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 열풍이 거세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일본과의 본질적 격차를 느낀다. 포켓몬 고를 만든 증강현실은 한국에서도 2009년부터 상용화 기술이 확보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것으로 우리나라에서 한 건 기껏 아동용 공룡책에 스마트폰을 들이대면 티라노사우르스가 ‘으아흥’하고 나타나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도 한 번 보고 나면 다음부터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런 아이디어를 내도 사업투자 안 된다. 사실 아이디어도 잘 안 나온다.
앞으로의 세계는 기술자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으론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10년 후에도 힘들 것 같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공포마케팅을 하는 사교육도 아니고 무책임한 공교육도 아니다. 실제로 공포마케팅은 공교육도 많이 하고, 공포를 주입시켜 공부시키는 데 가장 앞장서는 것은 사실상 부모들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고취하려는 가치에 있다. 즐겁게 노는 것에는 죄책감을 심어주고, 놀이를 통해 무언가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해하며, 아이들이 책상 앞에 오래 앉아 고통스러워 하면 뭔가 대단한 공부를 했다고 착각을 한다.
부모와 선생님들의 이런 착각은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판단 기준을 만들어 놓는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스런 시간을 인내하는 것에서는 보람을 느낀다. 성취감은 배운 것의 실질적 가치가 아니라 고통스런 시간의 길이로 결정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도 학습된 이 기준은 그대로 유지된다. 기술을 하나 확보하면 이 기술로 재미있는 뭔가를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근면성실하게 기계적으로 밤새 일할 수 있는 노가다성 용역 일거리를 찾고, 그 일을 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바로 우리들 이야기다. 그리고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지금의 아이들도 우리처럼 될 것이다.)
일본이 ‘입시에 목숨걸기’에서 벗어난 지 20년 정도 되었다. 그들이 ‘3당4락’이라는 말로 대표되던 ‘입시에 목숨걸기’를 버린 것은 ‘명문대=성공’ 이라는 공식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공식이 깨어지자 일본의 학부모들은 강제로 공부를 시키기 보다는 공부, 놀이, 자기관심사가 균형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20년 전에는 일본도 한국 같이 대형학원가가 여기저기 형성되어 있었고, 사교육비 지출도 컸다. 그러나 지금은 학령이 올라갈 수록 사교육비가 오히려 줄어들고, 입시학원도 많이 없어졌다.)
우리나라 교육이 10년의 기간차를 두고 일본의 상황을 따라갔기 때문에 2005년쯤에는 한국도 입시지옥에서 탈출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입시지옥을 탈출하지 못했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도 명문대 성공신화는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일본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중이다. 20년 전 일본처럼 “명문대 가도 성공하기 힘드니 괜한 고생시키지 말고 자녀만이 가진 다른 강점을 찾아주자”가 아니라, “명문대에 간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좋은 대학이라도 안 나오면 이 나라에선 아예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번져나간 것이다.
사태는 더 악화되어 그래도 과거에는 자유로왔던 대학생들조차도 취업고시를 준비하느라 고3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 오죽하면 촛불시위 나온 고등학생들이 “대학생 언니, 오빠들은 시위에 안 나오는데 고등학생들이 나왔네요”하는 기자의 질문에 “언니, 오빠들은 취직 공부 때문에 너무 바쁘잖아요”라고 대답하겠는가. 일본이 명문대 성공신화가 깨지면서 교육이 입시지옥에서 탈피한 데 비해 한국은 신화가 깨지자 입시지옥이 대학까지 연장됐다.
창조경제는 대통령이 떠든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국책사업과제를 만들어서 기업들에게 돈을 뿌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남이 만든 문제풀이를 잘해 성적이 좋은 애보다 아무도 생각 안 한 재미있는 놀이방법을 고안해내는 아이가 칭찬과 친구들의 인기를 얻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창조적인 제품이 나오고 창조경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명문대를 안 나와도 죽지 않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겠지만.
덧, 본 내용하고는 상관없지만, 포켓몬 고가 구글자회사에서 개발됐고 닌텐도는 캐릭터만 빌려준 거란 의견들이 있어서:
닌텐도는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 닌텐도DS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주가가 1/6로 하락한다. 2012년 중반부터 매출, 주가가 반등하게 되는데, 그 반등을 이끈 제품이 포켓몬 AR서처(드림레이더)였다. 지금 난리가 난 포켓몬 고의 조상이다. 개발사는 닌텐도 자회사이자 포켓몬을 처음 개발했던 게임프리크였다.
그 이후에 포켓몬 AR 시리즈가 계속 나왔고, 2013년도에 이미 포켓몬 AR의 포스퀘어판(포켓몬 고)이 나올 것이란 소식이 돌았다. 2014년4월1일 구글이 구글맵에서 포켓몬 찾기 만우절 이벤트를 진행했고, 2015년 포켓몬 고 공식티저광고가 나왔다. 광고주는 닌텐도였다.
포켓몬 AR 포스퀘어판이 구글과 공동개발로 간 이유는 북미마케팅이 용이하고 포켓몬 AR의 포스퀘어판에선 구글글라스를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Press Release에 보면 포켓몬고는 Niantic, Nintendo, The Pocketmon Compay가 공동개발했다고 나오는데, 캐릭터 라이센스는 공동개발이라고 하지 않았다. 포켓몬컴퍼니는 닌텐도와 게임프리크 합자회사고, 게임프리크 역시 닌텐도 자회사라는 걸 고려하면 결국 모두 닌텐도 그룹임을 알 수 있다.) 포켓몬고의 게임 기획은 이미 2013년 게임프리크가 마친 상태였다.
원문: 장가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