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 6월 ㅍㅍㅅㅅ에 기고한 구글의 지도반출 문제 관련 글이 포켓몬고 때문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포켓몬고 국내 서비스 불가와 구글의 지도 반출 문제는 관련이 적은 얘기라는 게 코미디(…). 지금 보니 페북 공유가 3000건을 바라보고 있다.
글에 대해서는 악평 일색이다. “글쓴이 색히가 국가 안보는 똥으로 보고 구글 편만 들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절반은 인정한다. 난 어쩌면 저 글에서 은연중 구글 편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글은 원래 글쓴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번 사안도 그렇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인정할 수 없다. 내가 구글 편을 들었다고 해서 국가 안보를 알로 보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때,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뿐이다. 인터넷에서 댓글로 욕쳐먹는 일이야 늘상 경험하지만, 낡은 법을 바꾸는 것이 왜 장기적으로 이익이라 생각하는지 아래와같이 추가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구글에 지도 데이터를 줄지, 말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낡은 지도 관련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 가깝다.
군사기술로 출발한 GPS
요즘은 어린애들도 GPS가 뭔지 안다. 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의 약자다. 우리말로 하면 대충 전지구적위치결정시스템이다. 누구든 간단한 장비로 자신이 지구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이 같은 기술이 가능한 것은 하늘에 떠 있는 충분한 개수의 인공위성 덕분이다. 예를 들어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한 나라에서는 지구의 자전과 관계 없이 최소 8개에서 11개의 인공위성과 통신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삼각측량에 의해 최소 3개의 위성만 있어도 정교한 위치정보를 수신할 수 있으니, GPS를 이용하면 항상 자신의 정교한 위치를 검출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기술 발전이 인류의 전쟁사와 함께 했듯, GPS 기술도 그렇다. 미국에서 개발해 미군만 썼던 군사 기술이었다. 주로 미사일 유도와 같은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민간에 공개돼 지금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미군이 GPS 기술을 외부에 공개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미국은 정교한 좌표가 입력된 미사일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GPS 기술의 폐쇄적인 운용은 미국이 개발한 기술이 적국의 강력한 무기로 작동하는 아이러니를 막기 위한 조처였던 것이다.
하지만 GPS 기술을 지금은 민간이 자유롭게 활용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스마트폰 등 간단한 장비를 통해 GPS 기술을 사용한다. 요즘 한창 인기인 모바일게임 <포켓몬고>도 사실 그 기반엔 미국의 군사 기술이 숨어있다. GPS 기술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범용적인 기술로 탈바꿈한 것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고와 관련이 있다. 1983년 하늘에서 벌어진 대한항공 KAL007기 격추사건이 그것이다.
대한항공 격추사건과 GPS
1983년 9월1일. 대한항공의 KAL007편은 뉴욕의 존 F. 캐네디 공항을 이륙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김포공항. 경유지는 미국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 10시간이 넘는 지난한 비행의 시작은 그저 평화로웠다. 하지만 KAL007편이 베링해협을 통과했을 즈음, 그만 소련의 영공을 침범하고 말았다. 정상적인 항로였다면 소련의 캄차카반도와 일본 훗카이도를 남쪽으로 돌아야 했지만, KAL007편은 소련의 캄차카반도와 사할린 사이의 영공을 통과한 것이다.
알래스카의 공항을 떠날 때, 그 누가 하늘에서 전투기의 공격으로 자신이 탄 여객기가 격추될 것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재난은 언제나 발현될 기회를 엿본다. 우연과 공교로움이 한 그릇에 뒤섞일 때 비극은 실제한다. 당시 소련이 미국과 냉전중이었다는 역사적인 우연, 3대의 관성항법장치 중 한대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공교로움. 그리고 러시아 전투기 조종사의 잘못된 판단이 뒤엉켜 비극이 탄생했다.
KAL007편에는 269명이 타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포함해 십 여개 나라의 시민이 타고 있었다. 생존자 없음. 전원 사망. KAL007편 격추 사건은 미-소 냉전 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다.
사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그동안 미군만 활용했던 GPS 기술을 민간에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관성항법장치는 가속도계와 자이로스코프를 활용해 오래 운용할수록 정확도가 떨어진다. 민간 영역에서 GPS를 활용할 수 있다면, 여객기가 잘못된 항로로 비행하는 사고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당시 미국 행정부의 판단이었다.
사고의 재발방지 목적으로 개방된 GPS는 이후 시장가치를 인정받아 더 넓은 영역에 단계적으로 개방됐다. 1996년에는 미국 행정부가 GPS 기술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1996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는 GPS 기술 개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지상에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데 위성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계산기만한 크기의 장치만 있으면 록키산맥을 등산하거나 체서피크만을 항해할 때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GPS 기술 개방은 미국 국익에 치명적인 일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이 군에서 GPS를 활용한 것과 똑같은 목적으로 적국이 이용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GPS를 개방하며 기술적인 오류를 심었다. 암호화된 오류를 GPS에 부여해 작은 오차가 발생하도록 하는 조처다. 기술을 폐쇄적으로 운용하는 대신 개방해 누구나 쓰도록 하되, 잠재적인 위협을 최소화하는 또 다른 기술을 고안한 셈이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사람들은 계산기보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항상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으니, 앨 고어 부통령의 전망은 정확히 실현되고 있다.
만약 GPS가 민간에 개방되지 않고, 미군만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남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지금도 민간항공기는 오차가 큰 위치검출 기술을 그대로 활용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 세계 9000여개 공항이 하늘에 띄우는 여객기 대수는 하루 평균 약 10만여대. GPS의 도움 없이 이토록 많은 여객기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었을까. 여객기가 실어 나른 무수한 비즈니스와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GPS를 활용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업모델과 생활의 편리는 더 따져볼 필요도 없겠다. 군용으로 쓰이던 기술이 민간에 개방돼, 전 세계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날마다 도움을 주는 사례의 모범이라 봐도 무방하다. 스마트폰 출현 이후 등장한 각종 혁신적인 서비스도 일정부분 GPS 기술에 빚을 지고 있다.
구글의 지도반출=매국?
우리나라가 법으로 지도 정보를 해외에 반출하지 못 하도록 막은 것은 1961년의 일이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인터넷 지도도 없었던 때다. 60년대의 국회의원들은 지도를 해외에 가져나가는 것이 곧 안보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 걸까.
과거 국회의원들의 생각을 알 길은 없으나, 하여간 지금은 지리 정보 유출을 법으로 막는다고 해서 적국의 손에 우리의 지리 정보가 들어가지 않는 시대는 아니다. 구글뿐만 아니라 이미 전 세계 다양한 나라의 수많은 지도 서비스가 한반도를 찍은 상세한 영상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구글이 우리 정부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는 구글에 로마에 왔으니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 낡은 법을 개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을 펼쳤어야 했다. 정부의 각종 비이성적 판단에 늘상 분노를 금치 못 하던 진보적인 이들마저도, 구글의 지도 반출 문제만 만나면 안보를 들먹이는 보수파로 전향한다.
낡은 법을 앞세우는 것은 사용자의 이익과 얼마나 일치하는가. 대한민국 지도의 해외 반출을 주장하는 것이 곧 매국인 것은 아니다. 무작정 틀어막는 것이 곧 애국이 아닌 것처럼. 손익을 따져볼 때,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무엇이 더 도움이 되는 일인지 계산해봐야 할 때다. 지도 반출을 허용하고 글로벌 서비스를 수용하는 것이 이익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법을 앞세워 빗장을 닫는 것이 이익인지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구글에 지도 데이터를 주지 않아도, 우리의 주적은 이미 우리 대통령의 집무실 좌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법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은 뻔하다.
원문 : 오원석 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