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로서 성공했다는 것 그 자체로는 그가 정부 부문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 보증할 수 없는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 말할 수는 없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60여년 전 쓰여진 이 책의 교훈을 지지난 대선에서 직접 경험해보고야 말았다.
트럼프는 미친 게 아니라, 대중을 가지고 노는 것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에서 불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열풍은 어쩌면 뒤쳐진 유행처럼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미디어의 사랑을 받는 부동산 재벌이며 일종의 성공 ‘신화’를 쓴 인물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역량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그가 막말의 화신이라는 것 뿐이다. 종교를 이유로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거나, 특정 인종을 성폭행범으로 몰고 가는 그의 언행은 도저히 정상적인 정치인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가 없다.
지난 3월 월 스트리트 저널은 도널드 트럼프의 독특한 선거전략이 바로 그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나왔다는 요지의 기사를 썼다. 한국 사람들에겐 그가 무슨 책 씩이나 썼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사실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32주간 차지할 정도로 열풍을 일으켰던 책이다. 막말 정치인 트럼프는 놀랍게도 사실 전미를 휘어잡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것이다!
트럼프 홍보의 1원칙: 크게 생각하라
그의 일주일간의 일상을 다룬 1장을 넘어가면,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그러나 유일하게 지루한 부분이기도 하다) 월 스트리트 저널이 주목한 도널드 트럼프의 사업 전략이 소개되는 2장이 시작된다. 그리고 첫 번째 원칙이 나오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암, 이러니까 트럼프지.
“크게 생각하라”.
‘사람들이 자그만 돌집을 사고팔고 하며 싸구려 붉은 벽돌 빌딩을’ 짓는 동안, 그는 ‘맨해튼의 서쪽 강변 약 100에이커의 땅에 개발 단지를 짓’는다. 그는 프리미엄 아파트 사업과 호텔 사업, 심지어 카지노 사업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사업에 담대하게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대단한 배포다. 물론 그가 그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은 부동산 재벌 2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트럼프는 금수저다.
뭐 이리 허망한 결론이 있나 싶지만 그렇다고 금수저라면 누구나 트럼프처럼 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이번 대선 캠페인만 봐도 그렇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그가 갑자기 미국 대선이라는 세계 최대의 정치 이벤트에 나서더니만, 젭 부시라는 대어를 그야말로 산산조각냈다. 그리고 이젠 공화당 후보 지명을 받고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역사상 가장 노련한 정치인과 일전을 벌이고 있다.
정밀하고 완벽을 기하는 클린턴의 견해에 비해 트럼프의 것은 거칠고 우악스럽다. 이슬람 국가의 테러가 문제가 되니 무슬림을 입국 금지시키고, 이민자가 문제가 되니 이민을 금지시킨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를 위협하므로 자유무역을 해체(…)한다. 주 단위에서 작은 경험부터 충실히 쌓아가는 정석적인 행보를 밟는 대신, 그는 대선 캠페인에서도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홍보의 2원칙: 욕 먹는 걸 두려워 말고 자신을 알려라
그의 기괴하고도 담대한 언행은 언론의 주목을 끌기 마련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경쟁자보다 훨씬 적은 광고비를 집행했으면서도, 훨씬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언론은 트럼프를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클린턴보다 배 이상 많이 언급해왔다.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에서 이미 이렇게 쓴 바 있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중략) 흥미로운 것은, 개인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비판적인 기사일지라도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만큼 트럼프가 언론을 다루는 법을 잘 묘사한 책은 없을 것이다. 뭐 당연하다. 본인이 쓴 책이니까. 이는 인터넷 언론이 득세하고 클릭 유도 경쟁이 중요해진 오늘날 더욱 적확하게 들어맞고 있다. 이슬람과 이민자, 경쟁 후보들에 대한 그의 막말은 즉각적으로 대서특필되어 포털과 sns를 파도처럼 삼키고, 사람들은 타임라인이 그의 얼굴로 뒤덮인 꼴을 보게 된다.
트럼프 홍보의 3원칙: 시장조사가 아닌, 발품을 믿어라
그의 발언이 하나같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아마 이 원칙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장을 조사하라”.
맨해튼 5번가의 마천루 명물, ‘트럼프 타워’에 대한 그의 견해는 어떤가? 그는 책에서 이것이 “비평가들로부터 신통한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일반 대중들은 이 타워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그는 비평가를 믿지 않는다. 시장조사를 믿지 않으며, 자문회사를 믿지 않는다. 그는 직접 묻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캐치해낸다.
트럼프 열풍이 가시화된 후에야 뒤늦게 비평가들은 경제 불황에 절망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했다거나, 트럼프가 그동안 노출할 수 없었던 다수 미국인들의 솔직한 욕망을 반영했다느니 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실 사후약방문이다. 트럼프 현상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중들 사이에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한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한 사람 뿐일 것이다. 트럼프 그 자신.
반 년 이상 베스트셀러: 자서전 자체가 그의 홍보 능력을 보여준다
트럼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열 한 가지의 사업 전략을 모두 여기에서 읊자면 읽는 사람만 괴로운 (그리고 출판사도 괴로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책을 통해 트럼프 본인의 목소리로 듣는 것 만큼 잘 전달해낼 자신이 없다. 앞에 트럼프가 전미를 휘어잡은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말을 했던가? 감히 한 마디 의견을 보태자면, 그는 그럴 만한 사람이고 이는 그럴 만한 책이다.
그가 자신의 사업 전략에 따라 어떻게 사업을 성취해왔는지를 그린 3장부터 14장까지는 그야말로 놀라운 영웅담이다. 초장부터 그는 뉴욕, 그것도 맨해튼의 부동산에 눈을 돌린다. 슬럼으로 변해가는 뉴욕 그랜드센트럴 옆 코모도어 호텔을 사다가 완전히 새로 설계하여,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보기 좋게 성공시키고 심지어 그랜드센트럴까지 부흥시킨다.
뉴욕의 주요 관광 코스 중 하나(이자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추물이라 비판받기도 하는) 트럼프 타워 건립은 김정은도 울고 갈 화전양면전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카지노 사업에의 진출은 그야말로 화려하고도 치열한 클라이막스다. 부동산을 사고 팔고, 카지노 사업 허가를 받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트럼프만의 홍보 기술: 대담한 논쟁을 생산해 매혹시켜라
그의 문장은 직선적이고 경쾌하다. 문장이 쉽고 숨기거나 꾸밈이 없다. 자신의 영웅적 행보를 거침없이 (그리고 부끄러움조차 없이) 일필휘지로 기록해나간다. 물론, 여느 자서전이 그렇듯 스스로를 과하게 포장하는 부분도 많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영웅 트럼프와 우호적인 경영자들, 변호사들이 트럼프를 방해하는 멍청한 관료들과 귀찮은 법 규제들을 쓰러뜨리면서 마무리된다. 트럼프는 왕관 대신 멋진 건물과 흑자 경영을 손에 넣는다. 영웅 트럼프가 관료나 법 제도라는 구악과 맞서 싸우는 구도는 그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드는 후반부 쯤 접어들어 더욱 강고해진다.
그러나 그건 흠이라기보단 차라리 미덕이다. 트럼프 개인이 미덕을 갖춘 사람이란 게 아니라,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명징해지는 미덕이라는 뜻이다. 사실 책 그 자체에 트럼프의 사업 전략이 그대로 녹아있다. 크게 생각하고, 타겟을 영리하게 선정하며, ‘색다르거나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들을 거침없이 써냄으로써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가 그저 막말이나 지껄여대는 정치인이라면 그토록 많은 지지를 받고 끝내 공화당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겠는가. 그에겐 악마적인 매력이 있고, 이 책엔 태평양 너머에선 통 실감할 수 없는 바로 그 악마적인 매력이 담겼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책에서 트럼프의 담대한 전략을 배우고 그처럼 악마적인 매력을 가진 유명인이 되길 원할지도 모르겠다.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스스로를 높여라
책의 초반,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트럼프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남성들과 가장 아름다운 여성들’이 가입되어 있는 ‘레 클럽’에 가입하려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레 클럽 회장을 만난 그는 그와 술을 마시고 가입을 허락받는다. 책은 이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마침내 그는 나를 회원으로 가입시켜주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나에 대해 한 가지 염려를 했다. 그는 내가 젊고 잘생긴 데다 몇몇 나이든 회원들이 젊고 예쁜 부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행여 내가 부인네들을 유혹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젊고 잘생긴 트럼프라? 지금의 트럼프를 보면 영 상상이 가지 않지만, 젊은 시절이야 얘기가 다르긴 하겠지. 그래도 본인 책에 저런 말을 쓴다는 게 우리 정서로는 쉬이 이해가 안 가긴 한다. 마침 책은 이렇게도 썼다.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다. 사람들은 가장 크고 위대하며 특별한 대상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런 속성을 ‘건전한 과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암, 왜 아니겠나. 스스로를 늙고 못생겼다 생각하면 그게 어찌 트럼프겠는가. 다만 그의 이 저돌적인 행보가 사업이 아니라 소수자까지 배려하고 사회 각층을 보듬어야 할 정치에서까지 통하고 있다는 게 무척이나 두렵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