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 실패 쪽으로 무게가 기우는 가운데, 쿠데타 실패를 단순히 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어요. 터키의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두안(이하 에르두안)은 언론을 통제하고 있으며 오랜 기간 독재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죠.
터키의 정치 갈등에 대해서는 터키의 건국 과정부터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터키는 정치를 종교와 분리해야 한다는 세속주의를 표방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이하 케말)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터키의 전신이었던 오스만 제국과는 조선과 대한민국의 차이만큼이나 전혀 다른 방향과 시스템을 가지고 건립되었어요. 터키는 남녀평등과 공업화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근대국가였습니다.
터키는 오스만제국이 잃은 영토를 회수하며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다만 이러한 터키의 성장은 주변을 폭력적으로 통합함으로써 갈등의 씨앗을 낳았습니다. 영화나 만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한 산악민족 쿠르드족에 대한 배척도 그렇고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그 예입니다.
세속주의는 근대적이고 평등한 조치였습니다만 모두가 이득을 봤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속주의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은 건 자본가와 교육수준이 높은 도시 사람들이었던 거죠. 양극화는 심해졌고 갈등은 커졌습니다.
터키 사람들 대부분이 무슬림(이슬람 교도)인데요, 이러한 차별 속에서 소외된 자들은 세속주의보다는 이슬람주의(정교일치 혹은 종교가 일상에서 무척 중요한)에 더 이끌렸습니다. 이슬람주의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높아지면서 케말이 만든 세속주의 정당을 누르고 이슬람주의 정당이 집권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케말이 세운 세속주의를 신봉하는 군부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이슬람주의 정권을 전복했으며 이후로도 세속주의가 약해질 때마다 약 10년 주기로 쿠데타를 통해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한국과 같이 군부가 집권하는 일은 없었고 빠르게 정권이 민정으로 이양되었지만, 민주주의 관점에서 잦은 쿠데타는 좋지 않죠. EU가 터키의 가입을 거부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잦은 쿠데타도 그중 하나로 거론됩니다.
군부의 쿠데타가 잦았다는 건 그만큼 세속주의 정당이 무능하다는 방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정치를 못 했으면 정권을 내주고 이를 제3세력인 군부의 쿠데타를 통해 돌려받았을까요. 집권이 목적인 정치와 국가의 안전이 목적인 군부의 목적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터키 군부는 세속주의 정당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세속주의 정당에 대한 민심은 날로 낮아졌습니다.
한편, 군부의 개입이 잦자 이슬람주의자들은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는 세속주의를 따르되 윤리적으로는 이슬람 정신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군부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을 빼앗은 것이죠. 그게 바로 현재 터키의 대통령인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입니다. 에르도안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케말이 만든 히잡 금지 정책을 깨는 등 반세속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과거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군의 지위를 낮추는 등 꾸준히 군의 영향력을 줄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터키의 이번 쿠데타는 에르도안이 민심을 급격히 잃어서 일어났다기보다는 군부와의 오랜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거 같습니다. 에르도안은 2003년부터 총리를 했으니 13년째 장기집권하고 있습니다. 독재와 잦은 말실수, 온갖 비리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면서 민심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독재가 길어지면서 그를 싫어하는 반대파가 늘어나고 있지만, 세속주의 정당이 워낙 부패하고 무능하기에 그를 대신할 대안은 딱히 보이지 않는 형편입니다. 이렇듯 터키 내부의 정치 상황이 복잡하기에 이번 쿠데타가 성공했든 아니든 터키의 혼란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보자면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세속주의를 통해 성장한 엘리트와 혜택을 받지 못한 다수 무슬림의 갈등, 그리고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지만 에르도안 집권 이후 힘을 잃은 군부와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의 갈등, 그리고 장기 독재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표출되는 등 여러 요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을 같은 아시아권의 태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국도 친국왕세력인 엘로셔츠와 친탁신세력인 레드셔츠로 대표되는 두 세력 간의 갈등이 깊고 쿠데타가 잦은 국가입니다. 재미있는 건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원주의나 민주주의, 인권과 같은 서구적 가치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는 쪽이 엘리트와 중산층, 도시인, 지식인과 같은 엘로셔츠란 점입니다. 다수의 빈민과 농민들로 구성된 레드셔츠는 독재를 딱히 부정적으로 보지 않더라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들이 자라면서 배운 전근대적인 상식과 문화가 존중받고 경제성장의 혜택이 자기들에게도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 경제를 성장시키고, 성장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간다면
- 대중 다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습이나 문화(그것이 전근대적이더라도)를 보호할 수 있다면
- 민주주의나 인권과 같은 서구적 가치에 대한 다소의 제한이 있더라도
- 대중은 그를 지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퓰리즘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현대의 서구적 가치에 대해 꼭 대중 모두가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면서도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가 우리네 정치에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는 합리나 논리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요.
원문 : JAYEON PARK의 Med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