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의 특징 중 하나로 예술가 개인의 죽음을 들 수 있다. 예술 생산에서 예술가 개인의 의미가 축소되고 집단, 또는 기업의 위력이 커지는 것이다.
오늘날 개인 예술가의 위상은 확실히 전만 못하다. 19세기 후반에 시작해 20세기 중반 정점에 이르렀던 모더니즘 시대는 예술가들의 위상이 역사상 가장 높았다. 물론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이전 시기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예술시장이 엄청나게 확대되었고,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스타 예술가도 나타났다. 반 고흐, 모딜리아니, 이중섭이 더 늦게 태어났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술계의 전환: ‘작품’의 유일하고 전능한 ‘작가’ 개념의 후퇴
하지만 하나의 작품에서 예술가 개인이 담당하는 역할은 분명 축소되었다. 예술가는 더 이상 전지전능한 창조자도 아니고, 인류의 교사로 존경받지도 못한다. 인기 작가는 있어도 시대를 뛰어넘어 추앙받을 작가는 나오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 예술가의 의미가 축소되는 경향은 현대 예술의 주류가 영화, 설치미술 쪽으로 이동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작가’는 누구인가? 원작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고 영화를 찍으면서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원작자가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하기도 하고 각색자가 따로 있기도 하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할지라도 촬영, 편집하는 과정에서 또 수정이 가해진다.
“영화는 과연 누구의 창작물인가? 시나리오 작가인가 감독인가 아니면 제 3의 누구인가?”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1950년대 말 논란이 있었다. 결국 감독이 영화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감독과 영화의 관계가 작가와 소설의 관계와 다르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말부터 모더니즘이 와해되면서 설치미술, 대지미술, 개념미술, 행위예술 등 전통적인 미술의 개념을 벗어나는 이상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조형예술이라는 단어가 생겨나 미술을 밀어냈다. 이 가운데 행위예술은 조형예술의 범위도 벗어난다. 주류 미술이 이런 쪽으로 이동하면서 개인 예술가의 위상도 축소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설치미술이나 대지미술 같은 작품을 작가 혼자 한 땀 한 땀 만들었다고 생각할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여전히 존재하는 모더니즘 시대의 장르들
신경숙 사건과 조영남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소설과 회화는 모더니즘 시대의 지배적 장르였다. 소설과 회화는 제작 단계에서 예술가 개인이 절대적 지배권을 갖는 장르다. 예를 들어 플로베르는 그 맥락에 들어맞는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을 찾기 위해 수년간 고생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반 고흐는 고유한 감정과 힘이 실린 붓질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걸었다. 모더니즘 예술가의 높은 위상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숙이나 조영남을 비판하는 이유는 이들이 소설이나 회화가 지녀온 가치를 훼손하고, 이들 장르를 만들 때 준수해야할 작업 방식을 어겼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의 주류가 예술가 개인의 역할이 축소된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갔거나 옮겨가고 있지만, 수공업적이며 장인적 생산방식을 지닌 모더니즘 시대의 장르들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새로운 예술 형식들이 번성하면서 소설이나 회화는 그 중요성이 감소했지만 아직도 일정 영역을 차지하고, 유효한 예술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장르에 대해 예술 소비자가 기대하는 바는 되풀이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진중권 교수는 조영남의 그림이 현대예술이며 개념미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현대예술의 정의가 타인에게 헐값으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고객에게는 자기 그림이라고 속여 파는 것으로 바뀌었는가?
현대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두 ‘현대예술’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영남의 그림은 현대예술보다 전통적인 회화의 범주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진중권 교수는 특유의 ‘교조적인’ 어투(“내가 조영남을 현대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하는 식의)로 사람들의 반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학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