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실업계 안 나온 사람은 잘 못 느끼겠지만, “가난해서 혹은 철이 없어서 어린 나이에 ‘고졸 직장인’이 됐던 사람들이 못 배운 한을 풀려고 하는데 학벌주의가 그들을 차별하네 어쩌네” 이런 얘기 보면서 드는 기분 딱 하나다. 조까라 마이싱ㅗ^_^ㅗ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들어주셨던 분들 제외)
다들 이대가 어쩌고 운동권 배척이 어쩌고 학벌주의가 어쩌고 난리인데, 당신들 멋대로 고졸 직장인들과 실업계가 학력의 마지막인 사람들을 윤리적 방패로 쓰지 말아라. 꼭 가난해서 실업계 간 것도 아니고 철이 없던 것만도 아니고, 못 배운 한 같은 것도 없다.
아마 입사 후 직장 내 차별에는 한이 좀 맺혔을 수도 있겠다. 굳이 4년제 대학 졸업장을 쥐려고 하는 건 대부분 그래서다. 당신들 생각보다 공부에 뜻을 둔 사람 전체 인구 대비 그렇게 많지 않다. 꼭 공부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생각 자체가 굉장히 사농공상으로 느껴진다.
고졸 직장인에게 ‘웰니스’를 가르치겠다는 생각
게다가 직장 다녀보면 알겠지만, 시간 쪼개서 새로 공부 시작하는 거 귀찮고 힘들다. 굳이 그럴 필요성도 많이 못 느낀다. 정말 공부에 강력한 의지와 의욕이 있지 않고서야.
그러니 생각을 좀 해 보란 말이다. 여기가 북유럽도 아니고 6시 칼퇴근은 커녕 8시에 퇴근하면 다행인 노동환경에서 내가 그렇게 간절히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웰니스학과’에 들어가고 싶겠나? 130학점이 뭐가 어쩌고 어째? 당신은 남들 다 가니까 대학 갔는데 인문학 사회과학하고 고졸은 ‘공부에 한이 맺혀서’ 하는 게 웰니스냐? 고졸은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철학 불문학이 머리에 없는 줄 아나?
그럼 차별은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멸시란 게 이렇다. 잘 티가 안 난다. (누가 봐도 멸시인 건 그냥 모욕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당신네들은 ‘위해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면면히 뜯어보면 어쨌든 당신네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거다. 중졸이 됐든 고졸이 됐든 직장을 몇 년을 다녔든 ‘간절하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네일아트를 못 배워서 한이 맺혔어요. 뷰티산업을 더 배우기 위해 청춘을 바쳐 돈을 모았어요(눈물)’ 이러지 않는단 말이다.
네일아트를 대학에서 130학점 들여 배우는 방식이라니 오버가 심하다. 단 한 번도 수요자에게 물어보지 않았단 얘기다. 이 많은 논란 중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네.
제발 물어봐라. 당사자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그걸 배우려고 비싼 돈 내고 학생부 따져서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에 개설해주시는 은혜를 베푸시고, ‘대학’에서 배우는 게 ‘공평’한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차별주의자다. 다른 교육기관을 대학 아래에, 고졸자나 다른 교육기관 수료자를 대졸자 아래에 놓고 있는 거다. 대학엔 그냥 대학의 역할이 있다. 불의 역할이 있고 물의 기능이 있듯이. 각 교육기관의 위상을 같이 존중해줘야지 대학을 특별하게 여기지 말란 이야기다.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네일아트를 배우고 싶으면 한을 품을 필요 없이 좋은 학원 수소문해서 배우면 된다. 차라리 더 좋은 학원 만들어달라고 주장해라. 평등한 사회는 ‘학원이라니, 대학에서도!’가 아니라 직업인을 존중해줄 때 이뤄진다. 저학력 멸시자들은 그 멸시를 무기 삼은 이대 멸시를 그만두라.
몇 번 얘기했는데, 그렇게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싶다면 학부 순혈주의나 좀 어떻게 해달라. 네일아트를 하다 보면 미대가 가고 싶을 수 있고, 산업디자인으로 관심이 튈 수도 있고, 손을 보다 보니 의학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고, 네일아트숍을 경영하다 경영이나 경제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정교한 대학원 설계를 해달라. 박사는 아니어도 좋으니 (영국과 비슷한 느낌의) 수업석사 과정을, 실무경력자에게 적절한 준비 기간을 거쳐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설계해달라. 그리고 그런 석사는 사회에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해달라.
이렇게 빤한 ‘진정한 해결책’이 있는데 생각 한번 깊이 안 해보고 멸시자들이 무지로부터 비롯된 위선을 부리며 그 위선으로 이대 학생들을 깔아보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세상 참 더럽다 싶고 기분도 더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