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어떤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아주 신성화되어 불가침한 무엇이라는 점이다. 메갈리아라는 세력이 등장해 페미니즘의 이름을 참칭하며 욕보이는 불경한 짓을 그들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저 말을 하는 사람만큼 페미니즘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또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설에 따르면 사실 페미니스트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당최 그 페미니즘이란 게 뭔가. 상식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최저선이 있다. 여성 인권을 향상시켜 성평등을 이루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라는 점이다. 그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라면 세상에 페미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적어도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야 한다. 이것조차 동의를 못 한다면 엉뚱한 것을 페미니즘으로 오해하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은 ‘착하고 신성한’ 무엇이 아니다. 때로는 나쁠 수도 있고 대체로 불경한 무엇이다. 사실 불경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의 불평등한 상황을 평등하게 하자는 어떤 운동이나 학문이 신성할 리가 없다. ‘신성한 운동’은 옳음을 되찾거나 확산시키는 것이지만 ‘불경한 운동’은 옳음을 창조하여 확산시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신성한 것, 또는 착한 것이라는 믿음은 대체로 상상된 것이며 오해된 것이다.
그 언어가 무엇이든, 그들은 ‘여성 인권’을 지향한다
이러한 편견 내지 압박은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들에도 곧잘 가해진다. 가령 착한 유가족이기를 요구받은 세월호 유가족이 그렇지 않은가? 순수한 시위대이기를 요구받은 성주군민이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그것들이 신화적이고 폭력적이며 약자의 투쟁을 불가능하게 하는 요구들임을 이미 이해하고 있으면서, 왜 유독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이 지점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가.
그래서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의 한 조류다. ‘걸핏하면 남성을 적대시하고 무시무시한 미러링을 구사하며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티셔츠를 만들어 살포하는 나쁘고 불경한 운동’이래도, 그것이 여성 인권을 지향하는 한 페미니즘이다.
그렇다면 묻자. 메갈리아는 여성 인권을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나? 그럴 리가. 몰카에 대한 인식변화, 맥심 전량수거, 소라넷 폐지,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공간의 창출, 그리고 무엇보다 언어를 갖지 못했던 많은 여성에게 언어를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그 언어가 옳건 옳지 않건 말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메갈리아가 단독으로 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단초를 놓은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조롱과 마타도어를 견뎌내면서도 끊임없이 공론화를 했고, 결과적으로 저러한 성과들을 만들어내는 데 메갈리아는 일조했다. 실패했더래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메갈리아는 저 이슈들을 여성 인권 이슈라고 판단했다. 그것들이 실은 여성 인권 이슈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메갈리아가 ‘여성 인권’을 지향해 운동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메갈리아는 페미니즘 운동의 한 갈래다.
‘나쁜’ 페미니즘도 페미니즘이다
나는 메갈리아의 그것이 남성혐오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메갈리아는 여전히 페미니즘이다. 남성혐오와 여성 인권은 서로 모순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명명하자면 ‘남성혐오-페미니즘’이랄까.
실제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상과 운동을 분립시키는 데 아주 익숙하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라는 말 앞에 어떤 단어를 붙여 만든 사상과 운동들을 우리는 꽤 많이 안다. 예컨대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중 무엇에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일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쁜’ 페미니즘이래도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다. 그러니 그놈의 ‘메갈리아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같은 소리는 그만하자. 그냥 ‘나는 페미니즘이 뭔진 모르겠지만 메갈리아가 싫다’고 말하면 되지 않는가.
원문: 강남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