조조정입니다. 공급과잉인 사회과학/교육 관련 전공의 정원을 축소하는 한편, 공급부족 상황에 처해 있는 공학/의료 정원을 늘리는 것입니다.
셋 다 어마어마한 저항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 갈등이 심화되고 젊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증오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고로 두 번째 정규직 남성 근로자 위주의 고임금 시스템이 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느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원문 :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