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에이전시에서 기업 인하우스로 자리를 옮기며,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많이 다른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에이전시에서도 많은 고민을 치열하게 했지만 결이 미세하게 다릅니다. 오늘은 인하우스에 와서 고민중인 것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1. 나는 브랜드 담당자다
아마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디지털 에이전시에 있을 때도 저는 제가 맡은 브랜드의 담당자였습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한정적이었고, 사실은 외부인이자 조력자에 지나지 않았겠죠.
인하우스에서 브랜드를 맡고 나니 그 의미는 자못 다르게 다가옵니다. 기업은 브랜드로 움직입니다. 그 안에 수많은 조직원은 브랜드를 움직이는 하나하나의 구성이 되는 거죠. 사람들은 브랜드로 기능하고 브랜드로 말합니다. 회사 아래 있지만 얼마간은 개개의 컬러와 캐릭터가 중요했던 에이전시와 큰 차이입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만, 이것을 아는 순간 인하우스의 많은 선배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업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성과, 반대로 어처구니 없거나 사회윤리에 위배되는 일들의 원인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고요.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도 분명하지만요.
#2. 광고, 홍보는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것 역시 많은 자극이 됩니다. 저는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하고 마케팅팀을 거쳐 홍보회사 디지털팀에서 장기간 근무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비슷한 생각과 배경의 분들과 더 나은 방법론,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신 트렌드와 전략에 목말랐고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도 믿었습니다. 아니, 좀 더 극단적으로 광고홍보를 제대로 못하는 기업은 ‘뒤쳐졌다’고 마음껏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인하우스에 와보니, 얼마간은 부끄러워집니다. 편협한 생각이었습니다. 이랜드 그룹의 김재원 팀장님이 마케팅 3P를 강조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제야 진심으로 그 의미를 깨닫습니다. 프로모션(Promotion)은 많이 잡아야 10% 정도 아닐까요? 대부분은 제품(Product)과 가격(Price)에서 성패가 갈립니다. 더 심하게 말해 광고나 홍보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대세에 지장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보다 수많은 분야에서 갈고 닦은 전문가들을 보며 한 제품, 서비스, 브랜드의 생리와 순환에 대해 고민해보게 됩니다.
#3. 디지털이 아니라 마케팅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광고, 홍보, 마케팅에서 더 나아가, 그동안 저는 디지털을 신봉하며 파고, 파고, 파왔습니다. 디지털을 활용한 우수사례에 열광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의 담당자를 비웃기도 했습니다. ‘현 시점에 디지털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제언도 디지털으로의 통합으로 받아들였지, 이를 진심으로 체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디지털이나 소셜미디어는 결국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서 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자 전략일 뿐입니다. 결국엔 브랜딩이니 매출이니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종합적 접근법의 하나로 활용되는 것이지요. 그것만이 굳이 대단하다거나 독자적으로 기능해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물론 디지털이 핫하고 뜨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하우스에 와보니 사실상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영역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결국은 통합적 접근과 시각을 갖춰야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은 기업에게 ‘특별히’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4.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
이 부분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고민인데요, 에이전시에서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였다면, 인하우스는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전자는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고객사에게 받아들여지면 진행이고 안되면 에라이 하고 말죠. 상대적으로 데미지도 적고, 굳이 말해 내 탓인가 싶고요. 그런데 후자로 오면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집합체, 여러 이해집단과의 커뮤니케이션, 예산 집행자 혹은 결정권자로서의 좀 더 엄격하거나 신중하거나 기타 다양한 요소의 베리어 등등. 참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더군요. 이런 요소들이 겹쳐지면 결국은 담당자로서 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에이전시에서와는 다른 의미로 기획만 하고 버려지는 아이디어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5. 광고, 홍보를 잘하는 기업에 잘하는 담당자가 있지는 않다
마케팅이나 광고, 홍보로 유명한 회사들이 많죠. 케이스로 일컬어지는 것들도 끝없이 있구요. 그런데 이러한 성과가 순전히 해당 기업, 브랜드 담당자의 공일까요? 바꿔말하면, 그렇지 않은 기업, 브랜드의 담당자는 역량이 떨어지는 걸까요?
에이전시에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기업 담당자는 정말 모른다고 이야기한 적도 많았습니다. 사실 에이전시는 담당자의 개인기가 해당 프로젝트의 성과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인하우스에 와보니 회사 상황이나 문화, 이념, 여러 가지 배경 요소 등등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알아도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더 많더군요. 더군다나 기업 담당자는 모른다? 한 에이전시와 하는 업무 말고도 다뤄야 하는 범위가 참으로 넓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 못하는 기업이라고 담당자를 까면 억울할 사례가 참 많아 보입니다.
#6. 일을 되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제 가장 큰 화두입니다. 위의 모든 고민들을 압도하기도 하는데요, 브랜드 담당자는 브랜드로 말합니다. 어떤 불가결한 상황이 있던 그건 과정일 뿐이고, 그것을 극복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저 역시 에이전시에서 ‘주님’ 한마디에 좌지우지될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는데요. 어떤 형태나 방법으로든 목표한 결과나 일, 성과 따위를 달성해내는 것. 그것이 결국은 인하우스 담당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능력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원문: 짬봉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