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알파고-이세돌이 바둑을 둘 때, 대국 현장에서 참 즐겁게 취재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기자도 아닌데 포켓몬고가 만들어내는 모든 버즈가 너무 즐겁습니다. 이것도 속초에서 올라와 잠 안 자고 씁니다.
알파고vs이세돌 당시 블로터 이성규 선배가 쓴 ‘이세돌과 대국으로 ‘알파고’ 설계자가 꿈꾸는 것은?’ 기사가 이른바 ‘알파고의 아버지’로 대박을 쳤는데, 당시를 거울삼아 저도 한번 해봅니다. 정부에서 한국형 포켓몬고 얘기 꺼내면서 AR 육성한다고 할까봐 무섭습니다. 이 얘기 보면 한국형 포켓몬고 소리는 입에도 못 담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포켓몬고>의 아버지 존 행크와 20년의 역사
포켓몬고 개발을 주도한 니안틱(Niantic) 주식회사는 알려진 것처럼 구글의 자회사입니다. 2015년 분사한 이후에도 구글과 닌텐도, 포켓몬 컴퍼니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구글이 알파벳으로 전환된 이후 니안틱의 투자와 분사가 이루어졌으니, 아마 이 한참 전부터 포켓몬고 개발 계획이 가동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구글, 닌텐도, 포켓몬 컴퍼니 세 개 회사로부터 3천만 달러. 이후 2016년 들어 500만 달러를 추가로 유치했네요.
니안틱의 중심에 존 행크(John Hanke)가 있습니다. 존 행크의 공식적인 사회 기록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6년 9월 존 행크는 <메리디언59>라는 이름의 MMORPG 게임을 만들어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은 아키타입 인터렉티브라는 게임 개발 기업에서 만들고 서비스했는데, 당시 존 행크는 아키타입 인터렉티브의 공동설립자였습니다. <메리디언59>는 출시 이후 아키타입 인터렉티브와 함께 게임 콘솔을 만들던 기업 3DO 컴퍼니에 팔리게 됩니다. 3DO 컴퍼니 창업자가 지금 EA의 창업자 트립 호킨스군요. <메리디언59>는 아키타입 인터렉티브의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남은 겁니다. 포켓몬스터도 1996년 등장. 존 행크의 <메리디언59>도 1996년. 둘 다 20년 됐네요. 재미있는 우연입니다.
하여간 <메리디언59>는 한참 이후인 2012년 오픈소스로 전환됐습니다. 지금도 서비스 중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첫 작품과 첫 공동창업 회사를 다른 회사에 팔았으니 나름 성공적인 데뷔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마 존 행크는 이 때부터 다수의 사람이 온라인에서 즐기는 게임 시스템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도 청소년기에 게임 개발로 이름을 알렸잖아요. 후에 구글과 엮인 것도 그렇고, 존 행크와 여러모로 비슷한 면이 많은 인물이지 싶네요.
2000년 들어와서 존 행크는 ‘키홀’이라는 이름으로 또 창업합니다. 키홀은 항공사진 지도를 활용해 온라인으로 지도를 보여주는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구글이 2004년 인수한 업체가 바로 존 행크가 공동창업한 키홀이고, 키홀의 기술은 고스란히 구글의 그 유명한 ‘구글어스’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키홀과 함께 구글에 합류한 존 행크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구글에서 GEO 부문 책임자로 지냈습니다. 구글 지도와 구글 스트릿뷰 사업을 총괄했죠. 이 기간 존 행크는 구글 내부에서 지도와 위치정보를 활용해 MMO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을 모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의 뛰어난 인재풀 덕분이었겠죠. 드디어 2010년 구글 내부에서 존 행크를 주축으로 ‘니안틱랩스’라는 이름의 벤처가 탄생하게 됩니다.
니안틱랩스는 <잉그레스>라는 이름의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잉그레스>는 지도를 바탕에 두고, 현실의 특정 포인트에 존재하는 포탈을 점령하는 스마트폰용 온라인 땅따먹기 게임입니다. 이게 2012년 11월의 일입니다. 게임 속 포탈은 주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이나 공공장소에 설치된 조형물, 예술품들이었죠. 안드로이드로 먼저 나온 이 게임은 당시 비공개 시범서비스였습니다. 2013년 언저리에 공개 시범서비스로 바뀌면서 국내에서도 접속할 수 있게 됐고요.
하지만 게임 속에서 포탈 역할을 하는 조형물 위치 정보는 니안틱랩스가 직접 만들지 않았습니다. 매일 도시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게이머들이 사진과 위치 정보를 니안틱랩스에 전송한 거죠. 니안틱랩스는 조건에 알맞은 조형물이나 건물을 선정해 포탈로 등록했습니다. 조건이란 게 이런 겁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장소일 것’, ‘쉽게 사라지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닐 것’ 등입니다.
<잉그레스> 서비스 이후 지금까지 니안틱이 모은 전 세계 포탈 위치정보는 500만 개. 총 1500만 건의 등록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니 <잉그레스>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했는지 알만합니다. 국내에서도 활동한 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서울의 어지간한 랜드마크는 물론이고, 속초에서도 눈에 띄는 건물이나 조형물이 <포켓몬고>에 거점으로 등록돼 있더라고요.
후에 <잉그레스>의 전 세계 포탈 위치 데이터는 <포켓몬고>의 체육관, 포켓스탑 거점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포켓몬고>는 <잉그레스>의 정신적 후속작 정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게임은 불특정다수의 독립된 개인인 게이머가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해 위치정보를 수집해준 덕분에 성립 가능한 서비스입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거리의 조형물과 예술품, 역사적 건물이 덕분에 핫스팟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니안틱랩스에 얽힌 이야기
‘니안틱’이라는 이름의 유례도 퍽 흥미롭습니다. 니안틱은 미국의 골드러시 시대 미국 서부 예르바 부에나(Yerba Buena) 해변에 정박한 한 포경선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예르바 부에나는 다름아닌 샌프란시스코의 옛 이름이라고 합니다. 스페인 정착민이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주로 민트 허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니안틱은 1832년 건조됐습니다. 은퇴는 1849년에 했고요. 포경선이었지만, 미국 서부에 금광을 찾아온 이들을 주로 실어 날랐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품은 일확천금의 꿈이 니안틱의 역사가 됐습니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처럼 이 배의 운명이 참 기구합니다. 배 대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진 덕분에 해변 위로 끌어올려져 호텔로 용도 변경되기도 했다고 하니까요.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런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니안틱 외에 다른 배들도 해변 위로 끌어올려졌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바, 식당, 호텔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때의 이름이 니안틱 호텔. 이후 불에 타 소실되기까지 샌프란시스코를 찾은 골드헌터들의 쉼터, 혹은 일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존 행크는 니안틱의 이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니안틱은 골드러시 시대 해안에 정박했던 포경선의 이름입니다. 다양한 목적으로 쓰이기 위해 해안 위로 끌어올려졌죠. 다른 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수년에 걸쳐 배 위에 건설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그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몰라요. 인터넷에도 이처럼 멋진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있다는 것을 모를지라도요.”
존 행크는 샌프란시스코와 포경선 니안틱, 다른 많은 골드러시 시대 배들에 얽힌 역사에 매료됐음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그 땅 아래에 160여 년 전 배들의 역사가 기록돼 있음을 말입니다. 스마트폰과 네트워크 너머에. 인터넷용 지도와 구글어스 건너에. 우리는 잘 모르지만 수많은 정보와 기술이 숨어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었겠죠.
2012년 니안틱랩스가 처음으로 출시한 ‘필드 트립’이라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도 위치기반 앱이었습니다. 일종의 위치기반 관광 가이드 앱인데, 사용자 주변에 있는 독특한 숨겨진 장소를 찾아주는 앱이었다고 합니다. 써보지는 못했네요. ‘필드 트립’과 증강현실 게임 <잉그레스>가 현실의 위치와 인터넷 지도, 위치기반 데이터를 함께 활용한다는 점에서 니안틱과 샌프란시스코의 역사 이야기는 실로 적절한 비유입니다.
이후로는 잘 아는 것처럼 <포켓몬고> 얘기로 넘어갑니다. <잉그레스>에서 수집한 건물, 조각상, 거리의 예술품 위치 데이터 모두가 함께 넘어갔습니다. <포켓몬고>가 출시된 게 지난 7월 6일인데, 벌써 하루에 160만 달러씩 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새벽에 테크크런치를 보니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포켓몬고>의 데일리 액티브 사용자(DAU)가 어마어마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전체 안드로이드 사용자 중 16%가 <포켓몬고>를 깔았고, 이 중 DAU가 6.6%라고 합니다. 호주에서는 15%에 DAU 7.98%, 미국에서도 10%가 설치, DAU가 6%에 육박합니다. 데일리 액티브 유저 최고점 기록에서 <포켓몬고>는 기존의 1등 게임 <캔디크러시사가>를 뛰어넘었습니다. 미국에서 지난 월요일을 기준으로 <포켓몬고>의 피크 DAU가 210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게이머가 이 게임을 켜고 보내는 평균 시간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합친 것만큼 됩니다. 33분이 넘습니다.
이 게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계속 성장해 진짜 전무후무한 게임으로 남게 될지. 아니면 출시 초기 포켓몬 파워에 힘입고 반짝 등장했다가 빠르게 식어갈지. 앞으로 사용자 간 대전도 추가된다고 하고, 관련 악세서리도 나온다고는 하는데, 사실 누구도 쉽게 예측은 못 하겠죠.
그런데 이건 확실합니다. <포켓몬고>가 앞으로도 장기간 성공하느냐 마느냐와 관계없이, 이 게임은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기존 습관을 바꿀 것 같습니다.
어제 오후에 속초에 다녀왔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들이 모두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속초 해수욕장이나 엑스포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더라고요. 한 두 집이 아니었습니다. 친구 그룹도 많이 보였고요. 오히려 혼자 하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아마 저같이 서울에서 급히 내려간 사람들만 혼자였을겁니다. 보통 폰게임은 얼굴 떨구고 혼자 하기 마련인데, <포켓몬고>는 오히려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퇴근하신 아버지들이 좀 피곤해질 겁니다. 밤에 밖에 나가자는 어린 자녀를 혼자 보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 게임으로 온 가족이 부족한 대화를 좀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훈훈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문 : 오원석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