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여성전용칸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의 결과물인 것 같네요. 디자인적 사고란 문제가 있을 때 설계를 살짝 바꿔서 해법을 제시하는 걸 말합니다. 왜 ‘디자인적’이라고 말하냐면 디자인이 원래 그런 의도로 나온 거거든요. 아 의자 불편해→디자인 수정→이제 편하다 뭐 이런 거죠.
인터넷에서 ‘버스 대기줄 디자인’ 사례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대기줄에 약간의 디자인 수정을 가미했더니 통행자와 대기자 모두에게 불편함이 사라졌죠.
인터넷에선 가끔 이런 사례들이 등장하곤 하는데요. 우리 실 생활에도 꽤 가깝게 다가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요.
- 일본의 U자 주차라인: 문콕 방지
- 전철 스크린 도어: 시각장애인/노약자 추락사고 방지, 충동적 자살 예방 및 운전자의 트라우마 방지, 혐오적 사고방지 등
- ㄹ자 줄: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보행자 통행 문제 방지
이런 것들이죠.
반대로 디자인 씽킹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도 있는데요. 최근 인터넷에서 ‘너희는 커피 마시지 마라’며 자극적인 워딩으로 일회용컵을 번화가 길거리에 아무데나 버리는 사람들을 욕하는 포스팅이 있었죠. 언론사를 통해 송출되기도 했습니다.
이건 사실 디자인적 사고의 문제입니다. 지자체에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쓰레기통을 없앤다’고 하며 실제로 쓰레기통을 없앴는데요. 이거 디자인 사고(accident)입니다. 사람들이 길에 쓰레기통이 적절한 위치마다 있다면 쓰레기를 왜 길에 버리겠어요. 길에 버릴 데가 없으면 집에 갖고 가겠지-라고 생각한 지자체의 디자인 씽킹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일회용 컵을 길에 버리는 사람들을 비난하죠. 쓰레기통이 없는데.
비슷한 사례로 흡연구역 문제를 들 수 있는데요. 일본에 가면 전철 주요역 인근에 강력한 공기청정기를 단 흡연구역이 있습니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은 흡연구역에 들어가려고 줄까지 섭니다. 반대로 한국에선 ‘전철 출구 10m 이내 흡연 금지’라고 당당하게(꼭 이럴 땐 당당) 써붙여놨습니다.
한국에서 흡연 부스가 있는 곳은 주요 기차역 인근인데, 여길 가보면 흡연자들이 대부분 구역을 지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부스 밖에서 끽연하시는 분들도 있지만(모든 흡연자를 수용하기에 좁음) 주로 이 구역을 넘어서진 않아요. 디자인 씽킹이 일부 성공한 사례로 봐야합니다. 그런데 전철역은요?
여성 지하철 전용칸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디자인 씽킹에는 ‘예산을 적게 쓴다’는 암묵적인 미명도 있거든요. 다 뜯어 고칠 때 필요한 디자인 씽킹 덕목은 따로 있고요. 전철은 엄청 크고 비싼 기계니까 칸을 갈라놓는 것이 더 간편하고 실용적일 수 있거든요. 남성 여러분이 모두 범죄자라는 게 아니고, 범죄자가 존재하긴 하니 미봉책으로나마 갈라놓으면 실제로 범죄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럴 거 같기도 하네요.
물론 전철을 일부 뜯어고쳐서 모든 남성이 기분나쁘지 않으면서 성범죄를 완벽하게 예방하는 방법이 있다면 더 좋겠죠. 현재의 방법이 최선은 아닌 건 맞고 과연 이분들이 디자인 씽킹을 하고 만든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새로 전철을 만들 땐 그런 부분을 성별 상관 없이 부산시청이나 전철 회사에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흡연자-비흡연자의 싸움을 봤을 때 싸워서 남은 건 어딘가의 세수 확보밖에 없었습니다. 해외여행인지 어딘지에 쓸지도 모르는.