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물귀신이 나타났다. 궁지에 몰리면 죽은 노무현을 붙잡고 허우적대는 사람들 말이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작년 6월 동국대 강연에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하고 인사 개입한 게 아니냐는 후배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구 지하철 사고가 터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으킨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지시한 것인가?”
세월호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이 일으킨 것이 아니란 말을 하기 위해서였겠지만 두 가지 점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사실관계의 착오다. 대구 지하철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때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은 2003년 2월 18일에 벌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주일 후인 2월 25일 취임하였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벌어진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나 일반인들이 대구 지하철화재사건을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지어 기억하는 것은 이번 세월호 사건의 전개과정과 정반대되는 이유일 것이다.
당시 화재 발생 이후 수습과정에서 대구 지하철의 운영주체인 대구시는 전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다. 정권 말기의 정부부처들 역시 사실상의 장관 부재 상태에서 책임을 미루기만 바쁠 뿐 대구시나 유관부처들 간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자, 유족, 대구시민들의 불만이 극도에 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김용석 시민사회2 비서관을 대구에 파견하였다. 정부부처의 보고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상황을 확인하고 신속히 결정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구에 파견된 청와대 인력은 대구에 단 이틀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이틀 만에 상황을 정리해냈다.
이들이 한 일은 대구시와 정부부처 간의 소통방식을 정리하고 사안에 따라 의사결정을 누가 할 것인지 갈래를 터준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책임이 분명해지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구시민들의 불안과 불만도 사그라졌다. 대구 지하철 사건이 노무현 대통령 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이유일 게다. 그런데도 청와대 수석이라면 사건의 전말은 제대로 알고 말을 해야 마땅하다.
두 번째, 대구 지하철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대구 지하철 사건 발생 유관책임자를 문책하고 마무리 짓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지만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발생원인을 분석하고, 예방책을 세우는 동시에 비슷한 유형의 사건 발생 시 신속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안보 상황 및 각종 재난에 대비한 대책안을 마련하였다. 위기관리 매뉴얼이다. 안보 관련 대응책은 물론, 지진, 화재, 전기, 가스, 해양재난 등 위기요소를 분석하여 유형별로 정부 각 부처,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참여방식과 의사결정 구조를 미리 정리해둔 것이다. 참여정부 말기에 이르러 약 2천 권에 이르는 매뉴얼로 정비되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대통령 차원에서 위기를 관리할 실무부서인 위기관리센터를 해체하고 위기관리 매뉴얼을 정부부처를 나눠서 보내버렸다. 대통령 차원의 위기관리를 포기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대응과정에서 그 후과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가 재난관리 컨트롤 타워가 아니니 하는 엉뚱한 얘기가 나온 배경이다. 이정현 수석은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란 말만 강조하고 있다. 정도가 지나치면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다.
이정현 전 수석은 세월호의 침몰과 수습 과정에서 이명박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이 저지른 실책을 반성하며 위기관리정책의 전환을 시도했어야 마땅하다. 그랬으면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엉뚱하게도 죽은 노무현만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고 있으니 또 언제 ‘세월호’가 또 터질지 몰라 불안한 것 아닌가?
원문 : 기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