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누가 그래픽 디자인 툴 공부하는 법을 물어본다면, 아니 마음 같아선 어떤 툴보다도 영어를 먼저 배우라고 권할 것이다. 그다음 이론 기초를 배우고 그다음이 툴이다, 라고.
이 이야기는 종종 내게 “베가스랑 프리미어랑 파이널 컷 중 어떤 툴이 낫냐”, “A툴은 B학원에서 배워야 한다던데” 등의 질문을 던져오는 분들에게 답변하던 내용이다.
내친김에 이제 막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스케치, 애프터 이펙트, 마야 등 그래픽 툴을 배워볼까 하는 생초보를 위한 가이드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장문이 귀찮으신 분들은 각 문단마다 있는 굵은 문장을 요약삼아 훑어 주시라.
요즘은 검색하면 다 나온다
요즘은 아무리 복잡해 보이고 신기한 화면도 구글 검색하면 원리가 다 나온다. 예전엔 마스터셰프의 숨은 레시피 같던 기법도, 시대가 바뀌며 그 마술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제작자 본인이 직접 메이킹 영상이나 블로그 등으로 과정을 공개하는 것도 트렌드라면 트렌드이다.
유튜브, 비미오, 블로그, 사용자 포럼 등등 인터넷이 자료의 천국이란 것은 이미 식상한 사실이다. 날것의 이미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특성으로 인해, 더욱 최신이자 더욱 생생한 기법을 배울 수 있다. 곧장 써먹을 수 있는 방법들인 것은 기본이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 거의 모든 케이스에 대응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어 검색 결과가 훨씬 많다
한국어 대비 영어 검색결과의 양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픽 툴 사용법 또한 마찬가지다. 예컨대 구글에 ‘3D맥스에서 회전 잠근 채로 페어런트’라고 한글로, 또 ‘Parent with locked rotation in 3ds Max’ 라고 영어로 검색해보라. 한국어 25개의 검색결과에 비해 영어는 152,000개가 나온다.
물론 양이 많다고 그 정보가 더 정확한 것은 아니며,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다만 경험상 영어 쪽이 거의 항상 우수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실제 업무에서 ‘이 장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은 항상 후자였기에 전문지식은 영문을 먼저 검색한다.
한국어 기반의 자료도 국내의 몇몇 훌륭한 분들이 꾸준히 만들어 올리는 것 안다(존경합니다). 허나 한글 사용자가 갑자기 늘어난다거나 하는 이변이 없다면 향후 상당히 긴 기간 동안에도 영문 정보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다. 사실 그래픽 툴 뿐만 아니라 개발툴 및 전문적인 정보 대부분이 그렇다.
각종 용어: 한글이지만 한국말이 아니다
현대의 시각기술 대부분은 영어권 국가에서 선도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등 그래픽 툴을 사용하는 어느 분야건 영문을 베이스로 한 자료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영문 의존도가 높은 그래픽 툴의 경우 ‘불리언’, ‘그라디언트’, ‘렌더링’ 등 고유명사가 번역이 애매한 경우가 있어 원어를 소리 나는 그대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HDRI’, ‘Anisotropic Filtering’, ‘Ambient Occlusion’ 같은 단어는 한국말로 뭐라 대체해야 하는지조차 애매하다(…). 막상 대체어를 찾더라도 보통 난감한게 아닌데, Anisotropic Filtering의 경우 ‘비등방성 필터링’이며 Ambient Occlusion은 ‘빛의 차폐로 인한 감쇄 근사치를 구하는 렌더링 이펙트’이다. 이래서야 차라리 원문을 그대로 쓰는 게 편하다.
한국에서만 일하리란 보장이 없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면 안 되겠지만, 어느 날 당신의 작업이 해외에 알려지거나, 출장 등 해외 스튜디오와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제야 부랴부랴 언어를 배우기엔 너무 늦다. 전문분야 의사소통이 가능한 통역은 비싸기도 비싸지만 구하기도 힘들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영어를 실시간 통역하고’ + ‘그래픽 툴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왜 한국에서 통역을…) 이럴땐 대부분의 경우 영어를 공통어로 삼아 간략하게나마 의사소통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는 기초만 배워라
그런 생각의 연장으로, 그래픽을 파고 싶다면 영어를 배우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영어로 읽고 들을 수 있다면 굳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전문학교나 과외를 받지 않아도 된다. 영어가 되면 인터넷이 학교가 된다. 포토샵 학원 애펙 학원이 쓸모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분명 학원이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다. 특히 아무 기준도 없고 기초지식이 전무한 경우는, 보다 습득이 편한 모국어로 배우는 편이 낫다 싶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고 나서 학원에 다녀도 늦지 않다. 오히려 더 빠른 시일 안에 툴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작업 중 궁금한 점이 있을 때 [강사에게 질문]과 [구글 검색]이란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여기에 [영어로 검색]이 추가되어 대폭 향상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출 것이다.
교육기관에서 배우는 기초와 실제로 일을 하며 맞닥뜨리는 문제는 그 질감이 참으로 다르다. 학교는 가르치는 데 집중하는 곳이니, 필드에 비해 지식과 정보를 연하고 예쁘게 가공한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듯 소화가 편한 정보는 당연히 도움이 된다. 단, 일정 수준까지만 그렇다.
학교, 학원, 책의 정보는 종종 편향적이고 시대의 흐름보다 느리다. 매월 매일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요즘에는 더하다. 영어를 배우자는 내 말은 이에 닿아 있다. 번역되기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즉시 활용하거나.
또한 검색은 학원과는 달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답을 찾아준다. 새벽에 개인 작업을 하다가 갑자기 궁금한 내용이 생겼을 때, 선생에게 카톡을 하는 건 실례다. (개인적인 경험담은 아니다. 흐, 흠…!)
손만 빠르면 어느 순간 막힌다
처음 프로덕션 일을 하며 용병으로 왔던 분이 툴을 다루는 속도가 어마어마해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는 손이 빠른 게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손 빠른 건 특정 상황에만 좋다.
그래픽 일이란 일련의 시각적인 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한다. 모양의 못생김을 해결하고 색깔의 거슬림을 고쳐나가는 등의 문제 해결. 무(無)로부터 출발하여 원하는 점, 선, 면, 색 혹은 움직임을 합의로 일궈내는 사소하고 끈질긴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의뢰인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시각적인 문제를 안고 당신을 찾아온다. 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하면 손이 빠른 것은 단순한 묘기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손 빠른 거야 숙련도 문제니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나아질 일이다.
그 문제 해결에 상당수 도움을 주는 일이 검색이며, 더 나아가서 영문 검색이다.
‘영어를 죽어도 못하겠다’ 그래도 괜찮다, 단어만이라도 익혀라
유창하게 잘할 필요 없다. 대강 알아볼 정도, 알아들을 정도면 충분하다. 나 또한 그렇게 고급 영어를 쓰지 못한다. 만일 이 글을 그대로 영작하라고 하면 곤욕을 치를 것이다. 어차피 기초만 익힌 뒤에 계속 보다 보면 늘게 되어 있다. 일단 자신이 쓰는 툴의 단어부터만이라도 시작해보자. 그것을 이정표 삼아 공부하면 된다.
영어에 좀 더 흥미가 있다면 아래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배워보자.
- TALKENGLISH.COM 영어 기초 강의 사이트. 디자인은 구려도 컨텐츠는 넉넉하다.
- Raccoon English 필자명 미친너굴의 <라쿤잉글리시>. 예문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한국말로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어 꾸준히 읽으면 도움이 된다.
초보라면 이 두 가지만으로도 배우는데 1년은 간다. 좀 더 빠르게 배우고 싶으면 시원스쿨 같은 유료 강의도 추천.
기타
- ㅍㅍㅅㅅ의 영어 관련 기사들 교양으로서의 영어, 공부로서의 영어 등 영어에 관한 기사 중 원하는 내용을 취사선택하여 읽어 보도록 하자.
- 구글 크롬용 네이버 사전 확장 프로그램 모르는 영단어를 더블 클릭하면 화면 우측 상단에 팝업이 뜬다. 따로 탭을 열 필요 없어 간편한데다, 발음도 들어볼 수 있어 매우 좋다. 개인적으로 최소 천 번 이상 사용한 듯…
마치며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영상 제작 과외 상담이었다. 학생님은 어떤 툴을 써야 할지, 노트북 사양은 어때야 할지, 맥이 나을지 윈도우가 나을지 등 초보가 으레 하는 질문부터 던졌다. 그리고 나는 영어를 먼저 공부하자고 했다(…) 결국 언젠간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격하게 단정하는 이 도입부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진 않나 우려한다. 허나 이글은 어디까지나 초보자의 갈피 잡기를 위함이며, 현업에 계신 분들은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내용이라고 변을 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