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연결되면서 모두가 위험해졌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 부작용과 잠재적 위협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
최근 헬조선 제외 <포켓몬고>가 인기를 끌며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이 생겼다. 드론으로 포켓몬을 운동시키고, 포켓몬 사냥 대행 알바가 생겼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황당한 현상은 포켓몬고의 위치를 통해, 강도를 저지른 이들이었다. 그야말로 창조경제 그 자체다.
기술과 혁신은 사람들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범죄집단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했는가?
안타깝게도, 진정한 얼리어답터(Early adapter)는 범죄조직인 듯하다. 그들은 경찰 조직보다 먼저 온라인 세상을 받아들였고 계속해서 정부를 앞질러가고 있다. FBI 보안 전문가 마크 굿맨은 <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를 통해 이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1. 소셜 네트워크: 범죄의 온상이 되다
소셜 미디어는 신분 도용 자원이 가득한 풍요로운 바다다. 페이스북 계정에 기록된 생일이나 출생지처럼 범죄자가 원하는 모든 정보가 온라인 세상에 공짜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개인 정보 보호 설정으로 막을 수 있다고? 물론 시스템이 애초에 광고한 대로 기능한다면 이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올라간 정보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유출된다. 약관 업데이트 시 개인 정보 보호 설정을 다시 최소기준으로 리셋 하는 식 등으로 말이다.
광신도나 인종주의자 혹은 동성애 혐오자는 인종과 종교, 종파, 피부색, 성별, 성적 취향을 기준으로 자신의 취향에 따라 희생자를 물색한다. 도둑들은 페이스북의 휴가 포스팅을 통해 마우스 클릭만으로 빈집이 어느 곳인지 찾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도, 아이를 대상으로 한 납치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범죄에 우리가 빵가루처럼 흘린 온라인 데이터가 이용된다.
빅데이터(Big Data)는 빅리스크(Big Risk)를 만든다. 오늘날의 범죄조직은 정보관리 산업에서 활동한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 데이터 부스러기의 흔적은 오늘날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들고 다니는 컴퓨터(는 스마트폰이다) 때문에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2. 클라우드 서비스: 범죄자들의 보물창고가 되다
범죄자들은 이제 하드 디스크를 하나씩 공격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모든 보물을 한꺼번에 쌓아둔 창고에 눈독을 들인다. 바로 클라우드 서비스다. 구글이 메일을, 인스타그램이 사진을, 드롭박스가 문서를 저장하는데, 심지어는 휴대전화가 그 클라우드 시스템에 데이터를 자동으로 올려주기까지 한다.
드롭박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은 이미 범죄 집단의 공격을 받고 있으며 이런 일은 앞으로 더 많이 벌어질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개인 및 기업의 클라우드 기반 계정이 데이터를 도둑맞는데, 얼마 전에는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들도 이런 피해를 입었다. 2014년 말 해커들이 애플의 아이클라우드 시스템을 해킹하면서 제니퍼 로렌스와 케이트 업튼 같은 연예인의 사진 수백 장(그중 많은 부분이 누드를 포함한 사적인 것이었다)이 유출됐다.
만일 그들의 공격 대상이 여러분의 클라우드 서비스였다면? 희생자는 바로 여러분이다. 물론 서비스 업체는 데이터가 유출될 경우 자신들에게는 거의 혹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점을 약관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3. 초소형 카메라: 집을 해킹하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CCTV 네트워크는 모두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의 전유물이었던 카메라는 오늘날 마트, 주유소, 병원, 학교, 사무실, 터널, 술집, 택시, 버스, 기차, 진료실, 세탁소 같은 장소에서도 아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는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게임 콘솔, TV, 태블릿, 주택 보안 시스템에도 카메라가 들어 있다.
첨단 카메라는 단지 찍고 녹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클라우드 컴퓨팅 알고리즘 및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에 센서를 연결해 대상을 읽고 이해하기까지 한다. 이 분석 작업은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현재 사건을 비롯해 예전의 기록을 대상으로도 이뤄진다. 덕분에 오래전에 녹화한 수만 시간의 영상 기록을 검토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억 대의 카메라는 해커들의 공격에 취약하다. 애초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도구가 우리에게 잘못된 보안 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가령 휴대전화 카메라는 모바일 스파이같이 널리 퍼져 있는 툴(이미 6만 개가 팔려나갔다)을 이용할 경우 사용자가 모르게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삶에 새로운 스마트 장비를 받아들이기만 할 뿐, 잠재적인 문제와 위험에 대해서는 굳이 고민하려 들지 않는다. 그 결과 해커들은 비대해진 네트워크의 무게와 힘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한다.
4. 사물인터넷: 완벽한 단속의 세상을 만들다
칩과 센서가 일상 제품 속으로 파고들면 우리는 삶에서 더 많은 정보와 편의를 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알람시계가 인터넷에 연결될 경우 그 기기는 우리의 일정에 접근해 관련 정보를 인식한다. 오늘의 첫 번째 약속이 언제, 어디에서 있는지 파악해 가장 최근의 교통 상황을 상호 참조한다. 아침 교통 상황이 원활하다면 나는 10분 더 잘 수 있고 차가 막히면 보통 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알람이 꺼진 후에는 조명이 조용히 켜지고 보일러가 돌아가면서 목욕물이 준비된다.
그러나 이 편의는 결국 교도소와 같은 단속의 공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점심을 얼마나 오랫동안 먹는지, 화장실에 들어가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는지, 몇 개의 제품을 생산했는지처럼 직원을 추적하는 기술이 보편화된다. 심지어 분당 타이핑한 단어 수, 동공의 움직임, 처리한 문의 전화, 자리를 비운 시간 같은 요소까지 기록된다. 이로 인해 미래의 업무 환경은 보다 생산적인 동시에 교도소 같은 공간으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찰은 이미 지역의 전력 회사와 협력해 전기요금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지불하는 사용자가 혹시 집 안에서 마리화나를 재배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단지 전기를 많이 쓴다는 이유만으로도 수색 영장이 발부되고 마약 제조 혐의로 체포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오늘날 신호등에 설치한 감시 카메라처럼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특히 그 위반이 정부 기관이나 협력업체의 수익과 직결될 때는 더욱더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진보와 생존을 위해
위 사례들은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위험성의 극히 일부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쉽고 간편한 해결책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급격히 늘어나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기술적, 조직적, 교육적, 정책적 전략은 분명히 제시할 수 있다.
이를 사람의 건강에 비유해보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시스템과 훌륭한 개인위생, 그리고 수준 높은 공중 보건은 건강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를 기술적 위험에 대한 대처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다.
-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세균을 물리치는 면역체계처럼,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침입자와 사우는 다양한 센서를 개발한다. 이 센서는 글로벌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돌아다니며 자가 치유 시스템을 형성한다.
- 건강을 위해 개인위생이 중요한 것처럼, 개인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사이버 위생을 지킨다. 미래의 기술적 불안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사용자는 자신의 네트워크와 장비를 책임져야 한다.
3. 마을 전체에 에볼라가 돌면 결국 모두 쓰러지는 것처럼, 개인위생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민관을 아우르는 사이버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기업과 국가, 정부 기관 사이에서 협력과 조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불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음식을 익히지만, 이웃 마을을 태울 수도 있다. 칼은 외과의에게는 수술 도구고 살인자에게는 무기다. 급속도로 진화하는 기술은 의도가 좋은 사람의 손을 거치면 세상에 많은 혜택을 주는 한편, 자살 폭탄 테러범의 손에서는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로 재탄생한다.
기술이 약속하는 진보 과정에서 번영을 구가하고 그 풍요로운 열매를 맛보려면 급증하는 위협의 속도를 따라잡거나 능가하는 탄력적인 보안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이 이와 비슷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마크 굿맨의 미래의 범죄에 대한 짧은 강연은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TED의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뽑혔고, 그가 쓴 아래의 책은 월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으며, 비로소 헬조선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