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자들은 브렉시트가 극우들의 준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주장한다. 극우정당인 브리튼 퍼스트 (이하 BF)의 지지율을 보건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이루어진 저변에 극우들이 준동하던 정서가 깔려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핵심은 이 부분이다. 브렉시트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찬성표로 나타나는데 작동한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것은 현실도피일 뿐이다.
2. 경제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동반한다. 극우 정당 청정지역이라는 독일에서도 페기다가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해 사람들을 공포스럽게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5성 운동이 다시 세를 넓히고 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극우정당의 집권을 막았다. 프랑스 역시 집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FN(국민전선)이 그 기세를 드높여 가고 있다.
이러한 극우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민족성의 강조, 고립주의를 그 모토로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경제적 양극화나 상대적 박탈감의 책임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고립을 택해가는 방식이다.
3. 몇몇 좌파들은 양극화 시기에 좌파들이 기성 정치를 뚫어낼 대안으로 대중들을 조직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좌파적 견인이 대안이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이는 좌파라면 충분히 택할 수 있는 노선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브렉시트가 그러한 ‘좌파적’ 대안에 대한(물론 브렉스트에 대한 입장은 좌파 내에서도 다양하지만) 동의로 인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브렉시트는 우리가 못 살게 된 건 저 EU의 후진국들 때문이야, 우리는 대영제국이야, 이민자들을 다 쫓아내면 우리가 잘살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정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유럽에서 좌파가 제3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스페인과 그리스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고, 오히려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 극우세력들이 대부분 그 세력을 넓혔다.
결국 양극화 시기에 대중들이 택한 것은 특별히 좌파적인 대안이 아닌 원초적 감정에 기인한 분노 표출이었다.
4. 좌파가 아닌 리버럴의 노선에 동의하더라도 3의 내용은 그대로 적용된다. 원초적 분노 표출 앞에 리버럴들이 내세우던 경제적 근거들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난 좌파이기에 기성 정치에 반기를 드는 모든 흐름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성 정치에 반기를 드는 모든 행동을 그 자체로 긍정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치 역시 그러했고, 현재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극우세력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원초적 분노가 대안이 되어버리는 이 풍경은 유럽과 미국의 선진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말해준다. 경제적 양극화는 사람들에게 양극화의 대안을 사고하게 한다기보다는 원초적인 분노들만을 표출되게 만들었다.
5. 물론 사람들이 전부 다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정책 토론을 하며 투표하는 광경은 환상이다. 그런 일은 세상 어디에서도 벌어지지 않는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파토스의 영역이고, 이데올로기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지고 파토스만이 남은 정치는 곧 파시즘으로 이어질 뿐이다. 브렉시트는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과연 기성 정치 세력들은 혹은 좌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좌파든 리버럴이든 수습과 견인을 이야기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양극화와 그것이 불러온 원초적 분노를 어느 세력이 수습할 것인지, 그리고 그 수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원문 : 박현익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