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PokemonGo)> 때문에 인터넷이 난리다. 스마트폰과 거리가 먼 것 같은 닌텐도, 포켓몬 컴퍼니의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돌풍이 더 이례적이다. 미국 출시 직후 단번에 애플 앱스토어 무료인기, 최고매출 1위를 기록한 것은 당연지사. 미국 전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중 최소 5%가 넘는 숫자의 기기에 설치됐단다.
<포켓몬고>를 하다가 물에 빠져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했다는 둥, 밤에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더니 누군가 다가와 <포켓몬고>를 하느냐고 물어봤다는 둥. 요 며칠간 전해진 소식을 들으면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앱스토어에 미국 계정으로 접속하거나 게임 설치 APK를 받아 게임 껍데기만 겨우 얻었을 뿐인 대한민국 민중은 남의 나라 얘기에 그저 손가락만 빨 수 밖에. 뭐,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지마는.
현실로 튀어나온 몬스터, 땀 나도록 뛰는 게이머
<포켓몬고>를 즐기는 방식은 1990년대 중반 처음으로 등장한 옛 포켓몬스터 게임과 전혀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 방영된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비슷하다. <포켓몬고>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포켓몬을 잡는 게임이다. 게이머는 포켓몬을 수집하고 진화시켜 더 강한 포켓몬으로 만들면 된다.
<포켓몬고>는 여기에 GPS와 증강현실 기술을 끼얹었다. 포켓몬을 탐색하고 수집하는 모든 과정을 스마트폰 화면 너머에서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말하자면, 포켓몬을 잡으려면 집 밖으로 나가 돌아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집 담장 너머에, 자주 가는 커피숍 문 앞에, 학교 뒷마당 어딘가에서 게이머의 몬스터볼을 기다리는 포켓몬스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
표면적으로 <포켓몬고>는 총 3개의 층으로 나뉜다. 구글이 제공하는 지도 데이터가 맨 밑에 깔렸다면, 그 위에는 스마트폰 뒷면 카메라가 찍는 현실 영상이 있다. 가장 위에는 그래픽으로 연출한 포켓몬스터 캐릭터와 게임 UI가 양념으로 얹혀있는 형태다. 스마트폰의 GPS와 지도 정보, 게임성, 여기에 포켓몬 컴퍼니의 포켓몬스터 지적재산권이 맞물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포켓몬고>는 평소 포켓몬스터 콘텐츠를 별로 즐기지 않았던 비게이머까지 집 밖으로 불러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끼어들 여지를 남긴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어린아이부터 직장인,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원에 나와 포켓몬스터를 잡고 있는 진풍경은 앞으로 스마트폰 게임과,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 모델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감마저 품게 한다.
이 같은 현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게임이 돈을 버는 기존의 방식을 혁신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이제는 비밀도 아닌 모바일게임업계가 돈을 버는 방식이 어떠한지를.
모바일게임 개발업체는 한 달에 수 십만 원은 우습게 쓰는 이른바 헤비유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보통이다. 업데이트가 이뤄질수록 막대한 돈을 투자해 게임판을 이미 장악한 이들을 위한 요소가 투입된다. 이들은 더 많은 돈을 쓰고, 게임 업체는 그들로부터 얻은 매출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지속하는 구조다. 모바일 비즈니스 플랫폼 업체 IGA웍스의 2016년 보고서를 보면, 모바일게임 매출 중 90% 이상이 1%의 유저로부터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포켓몬고>의 매출 양상은 이와 다르게 흘러가는 중이다. 1%의 게이머가 매출의 상당량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게이머가 필요에 따라 소액의 아이템을 결제하는 구조다.
게임이 가장 먼저 출시된 호주에서는 99센트짜리 아이템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데이비드 깁슨 맥쿼리 증권 분석가는 포켓몬고의 높은 매출을 가리켜 “소수의 큰돈을 쓰는 이들이 아니라 적은 돈을 쓰는 많은 수의 게이머 덕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미국 현지시각 7월 11일을 기준으로 포켓몬고는 하루 16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하는데, 미국도 호주처럼 거의 모드 유저가 전체 매출을 떠받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포켓몬고>의 기대감을 반영한 덕분에 닌텐도의 주가도 출시 직후 빠르게 상승 중이다.
사실 앱을 다운로드 받고 튜토리얼까지는 해봤는데, 그 이후부터는 망할 허허벌판만 감상했을 뿐이라 여기에 쓴 이러저러한 분석은 죄다 공허한 얘기일 수 있다. 넘어가도록 하자. 허허(…)
그러니까 우린 <포켓몬고>의 인기비결 따위가 아니라 그 핵심에 무엇이 있는지 들춰보는 것이 낫습니다. <포켓몬고>의 밑바탕에는 구글의 ‘구글 지도’와 니안틱랩스의 <잉그레스>가 있으니 말이다.
‘잉그레스’ 품고 달리는 <포켓몬고>
<포켓몬고>의 핵심 콘텐츠는 체육관 전투다. 이것 때문에 현지에서 난리가 났다.
체육관은 <포켓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체육관을 더 많이 점령하는 것이 팀에 기여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팀은 레벨 5를 달성하면 선택할 수 있고, 레드와 블루, 옐로우로 나뉜다. 같은 팀 소속인 체육관을 찾아가면, 자신이 가진 포켓몬을 훈련시킬 수 있다. 많은 팀원이 방문할수록 체육관 명성레벨이 올라간다. 반대로 다른 팀이 점령 중인 체육관에 도전해 명성레벨을 떨어트리거나 점령할 수도 있다.
땅따먹기를 떠올리면 쉽다. 그것도 온라인과 GPS, 실제 지도와 건물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즐기는 MMO 땅따먹기인 셈이다. 자신의 평소 행동반경 가까운 곳에 소속 팀 체육관이 있어 자주 이용했는데, 어느 날 다른 진영에 넘어가면 빡칠까요? 안 빡칠까요? 미국 어느 지역에서 새벽에 남의 진영에 몰래 우르르 몰려가 체육관을 점령했다더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포켓스탑’도 게이머에게 도움을 주는 거점이다. 포켓스탑은 일종의 보급소 역할을 한다. 지도에서 자신과 가까운 곳에 있는 포켓스탑에 접근해 이를 터치하면, 포켓몬 알이나 각종 아이템을 받을 수 있다. 길을 걷다가도 포켓스탑을 발견하면 되도록 지나치지 말고 터치해야 한다. 많은 아이템을 모을수록 게임 진행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체육관과 포켓스탑 등 게임 속에 등장하는 거점의 위치가 모두 실제 건물이나 공공시설의 조각상, 독특한 예술작품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미국 백악관처럼 특이하고 상징적인 건물이 포켓몬고에서 체육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많은 게이머가 백악관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백악관 체육관 점령을 위해 몸을 불사르는 중이라고 한다.
비교적 큰 건물이나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 지형지물이 체육관 역할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공원의 특정 시설이나 조각상은 포켓스탑으로 설정돼 있다. 평소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공원이나 건물의 조각상이 포켓스탑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게이머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중이라고 하니, 포켓몬고가 가져온 긍정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포켓몬고는 현실에 이토록 많은 특정 건물과 조각상을 어떻게 선정하고, 체육관과 포켓스탑으로 지정했을까. 게임 개발을 주도한 ‘니안틱랩스’가 열쇠를 쥐고 있다.
니안틱랩스는 구글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업체다. 2012년에는 <잉그레스(Ingress)>라는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계몽군과 저항군 세력으로 편을 갈라 땅을 따먹는 이 게임도 구글의 지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됐다. 잉그레스는 현실의 특정 건물이나 구조물을 게임 속에 포탈(Portal)이라는 이름의 거점으로 반영했다. 바로 잉그레스가 확보한 포탈 정보가 고스란히 포켓몬고의 체육관과 포켓스탑으로 활용됐다.
땅따먹기 형식의 단순한 개념에 스마트폰 지도와 현실의 구조물을 엮은 독특한 이 게임은 포탈 정보를 모으는 방식도 특이하게 진행됐다. 잉그레스 게이머 스스로가 포탈을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게이머는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을 사진으로 찍어 니안틱랩스에 제출할 수 있다. 니안틱랩스는 심사를 거쳐 세종대왕상을 포탈로 지정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만약 세종대왕상이 포탈로 지정되면, 광화문을 지나는 잉그레스 게이머는 세종대왕상 포탈을 점령할 수 있게 된다.
2011년 베타서비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니안틱랩스가 사용자의 참여로 얻은 포탈 정보는 전 세계 약 500만 개소. 제출된 건수는 1,500만 개에 이른다. 사용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이 완전한 콘텐츠를 이룬 성공사례로 거론하기에 손색이 없다.
다시, <포켓몬고>
만약 닌텐도와 포켓몬 컴퍼니가 니안틱랩스가 아닌 다른 업체와 <포켓몬고>를 개발했다면 어땠을까. 증강현실이나 GPS 기술 등은 사용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렇게 완성된 <포켓몬고>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거점을 점령하고, 거점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는 스토리텔링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포켓몬고>는 잉그레스를 통해 이미 데이터를 확보한 니안틱랩스이기 때문에 성립 가능한 서비스다. 플레이어들이 지난 5년 동안 발로 뛰며 거점 정보를 업데이트해준 잉그레스 플레이어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잉그레스를 통해 이미 전 세계 거점 정보를 확보한 니안틱랩스는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특징을 지도에 반영하는 작업을 추가했다. 니안틱랩스는 물과 가까운 곳에서는 물 속성의 몬스터가, 사막 지역에서는 다른 속성의 몬스터가 등장하도록 했다. 분수대가 체육관이나 포켓스탑으로 지정됐다면, 그 근처에서는 꼬부기가 등장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현실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서도, 화면을 보며 진행해야 하는 게임의 특징 때문에 사용자의 안전을 고려한 설계도 엿보인다. 니안틱랩스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나 접근 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지역에는 포켓몬이 등장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스마트폰 화면에 포켓몬이 나타나면, 게이머는 움직일 필요가 없도록 설계했다. 사용자가 포켓몬을 잡으려 화면에 집중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게임을 실행하면, 보행자 안전을 위한 경고 메시지가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다소 단조로워 보이는 <포켓몬고>에는 앞으로 다양한 요소가 추가될 전망이다. 니안틱랩스의 업데이트 계획 중에는 게이머끼리 포켓몬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포함돼 있다.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체육관 거점 등을 게이머 입맛에 맞게 꾸밀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추가될 예정이라고 한다(인 앱 결제하라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체육관 전투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서대문구 플레이어들이 독립문 거점 체육관에 아이템 잔뜩 발라놨는데, 중구에 사는 게이머들이 새벽에 쳐들어와 홀랑 까먹는 상황이 발생하면 다음 날 연차를 내서라도 되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현재 출시가 예정된 독특한 액세서리도 포켓몬고의 흥행몰이를 당분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포켓몬 컴퍼니는 ‘포켓몬고 플러스’라는 아이템을 생각해냈다. 팔찌처럼 차고 다니다가 근처에 포켓몬이 출몰하면 불빛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 액세서리다. 스마트폰과는 블루투스LE로 연결된다. 꼭 필요는 없지만, 있으면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걷지 않아도 되니 좋다. 매니아라면 하나쯤 갖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여간 휴대용 게임기 하드웨어 팔아먹는 기업의 본바탕은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포켓몬고 플러스도 잘 팔리면, 사물인터넷(IoT) 액세서리를 모바일게임과 엮은 시나리오의 교본으로 등극할 것이다.
아직 제대로 즐겨본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게임임은 분명하다. 부디 국내에서도 청와대 체육관을 사이에 두고 블루 팀과 레드 팀이 피터지게 싸우는 장면이 연출되길 바란다. 물론, 청와대 앞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다면, 아마 경찰들이 잡아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